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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못(Mot)’의 이이언이 쌓아올린 어떤 풍경

이기용 (허클베리핀 리더)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3월 08일 목요일 제5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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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 3 - ‘못’의 이이언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국립현대 도서관 건설 입찰에 참여한 노(老)건축가 무라이 슌스케와 그의 건축사무소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건축에 대해 토론하는 목소리가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아사마산 별장에 낮게 울려 퍼진다. 그들은 도서관 서고 사이를 도는 사람들의 동선, 의자 등받이의 기울기, 책 읽는 사람들의 눈빛 하나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도면을 완성해간다.

손으로 만질 수는 없지만 음악에도 높낮이와 좌우가 있고 부피감이 있다. 뮤지션들은 원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 소리들을 층층이 그리고 겹겹이 배치한다. 킥드럼(드럼에서 음이 제일 낮은 타악기) 소리를 공간의 제일 아래쪽에 배치해 공간의 터를 잡고 그 위에 여러 악기들을 쌓아 올린다. 거실 소파 위에 욕조가 포개지면 이상하게 보이는 것처럼 소리들도 한곳에 겹치지 않도록 각자의 적절한 위치에 배치된다. 음악은 소리로 이루어진 건축물인 것이다. 그래서 음악가는 때로 뛰어난 건축가다.

여기에 빼어난 음악 건축가가 한 명 있다. 그는 도시의 밤을 무대로 하는 건축가다. 바로 밴드 ‘못(Mot)’의 리더 이이언이다. 그는 지금까지 밴드 못으로 정규 앨범 세 장, 이이언이라는 이름으로 정규 앨범 한 장을 발표했다. 2005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상과 2008년 최우수 모던록 음반상을 받았다.

ⓒMot 이이언 제공
밴드 못(Mot)의 음악은 접하기 힘든 새로운 음악을 겨우겨우 찾아서 듣고 감탄하던 시대에 더 빛났다.
맨 오른쪽이 ‘못’의 리더 이이언씨.

이기용 : 작가 올리버 색스는 자신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놀라운 모습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다. 나무에 물을 주면서 그의 아버지는 관현악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흥얼거리기도 하고 심지어 특정 대목에서는 ‘여기에 클라리넷을 넣어보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자신의 상상 속에서 편곡해 감상했다고 한다.

이이언 : 나는 구조로서의 음악, 음악의 구조적인 미에 대해 집착적으로 파고드는 편이다. 진은숙 작곡가 같은 뛰어난 음악가들은 실제로 음악이 연주되는 시간보다 더 빠르게 오케스트라 악보를 넘기면서 본다. 그렇다면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가 세상을 0과 1의 디지털 숫자로 보는 것처럼 그들은 음악을 구조로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예쁘게 잘 그린 그림 말고 언뜻 보면 희한하고 이해되지 않는 현대미술도 구조적인 아름다움이 있지 않나. 음악에서도 건축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구조가 많이 있다.

이기용 : 못 2집이 나온 게 2007년인데, 9년 뒤인 2016년에 나온 3집에서는 음악에서 제시하는 풍경과 사운드가 전과 다르다. 그사이 솔로 앨범을 작업하면서 무척 고생한 것이 이유가 되었을까?

이이언 : 2012년에 만들었던 솔로 앨범 작업이 너무 힘들었다. 마지막 1년 정도는 뇌 호르몬 분비에 약간 문제가 생겼던 것 같다. 작업이 끝나면 어디 가서 술 한잔 해야지, 게임을 해야지, 재미있는 미드(미국 드라마)를 봐야지, 하는 보상심리 같은 것이 작동해야 사람이 인생을 유지해나갈 수가 있지 않나. 그 무렵엔 나를 기쁘게 할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안정적으로 계속 음악을 만들고 발표해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지속적으로 같이 작업할 파트너들이 절실했기에 2014년 즈음에 솔로 앨범을 같이 하던 친구들을 다 밴드 못의 멤버로 영입했다.

