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았다. 박종철이 잔혹한 물고문으로 질식해 숨을 거둔 509호실. 방문객이 직접 들어갈 수 없도록 막아놓은 유리벽 너머는 시간이 멈춘 듯 박제된 모습 그대로다. 낡은 철제 책상과 의자, 촌스러운 구식 담요를 가지런히 개어 올려놓은 작은 침대, 그리고 방 안쪽으로 작은 욕조와 세면대, 변기 등이 무심한 듯 나란히 배치돼 있다.

얼핏 보면 옛날식 원룸이나 무미건조한 사무 공간 같지만, 남영동 대공분실은 처음부터 고문을 작정하고 정밀하게 설계된 건물이다. 일부 경찰이 우발적으로 고문한 게 아니라 국가가 경찰에게 조직적으로 고문을 하도록 예산·인력·시설을 지원한 것이다.

고문의 제도화는 원형이 보존된 509호실뿐 아니라 건물 전체에서도 확인된다. 욕조가 성인이 다리 뻗고 앉기에도 턱없이 작은 까닭은 물고문용이기 때문이다. 창문은 팔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고 길게 설계됐다. 끌려온 사람에게 외부와 철저히 단절됐다는 심리적 압박감과 고립감을 가중시키는 교묘한 형태다. 바람 한 줌, 햇빛 한 조각 제대로 드나들지 못하는 이 좁고 긴 창을 설계한 건축가는, 한편으로 고문자들의 건강을 위해 넓고 큼직한 테니스 코트와 정원을 마련했다.

이뿐이랴. 고문실의 벽면은 목재 타공판으로 마감했는데,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벽면으로 스며들어 옆방 연행자에게 공포심을 배가시키기 위해서란다. 취조실 문을 안에서는 열 수 없도록 하고, 복도에서 방 안을 볼 수 있도록 감시 렌즈를 설치하고, 5층에 있는 14개 방을 반대쪽에서 볼 수 없도록 엇갈리게 배치한 것 등은 모두 감금과 고문을 조장하고 은폐하기 위한 악랄한 장치이다.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의 저자인 건축가 김명식은 “기억을 지속시켜주는 것은 공간이다”라고 단언한다. 지나간 일과 사건, 추억 등은 되살리기 어렵지만 공간 한가운데 생생히 붙잡아두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 세계 각국이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세우고, 악랄한 독재를 경험한 남미의 여러 나라가 ‘기억과 진실, 인권광장’ 등을 세우는 이유다. 인권유린의 고통스러운 역사적 현장을 보존하고 기념하는 일은 밀실에서 자행됐던 국가 범죄를 드러내고 피해자가 당한 고통에 대해 공동체가 기억하고 추모하고 위로하는 의미를 갖는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만지면서 느껴보는 경험은 피해자와 그 주변 사람들의 고통과 울부짖음, 분노와 회한을 이해하고 체감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남영동 대공분실도 2008년부터 경찰청 인권센터로 이름을 바꾼 뒤 시민에게 고문실을 개방하고 박종철 기념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누가 과거를 기억하고 역사를 기록하느냐의 문제다. 가해자가 기억의 주체가 될 때 기억과 기록은 윤색·축소·왜곡되기 십상이다. 단적인 예로 현재 박종철 기념전시실은 어디를 둘러봐도 ‘누가’ 선량한 대학생을 ‘어떻게’ 고문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액자에 걸려 있는 당시 신문기사 몇 점만이 상황을 얼버무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가해자인 경찰의 진정 어린 사과와 뼈저린 반성도, 그리고 인권 경찰로서의 준칙과 약속도 찾아볼 수 없다.

인권 경찰로서의 준칙과 약속도 찾아볼 수 없어

고문 가해자들이 가해 사실을 소상하게 묘사하면서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고문 피해자와 연대하는 시민들이 나설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국가는 고문이 아니라, 진실 규명과 민주주의 및 인권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해 인력·예산·시설을 지원하면 된다.

박종철기념사업회는 올해부터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사회가 직접 운영하는 ‘인권기념관’으로 바꾸라는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바로 위와 같은 이유에서다. 이제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은 인권을 기리는 기념관이자 민주주의와 인권을 학습하는 시민 인권교육의 장으로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

기자명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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