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이 내려온 1월21일, 문득 달걀이 먹고 싶어졌다. 총살을 당했다던 사람이 ‘부활’해 남쪽으로 내려왔으니 말이다.

올해 부활절은 4월1일로 두 달 넘게 남았는데, 〈조선일보〉가 현 단장을 ‘부활’하게 만들었다. 2013년 8월29일, 기사의 제목은 이렇다. ‘김정은 옛 애인(보천보 전자악단 소속 가수 현송월) 등 10여 명, 음란물 찍어 총살돼.’ 더 읽어보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연인으로 알려진 가수 현송월을 포함해 북한 유명 예술인 10여 명이 김정은의 지시를 어기고 음란물을 제작·판매한 혐의로 지난 20일 공개 총살된 것으로 28일 밝혀졌다. 중국 내 복수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가수 현송월과 은하수 관현악단장 문경진 등은 지난 6월 김정은의 ‘성(性) 녹화물을 보지 말 것에 대하여’란 지시를 어긴 혐의로 지난 17일 체포됐으며 3일 만에 전격 처형됐다. (후략)”

이 기사는 다른 언론에 의해 수십 건의 기사로 ‘재생산’되었다. 소식통의 전언이 ‘팩트’로 둔갑했다. 방송 진행자 김상중씨의 어투를 빌리자면 “그런데 말입니다, 총살당했다던 그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과연 부활한 걸까요?”라고 물을 법한 일이 벌어진 거다.

ⓒYTN 화면 갈무리

언론은 현 단장이 내려와 먹고 입고 걸친 것에 유난한 관심을 보였다. 언론 전문지 〈미디어오늘〉이 모아놓은 각 언론사의 관련 보도 제목에 확연히 드러난다. ‘은여우털, 캐시미어 코트…‘나는 나’ 현송월 스타일 분석’(중앙일보), ‘튀는 털목도리 가격 얼마?…최신 유행 앵클부츠 눈길’(매일경제), ‘이번엔 모피 목도리…눈길 끈 현송월 패션’(동아일보), ‘모피, 하이힐 현송월, 시민들은 “과하게 꾸민 이유 있나”’(조선일보) 등등(사진은 YTN 뉴스 화면). 

외신도 신기했나 보다. AP통신은 ‘‘처형된’ 북한의 팝 디바가 올림픽 스포트라이트를 받다’라는 제목으로 이런 풍경을 전했다. 과거의 ‘총살 보도’를 언급하며 “남한 언론이 마치 그가 케이팝 연예인이 된 것처럼 대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CNN은 “YTN의 경우 그가 아침으로 황태해장국을 먹는다고 보도했다. 다른 방송사는 그의 커피 선택을 보도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이번 한 주, 기사 댓글을 읽다 다시 ‘달걀’을 떠올렸다. 한국 언론, 패션 분석하다 달걀 맞겠구나.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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