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외교관협회(AFSA)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미국 대사직은 모두 188개. 이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 들어 최근까지 자리를 채운 대사직은 65개로 전체 약 3분의 1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 직업 외교관에게 돌아간 자리는 26개이고 나머지 39개는 지난 대선 때 트럼프를 재정적으로 후원한 이들이나 그와 끈끈한 정치적 친분 관계가 있던 인사들에게 돌아갔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독 주한 미국 대사직만 장기 공백 상태로 둔 건 아니다. 독일과 유럽연합(EU) 대사도 여전히 1년 이상 공석이다. 중동의 핵심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물론이고 요르단·터키·이집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르헨티나·오스트리아·벨기에·아일랜드·헝가리 등도 미국 대사가 정해지지 않았다. 최근 CNN 보도에 따르면 대사가 지명되지 못한 주요국이 한국을 포함해 30곳에 이르고, 이와 별도로 7개국은 대사 지명자가 발표됐지만 아직 상원 인준을 받지 못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 들어 비교적 신속히 대사 관문을 통과한 사람도 있다. 정치인 출신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대사가 대표적이다. 헤일리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나흘 만인 지난해 1월24일 상원의 신속한 인준을 거쳐 대사 관문을 통과했다. 이어 지난해 3월에는 트럼프의 파산보호 전문 변호사인 데이비드 프리드먼이, 5월에는 테리 브랜스태드 전 아이오와 주지사가 상원 인준을 받아 이스라엘 대사와 중국 대사로 각각 부임했다.
전통적으로 미국 대통령은 핵심 대사직의 3분의 1을 직업 외교관이 아닌 자기 입맛에 맞는 정무형 인사로 채워왔다. 트럼프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선 때 기부금을 많이 냈거나 정치적 친분이 있는 인사들에게 대사직을 안겼다. 이를테면 프로 미식축구 뉴욕 제츠 구단주로 공화당의 ‘큰손’ 후원자인 우디 존슨에게 영국 대사직을 주었다. 트럼프는 대선 때 수십만 달러를 후원한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공동 소유주 제이미 매코트에게 프랑스 대사직을, 2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한 여성 기업인 출신 켈리 크래프트에게는 캐나다 대사직을 선물로 각각 보답했다.
백악관은 국무부 탓, 국무부는 백악관 탓
일부 대사 지명자들이 상원 문턱에서 좌절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의원들을 가리켜 ‘업무방해주의자들’이라며 “이들이 대사직 후보자의 인준을 질질 끌고 있다”라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대사 후보의 인준 지연을 민주당 상원 의원들 탓으로만 돌리는 건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빅터 차 CSIS 한국석좌처럼 아그레망까지 거친 사람을 전격 내친 데서 보듯이 백악관의 자체 모순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대사직 후보 선발과 관련한 백악관의 지나친 간섭도 논란이다. 통상 대사 후보자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정무형인 경우 백악관 인사실이 후보 명단을 국무부에 보낸다. 국무부가 검토하고 승인한 뒤 백악관으로 다시 보낸다. 이후 백악관이 해당 후보를 최종 승인하면 대통령의 공식 지명과 함께 상원에 인준을 요청한다. 문제는 백악관이 정파적 인사를 대사 후보로 골라 국무부에 보내다 보니 상호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ABC 뉴스〉는 최근 익명의 백악관 관리의 말을 인용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트럼프와 이념적으로 가까운 백악관의 추천 후보를 승인하길 꺼려왔다”라고 노골적으로 불평했다. 대사직 선발을 놓고 초당적 인사를 선호하는 국무부와 친트럼프 인사를 선호하는 백악관 간에는 팽팽한 긴장이 있다.
국무부의 고충은 국무부 관리가 〈ABC 뉴스〉에 털어놓은 고백에서도 엿보인다. 이 관리는 “백악관은 전임 오바마 행정부와 정치적으로 너무 가깝거나 이란 핵 합의처럼 트럼프 행정부가 폐기를 약속한 정책에 깊숙이 관여한 인사들을 대사 후보직에서 철저히 차단한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대사 후보자들에 대한 ‘정치적 여과’ 과정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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