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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부모 방치하면 아이들이 죽는다

‘청소년 한부모’ 관련 지원정책이 있지만 정보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정보의 차이가 양육의 판단 근거가 되고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2018년 01월 30일 화요일 제5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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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의 임신부가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젖병소독기와 세척 솔이 놓인 조유실을 지나는 그녀의 등 뒤로 문 열린 방 안이 보였다. 겨울철 아기 방한복인 ‘우주복’이 옷장에 걸려 있었다. 실내 건조대에는 신생아 배냇저고리가 잔뜩 걸려 있고, 상담실 책장은 <임신 출산 육아 대백과> <첫아기 안심하세요> 같은 육아 서적으로 가득했다.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에 위치한 ‘애란원’을 찾은 1월10일 오후, 4층짜리 건물은 온통 고요했다. 유일하게 떠들썩한 곳은 저녁 식사를 앞둔 식당이었다. 산모 다섯 명이 모여서 재잘대고 있었다. 모두 앳된 얼굴의 10대 엄마들이었다.

애란원은 분만을 앞두거나 갓 출산한 청소년 미혼모에게 숙식과 분만, 산후조리를 제공하고 양육과 자립을 돕는 미혼모자 생활 시설이다. 1960년대에 설립돼 미혼모 복지시설로 운영되다가 2017년 ‘청소년’ 미혼모 전용 시설로 증축되었다. 전국 한부모 가족 복지시설 129개 중 청소년 미혼모 특화 시설로는 유일한 곳이다.

ⓒ시사IN 신선영
미혼모자 생활 시설 ‘애란원’에서 10대 산모들이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배식을 받고 있다.

미혼모자 시설 5개와 센터 2개, 학생미혼모학교 1개 그리고 취업사관학교 1개를 운영하던 애란한가족네트워크본부가 ‘청소년’ 엄마를 위한 시설을 별도로 만든 이유가 있다. 10대 미혼모는 다른 성인 미혼모들과 결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제공해야 할 서비스의 종류부터 그렇다. 출산과 양육 이외에도 생활습관, 청소법, 요리법, 빨래법, 인성교육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청소년 엄마들은 시설의 사회복지사들을 학교에서처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최주옥 애란원 사무국장은 아기뿐 아니라 어린 엄마를 지원하는 일 역시 “아이를 길러내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10대 청소년 부모 역시 미성년자로서 돌봄 대상이라는 것이다.

애란원은 청소년 엄마뿐 아니라 청소년 아빠의 자립도 함께 돕는다. 10대 부모의 특성 때문이다. 청소년 미혼모 가정은 성인 미혼모 가정에 비해 오히려 원가정(미혼 부모의 원래 가정)이나 아이 아빠와의 단절이 덜한 편이다. 처음에는 겁이 나서 잠적했던 아빠가 고심 끝에 돌아와 가정을 꾸리기로 한 사례가 종종 있다.

아이 아빠가 군대에 다녀올 동안 엄마가 아이와 미혼모자 공동생활 시설에서 지내며 자립 교육을 받은 뒤 독립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우는 20~30대보다 10대 미혼모가 더 많다. 최주옥 애란원 사무국장은 “그 시기의 부모들은 아이를 잘 양육할 수 있게 도와주고 지원해주면 자립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초기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주로 고등학생 나이의 청소년이 찾던 애란원에 점점 중학생 나이 미혼모들의 방문이 늘어나고 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19세 이하 청소년 가운데 최소 3335명이 출산을 경험했다(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 이 중 일부는 아이를 길거리에 버리고(2016년 영아 유기 109건), 일부는 ‘베이비박스’에 눕히고(2016년 168건), 일부는 혼자서 키우고(2015년 청소년 한부모 가구 1만6140가구), 일부는 부모가 함께 키운다(‘청소년 부모’ 통계는 따로 집계된 바 없다).

