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섭의 ‘없음’에서 ‘있음’으로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 김승섭 교수(고려대 보건과학대학)가 이번 호부터 격주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사회역학자의 눈으로 본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을 데이터로 살펴봅니다. 데이터를 통해 ‘없음’에서 ‘있음’으로 가고자 합니다. 문제 해결은 그곳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첫 번째 글은 한국 산업재해 은폐 실태와 실제 규모를 규명합니다.

 

 

 

 

학생 한 명이 손에 붕대를 감은 채 수업에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습니다.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화상 입었어요.” 학생이 제게 물었습니다. “교수님, 이것도 산업재해 맞지요?”

 

산업재해라고 하면 중대 사고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이들이 건설 현장에서 추락하거나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리는 정도는 되어야 ‘산업재해(이하 산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다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은 것도 분명 산재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산재는 정말 흔합니다.

언론을 통해 종종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은 노동자가 하루 200명씩 다치는 나라라고요. 2015년 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보험) 자료를 기준으로 보면 매일 220명이 다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에서 일하다 다친 노동자는 최소한 그 자료에 나타난 숫자의 5배인 하루 평균 1100명입니다. 1년으로 환산하면, 2015년 한 해 동안 일하다 다친 노동자는 40만명이고, 이들은 모두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았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계산했기에 하루 1100명, 한 해 40만명 부상이라는 낯선 ‘숫자’가 나온 건지, 왜 산재보험 통계를 온전히 신뢰할 수 없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산재보험 통계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노동자 1810명이 일하다 사망하고, 8만999명이 다쳤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 수를 감안해 산재율을 계산해보면, 노동자 10만명당 5.3명이 일하다 죽었고 458명이 다친 셈입니다. 이 숫자를 유럽 국가의 산재 수치와 비교해보면 뭔가 이상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과 비교해보지요. 국제노동기구가 발표한 독일의 산재보험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노동자 10만명 중 1.6명이 일하다 사망했습니다. 독일 노동자는 한국 노동자와 비교할 때 일하다 사망할 위험이 3분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작업장 안전 문제에 엄격한 독일과 그렇지 못한 한국의 차이겠지요. 독일 노동자가 일하다 다칠 확률을 계산해보면, 10만명당 2371명입니다. 독일 노동자는 한국 노동자와 비교해서 다칠 확률이 5배 이상 높은 것입니다.

ⓒ시사IN 신선영한 노동자가 산업 현장의 높은 곳에서 위태로운 자세로 작업을 하고 있다.

죽을 확률은 높은데 다칠 확률은 낮다?

이 통계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독일 노동자와 비교할 때 한국 노동자는 일하다가 죽을 위험은 높지만, 작업장에서 일하다 다칠 위험은 압도적으로 낮습니다. 뭔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지요. 이 통계 수치들이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한국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상대적으로 숨기기 어려운 사망 사건에 비해 숨기기 쉬운 부상이 더 자주 은폐된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일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실제로 일하다 다친 노동자의 숫자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 문제를 각기 다른 방법으로 다룬 두 편의 연구가 있습니다.

첫째는 서울대 응급의학과 신상도 교수 연구팀의 ‘응급실 기반 직업성 손상 원인조사 연구’입니다. 이들은 일하다 다친 노동자 중 다수가 응급실로 온다는 점에 착안해, 전국 규모의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전국의 상황을 대표할 수 있는 30개 병원에서 2010년 11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1년 동안, 응급실로 찾아온 손상 환자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환자가 일하다 다쳤는지를 묻고, 또 이후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았는지 아니면 건강보험이나 그 밖의 제도를 이용했는지 확인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확인한 환자 수에 지역별 상황과 인구를 반영하는 가중치를 부과해 응급실에 내원하는 ‘일하다 다친 환자’의 규모를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1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일하다 다쳐 응급실에서 치료받은 환자는 16만3553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환자들이 모두 현행법상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직업이 군인이거나 자영업자인 경우, 요양 기간이 3일 이하인 경우는 일하다 다쳐도 산재보험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연구팀은 응급실에서 치료받은 직업성 손상 환자 중 산재보험의 요건을 만족시키는 환자 3859명을 추려내 별도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들 중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은 비율은 26%에 불과했습니다. 절반이 넘는 61%는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았고, 5%는 자동차보험으로, 나머지 8%는 의료급여나 민간보험으로 치료받았습니다.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았어야 하는 직업성 손상 환자 4명 중 1명만이 실제 산재보험으로 치료받고 있었습니다.

