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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대신 소방관을 갈아넣은 결말

제천 스포츠센터와 밀양 세종병원은 안전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재난 위험을 없는 셈치고 안전에 과소 투자하는 익숙한 풍경이 두 화재 사건에서 되풀이해 확인되었다.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2018년 02월 08일 목요일 제5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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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화재 참사가 잇따른다. 지난해 12월21일 발생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 29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쳤다. 1월26일 경남 밀양 세종병원에서 또다시 큰불이 났다. 40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을 입었다(2월2일 기준). 제천 스포츠센터와 밀양 세종병원은 모두 안전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안전규제가 참사를 막는 1차 저지선이라면 소방관의 현장 구조 활동은 2차 저지선이다. 안전규제가 무너지면 소방관들에게 더 큰 하중이 가는 구조다. 그러나 소방 인력과 장비 예산이 부족하다는 건 하루 이틀 지적된 문제가 아니다. 재난 위험을 없는 셈치고 안전에 과소 투자하는 익숙한 풍경이 제천과 밀양에서 되풀이해 확인됐다. 이것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제천 참사는 치명적인 교훈을 남겼다. <시사IN>은 정부 소방합동조사단이 제천 화재 원인과 구조 과정 등을 조사한 ‘제천 복합건물화재 합동조사 종합보고(이하 제천 합동조사보고서)’를 입수했다. 이 보고서는 인력 부족과 그로 인해 허약해지는 현장 구조 역량을 건조하게 증언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지난해 12월21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이 불길을 진압한 뒤 잿더미가 된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1월24일 충북 제천소방서. 분위기는 얼어붙어 있었다. 영하 19℃ 한파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천 화재 당시 초기에 출동했던 한 소방관은 자괴감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말했다. “좀 더 일찍 도착했다면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전에 구하지 못했던 희생자들까지 밤마다 떠오른다.” 그는 제천소방서와 산하에 있는 안전센터 직원 중 상당수가 심리 상담을 받으며 약을 먹는다고 했다. 인명구조 실패의 책임을 물어 제천소방서 서장과 지휘조사팀장은 직위 해제된 상태다. 참사 당일 긴급 출동했던 대원 중 일부는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정부 소방합동조사단은 초기에 현장을 지휘했던 제천소방서 지휘조사팀장과 소방서장의 대응이 적절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다. 제천 합동조사보고서를 보면, 당시 상황은 이렇다. 지휘조사팀장과 소방서장은 건물 2층에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는 사실을 119 상황실에서 전달받았지만 신속하게 2층 진입을 지시하지 않았다. 2층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건 최초 출동 이후 33분이 경과되어서였다. 목욕탕 2층 여탕에서만 사망자 19명이 발생했다.

화재 초기 2층 진입이 가능했는지 여부는 주요한 진상 규명 과제였다. 제천소방서는 화염과 고열 때문에 건물 접근이 어려웠고, 섣불리 유리창을 깨면 갑자기 산소가 유입돼 불길이 치솟는 ‘백드래프트 현상’이 발생할 위험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합동조사단은 측·후면 유리창으로 2층 진입이 가능했으며 백드래프트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희박했다고 발표했다. 지휘조사팀장이 전체 상황을 파악해 인명 구조를 최우선으로 하는 인력 재배치 지시를 내리지 않은 점도 문제 삼았다. 합동조사단 조사 결과 지휘조사팀장은 출동 전후 구조대장에게 상황을 전하지 않았다. 합동조사단은 “지휘관으로서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라며 지휘조사팀장과 소방서장의 중징계를 요구했다.

제천 화재 초기 진압대원 6명뿐


잘못된 판단으로 희생자들을 구하지 못한 제천소방서 지휘 라인의 책임은 무겁다. 그런데 ‘잘못된 판단’을 내린 원인을 현장 지휘관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당시 구조 현장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제천 합동조사보고서는 지휘 라인의 책임뿐만 아니라, 제천소방서의 열악한 인적·물적 자원 또한 기록해두고 있다.

