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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청산이 오히려 남는 장사?

GM 본사의 경영진 시각에서는 수익은커녕 적자인 소형차 특화 기업을 청산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GM 본사가 고의적으로 한국GM을 파산시키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정승일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3월 12일 월요일 제5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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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의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외부 실사기관으로 삼일회계법인을 선정했다. 삼일회계법인은 3월 초부터 한국GM의 회계에 대한 실사를 시작한다. 산업은행은 이번 실사를 통해 미국의 GM 본사와 한국GM 사이에 불거지고 있는 여러 의혹을 검증할 계획이다. 예컨대 GM 본사가 한국GM에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뜯거나 과도한 연구개발비를 부담시켰다는 주장이 나온다. GM 본사의 특허를 한국GM이 사용토록 한 뒤 엄청난 규모의 로열티를 요구하는 방법도 있다. 이로 인해 GM 본사의 수익이 증가한 대신 한국GM은 파산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실사가 완료될 때까지는 의혹일 뿐이다. GM 측은 산업은행에 한 달 내로 실사를 끝내라고 한다. 하지만 다국적기업인 GM의 전 세계에 걸친 법인들과 한국GM 사이의 복잡한 상품·금전 거래를 제대로 살피려면 1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시사IN 이명익
한국GM 군산공장은 GM 본사의 글로벌 전략에 따라 소형차 제품 개발과 생산기지로 특화된 곳이었다.

실사 기간 자체는 2차적 문제다. 더 중요한 것은 실사의 목적을 무엇으로 잡느냐다. 산업은행은 실사를 통해 ‘한국GM에 회생자금을 투자할 경우, 회수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야 한다. 한국GM을 청산하거나 어떻게든 살려 운영할 때 어느 쪽의 경제적 가치가 우월한지도 살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실사 목적은 GM 본사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한국GM의 청산이 GM 본사에 이익이라면, 상황은 그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산업은행으로서는 그에 상응하는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GM 본사의 의도를 추정할 수 있는 참고 자료는 이미 존재한다. 지난 4~5년간 한국GM에서 발생한 일들을 살펴보면 된다. 한국GM의 매출 규모는 2013년부터 불과 4년 만에 급전직하하면서 100만 대 생산 수준에서 50만 대 정도로 추락했다. 당연히 한국GM의 공장 가동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영업적자는 매년 폭발적으로 불어났다. 자기자본이 매년 잠식되더니 2017년을 지나면서 0원 이하로 떨어졌다. 외부에서 한국GM으로 새로운 자금을 수혈(=자기자본)하지 않으면, 한국GM은 회계상의 파산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다.

한국GM의 매출이 지난 4년간 절반으로 급격히 줄어든 이유는 무엇인가? 그 기간 한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공황급 위기라도 발생했던가? 그렇지 않았다면, 한국GM의 매출 급락은 GM 본사(한국GM의 경영권을 갖고 있다)의 의도적 계획, 즉 글로벌 경영전략에 따라 발생한 현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한국GM의 황금시대는 2003년부터 2013년까지 11년 동안이었다. 연간 생산량이 2007~2008년에는 190만 대에 육박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2009년에 잠깐 160만 대 이하로 떨어졌지만, 2010~2013년 4년 동안에는 200만 대 내외를 생산·판매했다. 공장을 밤낮으로 돌려도 수요를 맞추기 힘들 정도였다. 그 시기의 성공을 이끈 차종은 경차와 소형·준중형 승용차다. GM 본사는 한국GM을 소형차로 전문화한 제품 개발 및 생산기지로 특화했고 일시적이나마 성공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동시에 불어닥친 엔화 가치 절상 및 국제 유가 폭등은 연비와 가격 대비 성능에서 우월한 한국산 소형차에 대한 국제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같은 기간 현대기아차 역시 해외 수출을 크게 늘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아베의 양적 완화 조치 이후 위기 시작

황금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불행이 들이닥쳤다. 2012년 취임한 일본의 아베 총리는 양적 완화로 일본의 엔화 가치를 크게 떨어뜨렸다. 한국 제품에 대한 일본 수출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이 엄청나게 개선됐다. 2014년 들어서는 국제 석유가격이 폭락했다. 북미 등 수출시장 및 국내시장에서 소형차 및 경차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며 한국 내의 자동차 업체들이 위기를 맞았다. 한국GM의 수출 하락 폭은 현대기아차보다 훨씬 컸다. 현대기아차가 소형차뿐 아니라 제네시스 등 중대형 승용차와 SUV 모델도 개발·생산하는 데 비해 한국GM은 오직 경차·소형차만 개발·생산하도록 특화되었기 때문이다.

ⓒ사진공동취재단
2월20일 배리 앵글 GM 총괄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가운데)이 국회를 방문해 여야 원내지도부와 면담했다.

현대기아차는 그 지배권이 한국 본사에 있다. 그런 만큼 한국 경제 상황이 현대기아차의 경영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GM의 경영은 다국적 기업인 GM 본사에서 결정한다. 한국GM 자체의 전략적 판단과 결정에 따라 중대형 세단, SUV 등을 개발·생산할 수 없다. 모든 것은 GM본사의 글로벌 전략에 따르도록 되어 있다. GM 본사 처지에서는 중대형 세단과 SUV, 픽업트럭 등은 한국이 아닌 미국GM에서 개발·생산하는 게 더 낫다.