이기용 : 요즘은 좋든 싫든 음악이 점점 배경음악이 되어가는 상황이다. 못의 음악은 어떤 음악인가?

이이언 : 1·2집 때는 음악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작가로서의 뮤지션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던 시기다. 못의 음악은 접하기 힘든 새로운 음악을 겨우겨우 찾아서 듣고 감탄하던 시대에 더 빛날 수 있었던 음악이다. 그래서 좀 헛헛한 느낌이 든다. 멋진 수공예품을 만들던 장인들이, 예전만큼 사람들이 봐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것을 만들겠다고 마음먹고 해나가는 그런 기분이다. 못은 음악의 깊은 묘미를 감상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음악을 하려고 한다.

이기용 : 얘기를 듣다 보니 나전칠기 장인이 생각난다(웃음).

이이언 : 요즘 약간 그런 느낌이 든다(웃음).

이기용 : 사람들은 못의 음악을 정서적으로 슬프고 우울한 음악이라고 말한다. 역설적으로 슬픈 음악이 가진 아름다움도 있기에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기도 하다. 탐미주의자로서 내심 본인의 음악을 ‘스윗하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웃음).

이이언 : 맞다. 내 음악에도 스윗함이 있다(웃음). 어둡고 슬픈 음악을 들을 때 아름다움이 주는 환희 같은 게 있다. 슬퍼한다는 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심장이 펌프질을 해서 슬픔을 온몸으로 퍼뜨리는 힘겨운 과정이다. 그렇게 우울하고 슬플 때 그런 음악을 들으면 잠시 쉬면서 필요한 에너지를 음악에서 얻는 거다.

이기용 :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쓸 때,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선 참 고민이 많다. 이이언은 음악에서 ‘사랑’을 어떻게 다루고 있나?

이이언 : 삶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의욕의 중심에 사랑이 있는 것 같다. 동기부여와 보상의 시스템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다. 정서적으로 가장 강렬한 체험을 하게 하는 것도 사랑이니까. 사랑은 그렇게 동기부여의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것인데, 한동안 어그러지고 좀처럼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나의 인생을 괴롭게 하는 무엇이었다. 못 1집 ‘Love song’이라는 노래의 내용이 그렇다. 삶의 의욕을 부추기는 보상인 동시에 그 길이 좌절됨으로써 나를 한없이 비참하게 만드는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사랑과 삶은 대체 뭘까’ ‘우리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생각을 계속 했는데, 문득 떠올랐다. ‘반짝이는 순간들이 너무 예쁘니까. 그 때문에, 그래서 의미가 있는가 보다’ 싶다. 강아지도, 연애도, 삶도. 반짝이는 동안 그 예쁜 걸 보려고.

이기용 : 다시 음악 얘기로 돌아가서 못 3집 ‘편히’라는 곡은 소리를 많이 덜어냈다. 마치 고층건물을 빼곡히 짓던 사람이 담요 하나 들고 햇살 아래 들판에 누워 있는 것 같은데.

이이언 : 요즘도 복잡하게 뭘 쌓는 것을 최대한 지양하는 쪽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덜어내는 것이 더하는 것이다’라고 말을 하는데, 이제는 너무 흔한 이야기가 돼버렸지만 그 안에 정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공간을 비웠을 때 갈 수 있는 곳이 분명히 있어서, 공간을 만드는 것과 똑같이 공간을 비우는 것을 설계하는 거다.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 다음에 어떤 음들이 나올지 예상하면서 듣는다. 그 예상이 맞으면 안정감과 함께 쾌감을 느낀다. 또 너무 예상대로 음악이 흘러가면 금세 지루함을 느낀다. 그래서 이이언 같은 음악가들은 음악의 구조에 대해 끝없이 파고든다. 밴드 못이 들려주는 깊고 아찔한 아름다움은 ‘끝까지 가본’ 경험을 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풍경이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에서 분명히 특정한 지형을 만들었고 또 넓히고 있다. 이이언은 현재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기타리스트였던 이능룡과 프로젝트 앨범을 만드는 중이다. 그리고 이어서 못의 4집 앨범 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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