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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폭력의 ‘거울 이미지’

마흔여덟 살 월리스는 스물아홉 살 반 도겐과 사귀었다. 집착이 심했던 월리스는 이별을 통보받자 반 도겐의 얼굴에 황산을 들이부었다.

김세정 (영국 GRM Law 변호사)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2월 08일 목요일 제5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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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5년을 사귄 사이였다. 벨리나 월리스가 마흔여덟 살이고 반 도겐이 스물아홉이었으니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커플이었다. 월리스는 매우 폭력적이었다. 2014년에는 말다툼을 한 후 반 도겐에게 끓는 물을 붓기도 했다. 칼로 반 도겐의 목과 등을 그어 상처를 냈고, 상대를 끊임없이 통제하려 했으며 이메일을 뒤졌다. 반 도겐은 몇 차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둘의 관계는 가장 폭력적인 형태의 파국을 맞았다.

2015년 8월 반 도겐이 새로운 상대를 만난다는 걸 알게 되자 월리스의 폭력성은 강도가 세졌다. 반 도겐의 직장 동료들은 “반 도겐이 월리스를 정말로 두려워했다”라고 말했다. 반 도겐은 월리스에게 둘의 관계는 끝났다고 선언한 뒤 두 사람이 동거하던 집을 떠나 호텔로 거처를 옮겼다.

둘의 관계는 그렇게 쉽사리 끝나지 못했다. 2015년 9월22일, 두 사람은 앞으로 다시 잘해보자는 내용의 메시지를 교환했다. 하지만 이 대화는 둘 다 서로에게 진심이 아니었던 것 같다. 반 도겐은 이 메시지 교환 후 월리스에게 가지 않고 새 애인의 집에 갔다. 월리스와 다시 살고 싶지 않다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경험에 비추어볼 때 월리스는 심하게 자해를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반 도겐은 며칠 뒤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밤 10시쯤 월리스의 집으로 갔다. 다음 날 새벽 3시쯤, 월리스가 방으로 들어와 자고 있던 반 도겐을 깨웠다. 월리스는 황산을 반 도겐의 얼굴에 들이부었다.

ⓒSWNS
벨리나 월리스는 남자친구 반 도겐이 황산으로 자신을 죽일 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반 도겐은 속옷만 입은 채 길로 뛰쳐나갔다. 비명을 질렀고 살이 타들어가는 냄새가 났다. 이웃 주민들이 뛰어나와 도우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반 도겐은 급히 화상 전문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몸의 25%가 넘는 부위에 화상을 입고, 한쪽 눈은 완전히 실명했으며 다른 눈 역시 거의 시력을 잃었다. 한쪽 다리는 무릎 밑으로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혀를 제외한 온몸이 마비되었다. 혀를 움직여 철자를 가리키는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기까지 다섯 달, 말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아홉 달이 걸렸다. 반 도겐은 2016년 7월, 월리스에 대한 재판에서 비디오를 통해 증언을 할 수 있었다. “잠을 자고 있다가 깨어나 보니 월리스가 침대 옆에 서 있었다. 월리스가 큰 소리로 웃으며 ‘내가 너를 가질 수 없으면, 아무도 너를 가질 수 없어’라고 말했고, 그다음 기억나는 것은 거리에 뛰어나가 비명을 지르는 내 모습이다.”

반 도겐은 그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되었고, 겪어야 하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은 끔찍했다. 폐가 감염되면서 목에 구멍을 뚫어야 했는데 의사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될 확률이 95%에 달한다고 진단했다. 반 도겐은 더 이상의 고통이나 더 이상의 수술을 바라지 않았다. 차라리 죽는 순간까지 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랐다.

결국 반 도겐은 안락사를 신청했다. 2017년 1월 얼굴에 황산이 부어진 지 15개월 만에 벨기에의 한 안락사 클리닉에서 사망했다. 아버지가 곁에서 죽음을 지켜보았다.

ⓒSWNS
한쪽 눈이 실명되고 한쪽 다리를 무릎 밑으로 잘라내고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된 반 도겐은 결국 안락사를 택했다.
‘황산을 마시면 죽나’ 검색한 사람은?


월리스는 반 도겐에 대한 살인죄로 기소되었다. 비록 월리스의 행위로 반 도겐이 직접적으로 사망한 게 아니라 반 도겐의 자유의사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지만, 월리스의 행위가 없었다면 반 도겐의 죽음 역시 없었을 것이라고, 즉 월리스의 행위와 반 도겐의 사망 간에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검찰은 보았다.

월리스는 자신이 컵에 담긴 무언가를 반 도겐에게 던진 사실은 인정했다. 월리스는 당시 컵에 담긴 게 물인 줄 알았고, 컵을 반 도겐에게 던졌을 뿐 죽일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반 도겐이 자기 몰래 컵에 황산을 따라두었고 자기에게 물컵에 든 것을 마시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월리스가 사생활을 가지고 반 도겐을 협박하려 들었고 이를 알게 된 반 도겐이 월리스에게 황산을 마시게 해 죽일 계획이었으나, 결과는 계획했던 바의 ‘거울 이미지(mirror image)’였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황산을 마시면 죽는가’라는 질문을 검색해본 이는 월리스였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그리 특이하지 않은 데이트 폭력으로 보인다. 질투심 많고 집착하는 사람이, 애인이 헤어지자고 했다거나 변심했다는 이유로 상대를 죽이거나 폭행하는 사건 말이다. 황산을 사용하는 것 역시 드문 일은 아니다. 황산을 이용한 ‘명예 살인’은 오히려 너무 많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지 않는 사건 아닌가. 이런 사건에는 사랑 때문이라거나 자존심 때문이라는 설명이 따라붙기도 한다. 변심한 쪽이 비난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이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가해자가 여성이고, 피해자가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벨리나 월리스는 중년의 흑인 여성이었고, 마크 반 도겐은 젊고 덩치가 큰 백인 남성이었다. 말하자면 이 사건 자체가 일반적인 데이트 폭력 사건들의 ‘거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이 벌어지기 3주 전, 반 도겐은 공포에 질려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월리스가 자기뿐 아니라 새 여자친구까지 위협하고 있다며 ‘무언가를 좀 해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은 월리스가 반 도겐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가 위협적이라고 보지 않았다. 경찰은 월리스가 협박이 아니라 자기에게 돌아오라고 ‘애원’을 하는 것으로 여겼다. 경찰은 월리스를 방문했지만 매우 조용한 여자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경찰의 생각과 달리 월리스는 경찰이 방문하기 전날 이미 아마존을 통해 황산을 구입해두었다.

2017년 11월 법적인 문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재판이 연기되고, 배심원들은 해산되었다. 이에 대한 심리는 오는 4월 다시 재개된다. 쟁점은 황산을 던진 행위와 안락사 선택으로 인한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것인가이다.

어쨌거나 나이 든 여자가 젊고 잘생긴 남자에게 버림받아서 황산을 부은 이 사건에 대하여 사랑 때문이라거나 자존심을 말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게 옳은 반응이다. 데이트 폭력은 그저 폭력이고 범죄일 뿐이기 때문이다.

※ 이번 호로 ‘김세정의 하드보일드’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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