한국GM은 현재 ‘경차·소형차에 특화된 개발·생산 기지’라는 수렁에 빠져 있다.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려면 매출 및 수익의 확대 가능성이 높은 중대형 세단과 SUV, 픽업트럭 등으로 차종을 다변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GM 본사가 한국GM에 이런 고가 제품으로 제품 다변화를 허용하지 않는 한 한국GM은 앞으로 경차·소형차를 매년 50만 대 내외로 생산·판매하면서 근근이 생존을 유지하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바로 이것이 현재 GM 본사가 한국GM에 요구하는 생존 전략으로 보인다.

GM 본사의 생존 전략은 한국GM과 그 노동자 및 협력기업들까지 살려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리라 보인다. GM의 군산공장이 청산된다 해도,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의 생산시설 규모는 연산 70만 대에 달한다. 공장 가동률 저하는 물론 희망퇴직과 정리해고 등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다. GM 경영진이 한국GM의 모든 생산 공장들을 청산하려고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GM은 지난 수년 동안 ‘기업가치(주가)를 더욱 높이라’고 요구하는 주주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의 거센 공격을 받아왔다. CEO 메리 배라 등 GM 본사 경영진 시각에서는, 한국GM처럼 수익은커녕 적자인 소형차 특화 기업은 청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수 있다. 유가가 크게 상승하거나 일본 엔화 가치가 급등하면 모르겠지만, 중대형 차에 비해 대당 판매수익이 형편없이 낮은 소형차를 한국에서 제조하여 수출하는 방식을 계속하면 주주들에게 욕먹기 딱 좋다.

GM 본사 처지에서는 한국GM을 청산하더라도 잃을 것이 없고 오히려 남는 장사를 할 수 있다며 주판알을 튀기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주변이 온통 아파트 단지인 부평공장 땅의 현 시세가 3조원을 넘어 10조원에 달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그 돈이면 한국GM의 모든 부채를 갚고도 남는다. 또한 한국GM 법인이 파산하는 경우에는 퇴직금을 3년치만 지급하면 된다. GM 본사가 한국GM을 고의적으로 파산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외신들 “문재인 정부 GM에 농락당해”

물론 GM이 철수를 계획 중이라고 해도 최종 철수까지는 2~4년이 소요될 것이다. 이미 한국GM에는 부평공장에서 개발해 미국 본사의 양산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소형차와 경차 후속 모델이 있다. 그 신규 차종을 생산·판매하면서 2~4년을 근근이 버티는 것은 가능해 보인다. 문제는 그 이후의 파산신청 및 청산 등 철수 가능성이다. GM 본사의 전략도 매우 불투명하다. 다만 일부 외신들은 이미 ‘문재인 정부가 GM에 끌려다니며 농락당하고 있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연합뉴스
2월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업무 보고를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산업자원부와 산업은행이 당당하게 GM 본사와 협상하려면 먼저 준비할 것이 있다. 한국GM을 포함한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 고도화를 향한 큰 그림 위에 신중하면서도 과감한 발전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이런 큰 그림을 학계에서는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경우, ‘1997년 외환위기가 박정희식 산업정책 때문에 발생했다’라는 잘못된 진단이 지난 20년 동안 학계와 경제 관료들의 정신을 지배해왔다. 이에 따라 자동차 산업뿐 아니라 조선업과 해운업, 기계와 철강 등 주력 수출 제조업 분야에서 산업고도화를 위한 치밀한 국가전략, 즉 산업정책이 없었다. FTA 확대와 규제 완화가 유일한 산업정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정책의 금융 사령부라 할 수 있는 산업은행은 이명박 정부 당시 민영화 대상으로 전락했다. 박근혜 정권은 산업은행의 역할을 ‘부실 대기업을 단순 관리하는 임시 대주주’로 제한했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정책에서도 이전 정권들과 달라야 한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제조업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미국판 산업정책을 시행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에너지 전환’ ‘4차 산업혁명’ 등을 국정 목표로 제시했다. 이는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형 차량 개발, 관련 인프라 확대 등 자동차 산업의 일대 전환과 고도화에 관련된 과제다. 한국GM은 그 자체로도 잠재력 있는 기업이다. GM 본사의 세계적 히트작인 전기차 쉐보레 볼트의 연구·개발에도 한국GM은 상당 부분 기여했다. 문재인 정부는 장기적으로 최악의 경우(GM 완전 철수)를 대비해야 한다. 국내외의 미래형 차량 전문 개발업체 그리고 삼성SDI, LG화학 등 세계적인 전기차 배터리 업체 등과 공동으로 큰 그림을 그려 GM 철수의 위기를 자동차 산업 고도화의 기회로 전환하는 방안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 큰 그림에는 인천시와 경기도, 전북과 경남 등 지방정부는 물론 산업별·지역별 노사정위원회도 참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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