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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되는 노래 위로가 되는 목소리

관객들은 뮤지션 장필순의 공연을 보며 운다. 장필순씨는 “내 목소리에 위로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노래할 때 절제한다. 그때 사람들이 음악에 들어오는 공간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이기용 (허클베리핀 리더)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2월 08일 목요일 제5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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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 ➁ 장필순

음악은 누군가를 진정 위로한다. 낮에는 힘든 줄도 모르게 속내를 감추고, 밤이 되면 우리를 슬프게 하는 온갖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 밤이면 하늘에 1000개의 눈이 있는 듯하다. 뮤지션 장필순은 목소리만으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다. 아이유를 비롯한 많은 후배 여성 뮤지션들이 그를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그들 역시 ‘장필순의 목소리’에 위로받은 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장필순씨는 1989년에 동아기획에서 ‘어느새’로 솔로 활동을 시작해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와 같은 곡들로 주목받았다. 지금까지 정규 앨범 7장을 발매했다. 그중 5집과 6집은 손꼽히는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장필순씨는 ‘제주 붐’이 일기 전인 2005년 제주로 이주해 반려견 8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우리가 제주 애월에서 만난 날도 그는 오는 길에 보았다는 유기견 이야기로 인사를 대신했다.


ⓒ시사IN 자료
장필순씨는 ‘소길화’라는 시리즈로 정규 8집에 실릴 곡들을 발표하고 있다. 이미 10곡을 디지털 싱글로 발표했고 3곡 정도 추가해 봄에 정규 8집을 낼 예정이다.
이기용:많은 이들이 음악을 듣는 이유 중 하나가 갑갑한 현실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어서일 것이다. 최근 발표한 싱글 음악을 듣다 보면 그런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장필순:정말 그렇게 들린다면 내게 그 이상의 칭찬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 굉장히 서툴다. 으라차차 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 좋겠는데 그런 걸 잘 못한다. 예전의 나는 어느 순간 상대와 편해졌을 때에만 겨우 조금 이야기를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은 인자해지고 싶고 너그러워지고 싶고 좋은 사람이고 싶다. 노래와 노랫말을 통해서 무대 위의 내 목소리에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노래할 때 되도록 절제한다. 과장하지 않고 가장 단순하게 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이 음악에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용:그렇게 자신을 바꾸고 난 후 공연장에서 어떤 일들이 생겼나?

장필순:한동안 음악을 쉬다가 다시 하니까 사람들이 공연을 보다가 울더라. 노래하는 모습이나 내 목소리에 눈물이 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게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깨끗하게 정화되는 눈물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더라. ‘내가 그런 음악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떤 사람은 받은 선물이 너무 많고, 어떤 사람은 평생 예쁜 카드 한 장 못 받기도 한다. 제주에 왔을 때 세상에 대한 실망이 컸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무력감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소리 내 울기도 하고. 예전에는 그런 우울함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상황이 되어도 마음을 돌릴 수 있게 되더라. 가장 큰 변화는 나를 만들고 있는 모든 것들에 그래도 감사하다는 마음을 갖게 된 게 아닐까 한다. 지금은 많이 편해졌다.

이기용:음악 다큐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은 마이클 잭슨, 스팅, 스티비 원더 등 세계적인 뮤지션 뒤에 선 ‘코러스’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장필순씨도 데뷔하기 전 상당 기간 코러스를 했다는데.

장필순:어릴 때 성가대에서 화성 파트를 했다.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는데 코러스를 잘해 코러스 파트 지도를 맡기도 했다. 내 목소리가 탁성이어서 남학생들 앞에서 이야기도 잘 못할 정도로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내 목소리는 밖에서 노래해서는 안 되는 허스키 보이스였다. 기타 치는 여고생이 드물던 때라 내가 기타를 메고 다니면 다들 이상하게 봤다. 그런데도 그저 음악이 좋았다. 교회에서, 대학 음악서클에서 계속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때까지 목소리 멋지다는 말을 한 번도 못 들었는데 솔로 앨범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보이스 컬러가 매력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무렵 ‘너는 네 목소리로 나중에 가요계에서 중요한 가수가 될 거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기용:그런 결정적 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누구였나.

장필순:들국화 오빠들이었다.

이기용:밴드 들국화는 1980년대 동아기획의 주요 일원이었다. ‘어느새’가 들어 있는 장필순의 1집 앨범 역시 동아기획에서 나왔다.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동아기획의 역할은 대단했다.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도 받았다.

장필순:공연 팀 막내로 들국화나 어떤날 같은 선배들의 코러스를 도와주며 동아기획과 원래 교류가 있었다. 그러다가 김현철이라는 젊은 작곡가 겸 가수를 만났다. ‘어느새’라는 노래를 가져온 현철이가 만든 데모 테이프(견본 음악)에 내가 노래를 불러서 김영 동아기획 대표에게 들려줬다. 그 후 개성 있는 목소리로 점차 알려지게 됐다. 박학기, 어떤날, 조동진, 들국화, 김현식, 봄여름가을겨울, 신촌블루스 등이 함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양음악이라는 것이 한꺼번에 들어와서 음악을 하는 모두에게 새로운 기운이 막 일어나던 시기였던 것 같다.

이기용: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이 한곳에서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대단했을 듯하다. 한편 당시 팬들은 동아기획에서 나온 음반을 들으며 가수 말고도 악기 연주자들의 면면에 처음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던 것 같다.

장필순:우리처럼 음악하는 사람들이 음악만으로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방송을 타야 하고, 유명해져야 하고, 다들 기획사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돈을 버는 게 가수이고 뮤지션였으니까. 그때는 ‘음악을 한다’ 하면 대부분 가수였다. 그런데 연주자· 작곡가·작사가도 음악 안에서 똑같은 무게를 가진다는 걸 동아기획이 사람들에게 알게 해줬다. 베이스, 피아노, 신시사이저 등의 연주자들에 대한 관심이 생긴 거다.

이기용:조동익씨는 장필순씨의 음악적 동반자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년간 장필순의 모든 음악의 프로듀서였다. 조동익씨는 어떤 사람인가?

장필순:내 눈에 비친 조동익은 천생 음악을 해야 할 사람이다. 엄청난 노력파다. 24시간 음악과 함께한다. 기존에 했던 음악을 계속하는 걸 스스로 못 견뎌하는 사람이다. 지금도 매일 새로운 음악을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신뢰가 가고, 나도 함께 듣게 된다. 언제까지 음악을 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나는 조동익씨와 할 거다(지난해 타계한 한국 포크음악의 거장 조동진이 조동익의 형이다. 조동익씨는 영화음악가 이병우씨와 전설적인 포크 듀오 ‘어떤날’을 함께했다).


장필순씨는 ‘소길화’라는 시리즈로 정규 8집에 실릴 곡들을 발표하고 있다. 이미 10곡을 디지털 싱글로 발표했고 3곡 정도 추가해 봄에 정규 8집을 낸다. 그는 ‘작업 후반부로 갈수록 곡들이 더 단순해졌다’고 말했다. 통기타에 노래를 부르고 나면 더 이상 할 게 없어서 마지막까지 ‘이게 맞는 걸까’ 하는 고민을 놓지 않는단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풍경이 되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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