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떠나서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그런데 주변에서 자꾸만 왜 헤어졌느냐고 물어. 마음이 없어져서라고 말했는데도 못 들은 것처럼 다시 물어봐. 진짜 그게 다냐고.” 친구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착하고 좋은 사람인데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아졌다는 이유만으로 헤어져도 되는 걸까?” 다른 친구가 한참을 망설이다 말했다. “왜 헤어졌어? 혹시 여자 생겼다니? 솔직히 말해도 돼. 그냥 그랬을 리는 없잖아.” 생각 끝에 이별을 결정했다는 딸에게 엄마가 물었다.
 

ⓒ정켈 그림

여성과 남성이 맺은 연애 관계가 끝났을 때, 여성을 둘러싼 주변인들은 으레 이유를 묻는다. 여성은 그들을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가까운 타인의 이별을 걱정할 수도 있다. 이유가 궁금할 수도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당사자인 여성의 의사는 납득할 만한 이유 축에 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다른 이유 없이 마음이 떠났다는 말만 한다면 의아한 반응을 얻거나, 다른 중대한 이유를 감춘 것 같다는 의심을 받는다. 혹은 계속 사귀라는 권유를 받는다. 이런 상황을 직간접으로 경험하다 보면, 여성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관계를 끝낼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는가. 자기 자신이 이 관계를 더 이상 원치 않는다는 ‘못 미덥고 사소한’ 이유 말고, 그럴싸한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는가. 그렇게 여성은 자기 자신의 의사를 묵살한다.

나 역시 이 주제 앞에서 머뭇거린다. 이 이야기가 페미니즘으로 받아들여지겠는가, 사회문제를 다루는 지면에 적합하겠는가. 나도 모르게 주저하게 되지만 대답은 단연코 ‘그렇다’이다. 피로할 정도로 연애를 권장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가장 친밀한 관계라 일컬어지는 연인과의 사이 하나도 자기 마음에 따라 결정하지 못한다. 심한 경우 ‘그래도 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성별을 떠나 타인의 일에 간섭하기 좋아하는 한국 사회의 특징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따져보면 이것은 이성애 관계를 맺은 남성과 여성 간의 권력 차이가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억압이다. 여성의 마음에 비해 남성의 마음은 훨씬 중요하게 여겨진다. 남성은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이 자신의 마음 하나만으로 모든 질문을 생략할 수 있다. 관계를 그만두는 것은 물론이고, 관계를 그만두고 싶다는 여성을 죽이기도 한다. 그뿐인가. 관계를 시작하지 않은 여성을 죽이기도 한다. 남성의 마음은 적극적으로 이해되며 모든 책임에서 면제된다. 언론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의 마음’을 기사의 타이틀로 실어준다.

“왜 남성을 그렇게 하게 만들었습니까”

이런 환경 속에서 여성은 자신의 마음을 의심하고 남성의 마음에 기꺼이 감정을 이입한다. “그래서 그랬대”라는 말이 아무 데나 붙는다. “화나서 그랬대” “만나주지 않아서 그랬대” “사랑해서 그랬대”. 원인을 촉발시킨 쪽은 다시 여성이 된다. 사람들은 여성에게 묻는다. “왜 남성을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여성의 마음은 자신이 맺은 관계 하나 정리할 수 없이 가벼운데 남성은 타인의 생명도 자유로이 침해할 수 있을 만큼 무겁다. 오늘날 자꾸만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폭력 자체에 관한 논의뿐 아니라, 관계가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무시되는 여성의 의사와 그것이 사회적으로 다루어지는 방식을 함께 살펴야 한다. 걱정, 관심, 안타까움과 같은 따스한 말들이 무엇을 낳는지 보아야 한다.

남성이 홧김에 헤어진 연인의 부모까지 살해하는 동안, 여성은 홧김에 헤어지기도 어렵다. 홧김에 헤어지자고 말한 여성은 이별을 통보받은 남성에 의해 홧김에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남성의 마음 하나로 모든 게 ‘충분해지는’ 상황을 끝내야 한다. 이 불균형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멈출 수 없다.

기자명 이민경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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