‘가서 닿기만 하면’ 유용한 정보인데…

애란원 같은 시설의 도움을 받는 경우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어린 부모들에게는 정보의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 주로 인터넷을 통하는데 얻을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많다. ‘청소년 한부모’ 관련 지원책이 있지만 이 용어 자체가 낯선 이들도 적지 않다. 정보의 차이가 양육 혹은 입양을 결정하는 판단 근거가 되고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사례다. 대구미혼모가족협회는 미혼 임신부를 대상으로 ‘베이비박스 지원 사업’을 한다. 베이비박스는 한국에서는 영유아를 ‘안전하게’ 유기하는 상자로 더 알려져 있지만, 원래 핀란드에서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국가가 지원하는 아기 용품 선물을 이르는 말이었다. 이 단체는 본래의 의미를 살려 아기 용품을 미혼모에게 지원하고 있다. 신청자 중 80%가 10대다. 그간 주로 성인 미혼모를 접해온 김은희 대구미혼모가족협회 대표도 놀랐다. 김 대표는 10대들만 가입할 수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정보가 퍼지면서 생긴 현상으로 추측했다. 이렇게 일단 ‘가서 닿기만 하면’ 유용하게 쓰이지만, 문제는 이렇게 전달되는 정보가 매우 소수라는 점이다.

ⓒ시사IN 이명익
베이비박스는 영유아를 ‘안전하게’ 유기하는 상자로 알려졌지만 원래 아기 용품 선물을 일컫는 말이다.

김 대표는 청소년 부모들의 정보 부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인터넷에서 (어설픈 검색으로) 얻는 정보가 전부다. 영아 살해·매매·유기 등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을 보면 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단돈 10만원의 병원비가 없어서 그런 결정을 하기도 하는데, 지원받을 방법을 찾아보면 있다. 많은 어린 부모들이 그걸 모르고 또 찾지 못한다.” 대구미혼모가족협회의 ‘베이비박스 지원 사업’은 물품 지원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상담으로 이어진다. 주거 시설, 양육 환경 등 미혼모들의 현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고립’을 방지하는 효과다.

2016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청소년 한부모 268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청소년 한부모 자립지원 패키지 개발 연구보고서’를 보면 어린 부모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엿볼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이 생활비를 충당하는 경로는 정부 지원금(75.4%), 가족의 지원(33.2%), 근로소득(25.5%) 순서였다. 경제적으로 자립한 부모는 넷 중 하나에 불과했다. 조사 대상 가운데 25%는 월수입이 50만원 이하, 21.3%는 25만원 이하였다. 일자리를 가진 청소년 부모는 16.4%에 그쳤고, 그 가운데 54.5%가 비정규직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의 학업 중단율이 77.6%나 되었다. 당장의 빈곤이 평생 이어질 확률도, 힘들게 지켜낸 자녀 역시 취약한 환경을 대물림받을 위험성도 높다.

어린 부모는 빈곤과 불투명한 미래에 더해, 사회관계망의 단절 때문에 고통받는다.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 한부모가 받는 스트레스는 미래에 대한 걱정, 경제적 어려움, 아이 돌보기, 집안일, 사회적 편견과 차별 순서였다. 친부(친모)와의 관계, 원가족과의 관계도 그 뒤를 이었다. 크게 나누면 경제적 부담, 육아 문제, 관계의 고립이다. 이들은 현실적 여건이 열악한 데다 사회관계망 속에서 이른바 ‘정상 가족’의 이탈자로 낙인찍혀 심리적으로도 위축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어떻게 이들을 돕고 이들을 도움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들의 아이가 제대로 자라나게 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정부의 지원정책이 있기는 하다. 2010년 4월부터 여성가족부에서는 한부모가족지원법을 근거로 ‘청소년 한부모 자립지원사업’을 시작했다. 18세 이하의 아동을 양육하는 24세 이하(기준 중위소득 60% 이하) 청소년 한부모를 대상으로 현금을 지원한다. 2018년 기준 아동양육비 월 18만원, 검정고시 학습비 연 154만원 이내, 고등학생 부모의 수업료 및 입학금, 자립지원촉진수당 월 10만원 등이 지원되고 있다.

