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한나 스쾰드는 2015년 〈Granny’s Dancing on the table〉(한국에서는 〈에이니의 숲〉이라는 제목으로 2016년 부천국제 판타스틱영화제 상영)라는 작품을 연출했다. 영화에는 산골에 고립되어 사는 아버지와 어린 소녀 에이니가 등장한다. 아버지는 딸에게 폭력을 일삼는다. 소녀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에게 힘이 되어줄 할머니를 상상한다. 소녀는 아버지가 왜 폭력적이고 가학적인지 그 이유를 유추해 나간다. 감독은 영화에서 잔혹한 폭력 장면을 배우들의 실사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했다. 이유가 있다. 감독 자신이 바로 가정폭력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한나 스쾰드 감독은 그 이야기를 꺼내 영화화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폭력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이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상처를 치유하듯 감독 자신도 영화 작업을 통해 평생 자신이 웅크리고 숨겨온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감독은 자신이 직접 겪은 폭력의 메커니즘을 파고들면서 자신과 과거의 아픔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며 스스로 치유의 과정을 거친 셈이다. 그는 “장편영화를 통해 아동 복지와 인권의 선진국이라는 스웨덴 사회에서도 이웃 모르게 벌어지고 있는 아동 학대와 아동 인권 문제를 토론해보고 싶었다. 아이를 소유물로 여기면서 자녀들을 마음대로 대하는 부모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스웨덴은 약 40년 전인 1979년 세계 최초로 아동학대방지법을 제정했다. 아동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체벌을 가하는 행위를 하면 처벌받는다. 아이를 꼬집거나, 엉덩이를 때리는 훈육 과정의 매도 법으로 금지되었다. 체벌뿐 아니라 어른이 분에 못 이겨 아이에게 욕설을 해도 처벌받는다. 보호자가 어린이를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에도 학대에 해당된다. 어린이를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지 않고 한 명의 인격체로 보자는 취지다.

ⓒBRIS 갈무리스웨덴의 대표적인 어린이·청소년 인권단체 BRIS.
어린이나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한 채널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소해 보이는 경우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아동 학대 범죄가 처리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한 엄마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오며 아이가 말을 듣지 않자 욕설을 하고 때렸다. 어린이집 교사는 지방자치단체의 어린이 및 청소년 지원부서(SOC)에 익명으로 신고했다. SOC는 경찰에 알렸다. 경찰이 출동하자 엄마는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아이와 엄마를 격리했다. 경찰은 조사 뒤 아동학대법에 규정된 범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아이 엄마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5년간 범죄 기록이 보존되었다. 엄마는 전과 기록 탓에 취업에 불이익을 받았다.

이렇게 스웨덴에서는 어린이집이나 학교 교사 등이 적극적으로 아동 학대 감시자이자 아동의 보호자 노릇을 한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6세 이하 아동에 대한 학대 신고가 증가 추세이다. 2006년 1351건이었던 신고 건수가 2016년 4255건으로 늘었다. 물론 이 통계치만 보고 스웨덴의 아동 학대 범죄가 증가 추세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건수는 늘었지만 내용을 따져보면 사안이 경미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스웨덴 국립범죄예방협회는 지난 10년간 신고 체계가 간소화되면서 건수가 늘었다고 밝혔다. 이전에는 아동 학대와 관련해 경찰에 신고하려면 의사 소견서 등이 필요했다. 최근에는 위의 사례처럼 학교나 어린이집에서 교사들이 경찰에 직접 신고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의 담당자에게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 외에도 다양한 어린이·청소년 인권단체가 스웨덴 전역에서 활동 중이다. BRIS는 대표적인 어린이·청소년 인권단체이다. 18세 이하의 청소년 및 어린이들이 익명으로 가정폭력, 학교폭력, 친구 왕따 문제 등을 털어놓으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BRIS는 어린이나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전화뿐 아니라 실시간 채팅이나 메일 등 다양한 채널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자명 예테보리·고민정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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