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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우월주의에 대한 음악 처방전

록은 1960년대를 거치면서 신화가 되었다. ABTB는 하드 록에 기반하면서도 그것을 현대적으로 다듬어내는 드문 밴드다.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2월 07일 수요일 제5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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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TB. ‘Attraction Between Two Bodies’의 준말이라고 한다. 해석하면 ‘두 물체 간의 이끌림’인데, 만유인력의 법칙을 풀이한 거라고 부기되어 있다. 과연, 참 적확한 네이밍이구나 싶다. 당신이 록 팬이라면 ABTB의 노래들 중 아무거나 꼽아 들어도 매력을 느낄 게 분명한 까닭이다.

ⓒ연합뉴스
록 그룹 ABTB는 올해 <어트랙션 비트윈 투 보디스>를 재발매했다.

1950년대 중반, 로큰롤이 탄생한 뒤 록은 1960년대를 거치면서 신화가 되었다. 당시 록은 상업적 팝에 대한 안티테제이자 기성에 대한 계시적 반항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니까, ‘록만이 진짜 음악’이라는 맹목적인 신앙 비슷한 게 형성되었다. 물론 이런 상황은 최근 들어 상당히 변했는데, 비평가 밥 스탠리가 지적했듯 “그럼에도 록 우월주의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중에서 듣지도 않고 다른 장르의 음악을 내리까는 건, 록 우월주의가 낳은 사생아적 전통이라고 할 만하다. 전염성이 강해서일까. 이런 태도는 록만이 아닌 다른 장르의 순수주의자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열병이다. 하나에 대한 애정이 과할 정도로 심하면 다른 것을 좋아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 이치와 유사하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배타주의에 가까운 록 신봉자들이 숭앙해 마지않는 록의 대부분이 다름 아닌 과거의 록이라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사운드 측면에서 볼 때 록 우월주의가 찬양하는 록은 우리가 록 하면 떠올리는 전형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강력한 보컬, 탁월한 기타, 때로는 화려하게 때로는 묵직하게 밑바탕을 깔아주는 베이스와 드럼 등등. 이렇듯 변화를 거부하는 중세적 정체야말로 록 우월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다.

나도 과거의 록을 좋아한다. 900쪽 짜리 원서를 번역해서 발간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과거의 음악을 사랑한 덕분이었다. 나는 록 우월주의에서 벗어난 록이야말로 록의 미래에 산파 구실을 해줄 거라고 확신한다. 사실상 록과 팝의 구분이, 더 나아가 장르 구분 자체가 모호해진 시대 아닌가. 지난 몇 년을 돌아봐도 “록은 이래야 한다”라는 강박과 당위에서 벗어난 밴드들이 내놓은 훌륭한 음반만 수십 장이다.

“록은 이래야 한다” 강박 벗어난 밴드

그 수십 장 가운데 ABTB의 <어트랙션 비트윈 투 보디스(Attraction Between Two Bodies)>(2016년 발표, 2018년 재발매)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음반은 굉장하다. 1970년대 하드 록과 1990년대 그런지를 중추로 삼고 있지만 이걸 세련되게 조각해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시간이 없다면 다음 두 곡만 감상해보라. ‘아티피셜(Artificial)’에서 ABTB는 직선적으로 격렬하게 내달리는 와중에 환상적인 완급 조절로 입체성을 불어넣는다. 누군가에게 그들을 소개한다면 영순위 선택지가 되어야 마땅한 곡이다. ‘제플린(Zeppelin)’에서 ABTB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압도적인 세계를 건설하는 데 성공한다. ‘국뽕’을 싹 빼고 그들은 이 곡을 통해 레드 제플린이 남긴 명곡들 못지않은 결과물을 성취했다. 후반부의 강렬한 연주와 보컬이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기는 곡이다.

정리한다. 하드 록이 구닥다리로 취급받는 이 시대에 ABTB는 하드 록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이걸 현대적으로 다듬어낼 줄 아는 드문 밴드다. 그들은 과거를 등불로 삼아 미래를 밝힌다. ABTB의 데뷔작이 찬사를 받았던 결정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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