이런 지원은 한부모 가정에 한한다. 청소년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지 않고 함께 가정을 꾸리는 경우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다. 저소득층 복지정책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 역시 청소년의 부모가 부양 의무자로 등록된 경우가 많아서 혜택을 받기가 쉽지 않다(광주 3남매 화재 사건 부모의 경우가 그랬다). 이른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원가정과 갈등을 겪은 뒤 관계가 단절된 경우가 많다. 그러면 부모로부터 어떤 경제적 지원도 받지 못한다. 서류상으로는 그들의 부모가 부양자로 등록되어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박영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상담하다 보면 두 사람이 결혼은 안 했지만 왕래하면서 키우는 경우도 있고 형태가 다양하다. 미혼모나 한부모라는 틀에만 맞춰 지원하지 말고 취약한 환경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아이를 키우려 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 세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있던 청소년 한부모 자립지원 예산도 매년 줄고 있다. 2012년 33억700만원에서 2017년 20억1700만원으로 최근 5년 사이 13억원가량 줄었다. 정책 시행 초기에는 청소년 한부모에 대한 통계 자체가 미비했던 데다 ‘어린 부모’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지원 신청률이 낮았다. 해를 거듭하며 현금 급여 정책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그 밖의 제도에 대한 인지도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여러 지원 사업 가운데 이용률이 가장 높은 아동양육비(현금) 지원에 대해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청소년 한부모 아동양육비가 18만원이고 (보편)양육수당이 별도로 있는 데다 올해 9월부터는 아동수당까지 나와 (현금 지원이) 이들에게 나름 의미 있는 소득원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책의 수혜자, 즉 정부가 정한 기준 안에 들어오는 한부모 청소년의 수가 원체 적어서 지원 금액을 올리더라도 재정 부담은 크지 않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임대주택에 청소년 부모 할당 고려해야”

또 하나 지원이 절실한 분야가 주거다. 10대의 경우 시설에 머물거나 원가족에게 돌아가지 않고는 자립하기 힘들다. 지금 ‘시설’은 상당수 비어 있다. 여성가족부가 파악하기로 한부모 가족 관련 시설의 정원 대비 현원은 80% 정도다. 또래 집단 내의 갈등, 공동생활 규칙 등으로 시설을 기피하는 어린 부모가 많기 때문이다. 시설 형태보다 주거 지원 형태를 선호하고 독립생활에 대한 욕구도 크다. 임대주택 입주 우선권이 있지만 기초생활수급자, 탈북자, 장애인 등 다른 우선순위자와 경쟁해야 하기에 순서가 돌아오기까지 오래 걸린다. 김은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다문화연구센터장은 “임대주택에서 청소년 부모의 할당을 고려해볼 수 있다. 시설 중심에서 더 나아가 가정에서 지내는 청소년 한부모에 대한 주거 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속 가능한 양육을 위해서는 청소년 부모의 교육과 취업 지원도 필수적이다. 정부는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학습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학습비를 지원하고 위탁형 대안 교육기관 등의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성인 부모의 ‘일·가정 양립’도 쉽지 않는 사회에서 청소년 부모의 ‘일(학업)·양육 양립’이 수월할 리 없다. 학업과 취업 활동이 이뤄지는 동안 돌봄 지원이 강화되어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지금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주거·취업·양육·학업을 지원하는 방법보다 하나씩 단계별로 지원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박영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지금은 양육과 자립을 한꺼번에 지원해 어린 부모들이 그 많은 것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시스템이다. 일단 육아가 익숙해진 다음 가사, 학업, 주거, 취업 순서로 지원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대부분은 청소년 부모의 초기 상담과 조기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들의 임신·출산 시부터 작동하는 초기 대응 채널을 국가 차원에서 하나의 기구로 일원화하자는 제안이 나온 지는 오래다. 지금은 각 민간단체에 기능이 산재해 있고 서로 통합 관리도 잘 되지 않는다. 어디에서 어떤 정보를 최초로 접했는지가 출산 이후 부모의 태도와 행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초기에 한번 연결된 끈은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동아줄’이 된다. 그 동아줄에 약하고 작은 우리 아이들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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