2017년 12월21일 오후 3시53분, 화재 신고를 접수한 제천소방서는 오후 4시 스포츠센터에 도착한다. 선착대는 소방차 4대와 소방관 13명으로 구성됐다. 소방관은 지휘조사팀장, 화재조사관, 진압대원 4명, 구급대원 2명, 의무소방관 2명, 차량 담당 3명이었다. 이들 중 실질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고 건물에 진입할 수 있는 소방관은 진압대원 4명뿐이었다. 지휘조사팀장은 현장 지휘를 담당하고, 화재조사관은 발화 원인을 찾는 업무를 맡는다. 구급대원은 부상자 구호를, 차량 담당은 소방차에 머무르며 장비를 조작해야 한다. 의무소방관은 법적으로 보조 역할만 할 수 있다. 1분 뒤 소방차 한 대가 더 오고 소방관 2명이 추가돼 진압대원은 6명이 되었다.

선착대 도착 시점에 화재는 이미 최성기에 도달했다. 스포츠센터 1층 주차장에는 2t짜리 LPG 탱크와 불이 옮아붙은 차량 16대가 있었다. 3층 창문에는 1명이 매달려 있었다. 지휘조사팀장은 LPG 탱크에 불이 옮아붙지 않게 하고 3층 창문에 매달린 이를 구조하는 데 집중했다. 이 LPG 탱크는 폭발 시 TNT 폭약 840㎏과 동일한 위력이다. 이 정도면 반경 72m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축구장 약 1.5개의 면적에 피해가 발생하는 셈이다. 결국 지휘조사팀장은 LPG 탱크 폭발 방지, 차량 16대 화재 진압, 3층에 매달린 시민 구조와 함께 유리창을 깨고 2층에 진입하라는 지시를 동시에 내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진압대원은 6명이 전부였다. 소방 호스는 2명이 같이 잡아야 하기 때문에 6명을 각기 따로 투입할 수도 없었다. 선착대가 출동한 지 4분 뒤부터 진압대원이 증원되기 시작했다. 합동조사단은 “초기 상황은 선착대 인력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라고 파악했다. 서울과 비교하면 “역부족”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서울 지역 소방서의 경우 재난 사고 현장 선착대는 차량 15대, 소방관 44명이 출동하게 돼 있다. 제천 참사의 선착대보다 차량과 소방관이 모두 3배 이상 많다.

ⓒ시사IN 신선영
경남 밀양시 밀양문화체육회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제천소방서 전체가 만성적 인력 부족을 겪고 있었다. 참사 당일 출동했던 굴절 사다리차의 법정 인원은 3명이지만 실제 탑승한 소방관은 운전사 1명이었다. 이 소방관은 평상시에 굴절 사다리차에 더해 물탱크, 조연차까지 담당했다. 굴절 사다리차를 담당한 지는 4개월밖에 안 되었다. 조작 미숙으로 잠시 구조 활동이 지연되기도 했다. 제천소방서에는 차량을 2대 이상 담당하는 직원이 21명에 달한다. 직위 해제와 중징계 요구에 처해진 지휘조사팀장은 참사 당일 본래 근무가 없는 날이었다. 제천소방서 지휘조사팀장 3명 가운데 1명이 휴가 중이어서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대신 출동했다.

제천소방서는 우리나라 소방 시스템의 축소판이나 마찬가지다. 참사로 인명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소방 인력과 장비 부족 문제가 지적됐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소방 인력 부족률은 37.2%이며 소방관 1만9000여 명이 더 충원돼야 한다. 시·도별로 살펴보면 필요 소방 인력 대비 실제 소방 인력은 서울이 93.9%, 부산을 비롯한 광역시는 70% 이상이다. 나머지 광역단체들은 60%대 이하다(23쪽 그래프 참조). 제천소방서가 속한 충북은 충원율이 48.6%로 세종시에 이어 두 번째로 낮다. 충북은 장비 노후화 정도도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번 제천 스포츠센터 참사에서도 무선통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119 상황실과 현장 간 연락에 무전기 대신 휴대전화를 사용했다.

