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2018년 새해 첫날 인사는 ‘그분’께 가장 먼저 드리고 싶었다. 그분이 매년 1월1일 경기도 이천에 있는 선산을 찾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집안 행사라 큰형과 둘째 형, 직계가족도 참석한다는 내용이었다. 일거양득이었다. 다스 회장과 실소유주 의혹을 받는 그분이 한자리에 있다면 물어볼 말이 있었다. “다스는 누구 겁니까?”

질문을 되뇌며 만반의 채비를 했다. 해진 털 부츠였지만 망설일 사이 없이 신었다. 언제 올지 모를 그를 기다리기 위해서는 ‘뻗치기(취재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를 뜻하는 언론계 은어)’는 필수였다. 한겨울 야외 뻗치기라 낡은 신발이라도 따뜻한 게 우선이었다. MB 일가를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이명익 사진기자도 함께 움직였다.

문제는 접근이었다. MB 집안 소유인 영일울릉목장 안에 선산이 있었다. 〈시사IN〉 보도로 시작한 검찰의 다스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어, 목장 관리인들이 취재진의 접근을 막으리라는 걱정이 들었다. 이명익 기자가 옆 목장으로 돌아 접근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처음부터 취재가 막힐 가능성을 따져보면 그 편이 나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목장 하나 넘어가는 게 어떤 일인지 몰랐다.

성긴 도깨비바늘을 헤치고 지나가니 마른 풀숲 사이 새 몇 마리가 푸드덕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멀리서 개가 짖어댔다. 무섭다며 소리 지르다간 목장 관리인이 쫓아올까 봐 도깨비바늘 가시가 붙은 장갑으로 입을 막았다. 살얼음이 낀 도랑을 건너니 다행히 정말 그곳에 무덤이 있었다. 묘석 앞면에는 시편 구절이, 옆면에는 ‘이상은·이상득·이명박’ 등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제 그분이 오기만 하면 된다. 맞은편에 몸을 숨겨 자리를 잡았다.

추위를 이겨내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1시간, 2시간, 3시간…. 그는 오지 않았다. 야심차게 준비해놓은 다음 질문, 그다음 질문은 당연히 하지 못했다. 정초부터 공친 머쓱함에 스마트폰으로 ‘이명박’ 검색만 반복했다. 1월1일 그는 현충원에 간 다음 측근들과 대책회의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찢어져버린 털 부츠를 매만지며 철수했다. 다음엔 진짜 제대로 물어보고 싶다. 기왕이면 몇 마디 묻고 말 검찰청 포토라인이 아닌, 정식 인터뷰라면 더 좋겠다. ‘MB 전문가’들이 포진한 〈시사IN〉 편집국에서 말이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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