이 연구는 전국적인 실태를 대표할 수 있는 병원을 30개 선정하고 그곳에서 일어난 실제 데이터에 기초해 직업성 손상을 추정한 훌륭한 연구입니다. 그런데 이 연구로 한국의 산재 환자 규모를 실제로 추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일하다 다쳤을 때 외래 방문을 통해 치료받은 많은 사람들이 연구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또 사고가 발생하고 응급실로 갈 경우에는 노동부에 신고된다는 이유로 몇몇 대기업조차 응급실 의료 서비스를 기피하기도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는 연구가 가천의대 임준 교수 연구팀에서 작성한 ‘국가안전관리 전략 수립을 위한 직업안전 연구’ 보고서입니다. 연구팀은 2006년 한 해 동안 건강보험에서 손상 항목으로 치료받은 이들 중 연령·성·중증도 등을 고려한 무작위 추출을 통해 전체 인구를 대표할 수 있는 손상 환자 1만8000명을 선정해 전화 면접을 실시합니다. 그 결과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은 손상 환자 중 22.5%가 직업·경제활동으로 인해 다쳤던 것으로 드러납니다.

ⓒ연합뉴스2016년 한 해 산재로 다치고도 자신의 돈으로 치료받은 이들이 32만명에 달한다.


연구팀은 국가 대표성이 명확한 이 데이터를 활용해 2006년 한 해 동안 건강보험을 이용한 직업성 손상 건수를 추정했습니다. 모두 277만 건입니다. 2006년 기준으로 경제활동인구가 2400만명가량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1년 동안 10명 중 한 명은 일하다 다쳐 병원 치료를 받은 셈입니다. 연구가 진행된 2006년 한 해 동안 산재보험을 이용한 직업성 손상 환자가 7만9675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일하다 다친 노동자 36명 중 1명만이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은 것이지요.

 

 

앞서 응급실 기반 연구와 마찬가지로, 직업성 손상 환자 277만명이 모두 산재보험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일단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노동자로 제한하고 나면 이 중 100만명이 남습니다. 여전히 같은 기간 산재보험을 이용한 직업성 손상 환자와는 12.6배 차이가 납니다. 즉,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사업장에서 일하다 다친 노동자 12.6명 중 1명만이 산재보험으로 치료받고 있다는 결과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보고서에서 인용한 숫자를 이용해서 100만명 중 4일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숫자를 추정해보는 것입니다. 손상 정도가 경증인 경우를 제외하고 계산을 진행하더라도, 직업성 손상을 경험한 노동자 5명 중 한 명만이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았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즉,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아야 하는 5명 중 4명은 산재보험을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응급실 기반 감시 시스템과 건강보험 데이터를 이용한,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을 택한 두 개의 신뢰도 높은 연구는 공통적으로 말합니다. 한국에서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직업성 손상을 경험한 노동자 대부분이 산재보험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요.

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일하다가 다쳤을 때, 산재보험을 신청하는 게 그리 녹록지 않다는 점을요. 산재보험을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노동자도 여전히 많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와 관계가 껄끄러워질까 봐 자신의 건강보험으로 치료받기도 합니다. 조금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는 특정 병원을 지정해서 산재가 아닌 ‘공상’이라는 이름으로 치료를 합니다. 공상의 경우 당장 필요한 치료비는 내주지만, 산재보험과 달리 이후 후유증을 치료할 수 없을뿐더러 증상이 악화되어 결근을 하면 임금을 보전해주지도 않습니다.

2013년 당시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산재 은폐가 일어나는 현실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산재 은폐를 확인하기 힘들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인하지 않는다”라고만 말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참혹합니다. 일하다 다친 5명 중 한 명만 산재보험으로 치료받고 있는 현실을 두고서, 산재 은폐도 존재한다고 말하기보다는 아픈 노동자 중 극히 일부만 산재보험으로 치료받고 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한 이야기 아닐까요.

