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담장 허물어 시민에게 돌려주자”라는 한 정치인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덕수궁과 경복궁의 담장(변형된 부분이라는 단서가 있긴 했다)을 허물면 궁궐이 ‘왕족’의 것에서 ‘시민’의 것이 되고, 서울은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된다는 주장이었다. 궁궐의 담장을 허물면 정말 그런 멋진 일들이 일어날까?
궁궐이 이렇게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이 하루 이틀 된 일은 아니다. 창덕궁 낙선재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숙박 시설로 제공하겠다는 ‘궁 스테이’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없던 일이 된 적도 있고, 작년에는 경복궁의 본래 궁역에 속해 있는 국립고궁박물관 자리로 청와대를 옮기자는 주장이 나와 한바탕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결국은 이 궁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대체 궁궐이 무엇이기에.
궁궐은 무엇인가? 〈홍순민의 한양읽기:궁궐〉은 이 질문으로 시작한다. 저자의 답은 명료하다. 궁궐은 ‘임금이 사는 곳’이었다. ‘산다’는 것은 임금의 사적인 생활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공적인 존재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로서의 삶을 포함한다.
왕조가 스러진 지 100년이 넘은 지금, 궁궐은 더 이상 임금이 사는 곳도 나라의 중심도 아니다. 여전히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고, 여기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느껴볼 수 있는 곳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겉모습만 보아서 될까? 이면에 숨어 있는 의미와 역사를 읽어내야 한다. 아직 궁궐은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다.
저자가 900쪽에 달하는 상하 두 권의 책에 걸쳐 궁궐의 곳곳을 둘러보며 건물의 이름 한 자 한 자를 따져 읽고, 이미 사라진 건물의 터까지 살피는 것은 모두 그 때문이다. 이처럼 궁궐 본연의 모습을 이해하는 게 섣불리 궁궐의 쓸모를 논하는 것보다 먼저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궁궐을 찾는 이들에게 이 책은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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