밀양소방서가 속한 경남은 소방 인력 충원율이 55.3%이다. 1월26일 세종병원에서 화재 신고를 받고 처음 현장에 도착한 선착대는 소방차 4대, 소방관 10명이었다. 13명이 출동했던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 선착대보다 규모가 작다. 다만 밀양소방서는 선착대가 현장에 도착하고 2분 뒤에 대응 1단계를 발령해 비교적 빠르게 소방 인력이 확충된 것으로 보인다. 제천 참사 때는 선착대 도착 12분 뒤에 대응 1단계가 발령됐다. 밀양소방서는 “화재 신고 접수 3분 만에 선착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1층 응급실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재 진압을 위해 진입을 시도했다. 그와 동시에 사다리를 전개해 (다른 층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부터 먼저 구조했다”라고 밝혔다.

이번에 불이 난 제천과 밀양처럼 시·도별로 소방 여건이 크게 차이 나는 것은 소방관이 지방직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광역소방체제로서 소방청에 속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소방관 대다수가 광역단체에 속해 있고, 광역자치단체별 소방 권한도 광역단체장이 가지고 있다. 광역단체의 재정자립도나 단체장의 관심도에 따라 소방 안전에 투입되는 예산과 자원이 달라진다.

소방·재난 관리 예산은 광역단체의 자원 배분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고나 피해를 대비하는 예산은 효과가 눈에 띄지 않고, 대형 사고가 없는 시기에는 필요성도 절감하기 쉽지 않다. 이런 속성 탓에 중앙정부에서 나오는 교부금은 소방 현장까지 닿지 않는다. 소방 업무에 쓰려는 목적으로 배정한 소방안전특별교부금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안전 업무라는 명목으로 소방 이외의 다른 사업에 투입되기도 한다. 결국 소방 업무의 품질이 지역에 따라 들쭉날쭉해진다.

지역 따라 들쭉날쭉한 소방 업무 품질


지원은 부족한 반면 소방서에 들어오는 민원은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에도 119 구조대는 고드름 제거 작업을 하다가 선착대보다 6분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한 소방관은 “자판기에 비유하자면 정부는 10원을 넣고 100원의 효과를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90원어치 짐은 일선 소방관들이 짊어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을 약속했다. 정부는 지방직 소방공무원 4만5000여 명을 2019년 1월부터 국가직으로 전환하고, 2022년까지 소방관 1만8000명을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정부안에 따르면 인사권과 지휘권은 현행대로 시장·도지사가 갖고 예산도 시·도에서 편성할 수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인 한 여당 의원실 보좌관은 “국가직 전환에 대해 지자체장들의 반발이 심하니 절충하는 차원에서 나온 방안이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재정을 지원해 장비나 예산 수준을 전국적으로 상향 평준화하자는 거다. 정부안은 확정된 게 아니다. 계속 논의 중이다”라고 말했다. 국가직 전환을 위해서는 소방공무원법을 개정해야 한다. 국회의 협조가 필요한 사안이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많은 소방관들이 국가직 전환을 주장하는 건 그렇게라도 해야 재정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근무하는 23년차 한 소방관은 “일선 소방관들은 인력이 충원되고, 장비 노후화만 해소되면 지방직도 상관없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소방관들이 국가직 전환을 염원한다는 보도가 줄곧 나왔지만 그게 만능은 아니다. 소방 업무는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필요하다. 한 지역에 오래 근무하면 샛길까지 훤히 알고, 그 집에 사는 할머니가 몇 살이고 가족이 있나 없나 이런 것까지 알 수 있다. 국가직으로 전환되면 전국적으로 인력 순환이 일어날 수 있어서 그런 이점이 사라지기 쉽다”라고 덧붙였다.

소방행정 체제에 중앙집권과 지역분권 중 어떤 형태가 더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하다. ‘예산’ 대신 ‘소방관’을 갈아넣는 방식이 지속된다면 제천, 밀양 이후에도 참사는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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