한국의 산재 예방 정책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산재 발생을 실제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산재 발생 시 보고하는 숫자를 줄이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보험료 개별실적 요율제’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사업장에서 재해가 많이 발생하면, 사업주가 부담하는 보험료가 증가합니다. 본래 제도는 보험료 인상을 막기 위해 사업주가 적극적으로 산재 예방에 힘쓸 거라는 기대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실제 결과는 그와 다릅니다.

2017년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제도에 따라 2015년 삼성이 1009억원, 현대자동차가 785억원, SK와 LG가 379억원의 산재보험료를 각각 할인받았습니다. 힘 있는 기업들은 산재보험료 감면을 위해 노동자가 다치면 공상 처리를 합니다. 대기업에서 산재가 발생하면 노동자는 국민이 세금을 내어 모은 기금인 건강보험으로 치료받고, 기업은 산재가 안전보건공단에 적게 신고되니까 할인을 받는 것이지요.

 

 

 

 

ⓒ시사IN 이명익2015년 12월22일 서울 서초구 삼성 본사 앞에서 열린 ‘삼성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반올림 집회’ 모습.

대기업이 산재 발생을 줄이는 방법은 공상 처리만이 아닙니다. 다치기 쉬운 작업일수록 하청 노동자에게 넘겨 그 위험부담을 줄이곤 합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하청 노동자들은 다쳐도 산재보험을 신청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은수미 전 의원이 2011~2013년 사내하청 노동자의 건강보험 데이터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산재를 경험한 23명 중 1명만이 산재보험으로 치료받는다고 답했습니다. 

의과대학 시절,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얼굴을 참혹하게 다친 어린아이의 사진을 보여주고 학생들에게 진단명을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어쩌다가 저렇게 된 것인지 의아할 만큼 많이 일그러진 얼굴 사진이었습니다. 사진을 보며 보통 저 상태가 되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생각을 했습니다.

노동자의 고통에 대한 구조적 무감각증

교수님이 그 환자의 진단명을 이야기해주셨을 때, 저를 포함한 학생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희귀병 중 하나인 ‘선천성 통증 무감각증(Congenital insensitivity to pain)’이었습니다. 이 질병을 가진 환자는 통증을 느끼지 못합니다. 골절이나 화상을 입어 위험한 상황이 되어도 환자는 그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기에 많은 경우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합니다. 통증은 괴롭지만, 제대로 고통을 인지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통증을 느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통증의 원인을 제거하거나 최소한 그로부터 멀어질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가장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고통에 대해 구조적인 무감각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약한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에게 절대로 아프다고 말하지 말라며 입을 틀어막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신음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정부는 아픈 사람이 없다고 발표합니다.

산재보험 자료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동안 일하다 다친 노동자 수는 전해보다 1781명이 증가해 8만2780명입니다. 하지만 전체 노동자 수가 증가해 노동자 10만명당 업무상 사고 재해율은 2015년 458명에서 2016년 450명으로 감소했습니다. 미세하지만 일하다 다치는 노동자가 감소한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 변화의 의미를 해석할 자신이 없습니다. 일하다 다친 노동자의 80% 이상이 빠져 있는, 그것도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 다친 가장 약한 이들의 상처가 배제된 숫자니까요. 한국에서는 일하다 다친 5명 중 단 한 명만이 산재보험으로 치료받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우리에게 보다 절박한 숫자는 2016년 한 해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은 8만명이 아니라 산재로 다치고도 자신의 돈으로 치료받은 32만명입니다. 산재보험 통계에 ‘보이지 않는’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이렇게 많은 노동자가 일하다 다쳤는데, 어떻게 세상이 이리 조용할까요. 그들 대부분은 아프다는 신음 소리조차 세상에 내지 못한 것 아닐까요. 한국 사회의 가장 절박한 질문은 ‘그들이 어떻게 해야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우리가 그들의 삶에 더 귀 기울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 상처를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 그 고통은 노동자의 몸이 온전히 감당해야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고통도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게 이 순간에도 건설 노동자들의 어깨와 콜센터 노동자의 손목과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의 허리에는 계산되지 않은 고통이 점점 쌓이고 있습니다.

 

 

기자명 김승섭(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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