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1987년, 어느 날의 기억은 또렷하다. 중학생 시절, 6월에 두 번인가 예정에 없이 오전 수업만 했다. ‘합법적 땡땡이’에 좋아라 하는 학생들에게 담임 선생님은 한마디만 했다. “시내로 나가지 마라.”

중학교 때 우리는 ‘태극기 부대’였다. 학교가 서울 영등포에 있었는데, ‘쿠데타의 수괴’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씨의 해외 순방 때면 길옆에서 태극기를 흔들었다. 한두 시간 걸어갔는데, 차량은 몇 초 만에 휙 지나갔다. 이거 하려고 여기까지 왔나. 정통성이 취약한 정권은 중학생까지 동원한 카퍼레이드에 연연했다.

영화 〈1987〉을 보았다. 6월 항쟁 때 중학생이었으니, 내 세대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고교생 가수 김승진’ 브로마이드, 휴대용 카세트 ‘마이마이’ 등 영화 속 소품을 보면서 ‘그래, 저때 그랬지’ 싶었다. 무엇보다 영화 자체의 흡입력이 대단했다. 옆자리에는 50~60대 여성 대여섯 분이 단체로 관람했는데,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어느 순간 눈물 짓던 나 또한 엔딩 곡 ‘그날이 오면’이 나오는데, 양손을 꼈다 풀었다 했다. 젖은 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1987〉을 본 후, 여러 페이스북 글을 읽었다. 전두환에 맞서 싸우다 고문을 받고 투옥된 경험이 있는 어떤 분은 ‘고문 장면이 너무 힘들었다’고 썼다. 30년 이상 지났지만 그 혹독한 기억이 몸에 남아 있다고. ‘마음의 각오를 하고 보았는데, 다시 이런 영화를 보기는 힘들 것 같다’는 말에서 어두운 시대의 그늘을 느낀다.

KBS 기자인 영화평론가 송형국씨가 〈씨네21〉 좌담에서 한 말에 공감한다. “파업을 하고 있는 공영방송 기자로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언론과 관련된 장면에서 부끄러워서 낯을 들 수 없더라. 그 당시에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해에 JTBC나 〈한겨레〉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과 비슷한 거다. 이 영화는 ‘나’에 대해 바라보게 만드는 영화이고 많은 관객에게도 그렇게 다가갈 것 같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나도 영화 속 기자들이 등장할 때 집중하게 되었다. 언론이 서 있어야 할 자리. ‘기레기’라는 말이 흔해진 시절이어서 더더욱 발밑을 내려다보게 된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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