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이 울 때가 종종 있다. 암 진단을 받을 때, 출산의 순간, 그리고 성매개감염(STI:Sexually Transmitted Infection) 통보를 받을 때. 건강이 선(善)으로, 자기 관리는 의무가 된 사회에서 질병이 오명으로 여겨진 지는 오래되었지만, STI에 대한 공포와 터부는 유독 심하다. 우리가 접해온 성교육이 성의 아름다움과 상호 존중보다는 금욕과 순결을 앞세우고,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의 임신, 낙태 그리고 ‘성병’을 형벌처럼 다루다 보니 무의식중에 문란함이나 부정과 연관 지어진 탓이리라.

성 접촉으로 인해 전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세균·기생충을 통틀어 STI라 한다. 성관계 경험자 가운데 절반이 일생 중 한 번은 크거나 작은 STI를 겪는다. 무증상으로 지나가기도 하고, 모르는 사이 전염만 시킬 수도 있다. 접촉이 되어도 내가 면역력이 좋은 상태이면 감염이 안 되기도 하고, 치료를 안 받으면 만성통증, 정관이나 난관의 유착을 일으켜 불임을 유발할 수도 있다. 임질·클라미디아·매독처럼 꼭 치료해야 하지만 완치가 가능한 감염이 있는 반면, 헤르페스·콘딜로마처럼 완치는 불가능하지만 삶이 약간 귀찮아지는 정도의 감염도 있다. 미국 성교육 책에서 ‘성적으로 활발한 세상의 감기(common cold in sexually active world)’라고 표현한 것을 보고 그 적절함에 감탄한 바 있다.

ⓒ정켈 그림

어떤 질병을 도덕주의로 낙인찍는 것은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STI는 흔하기 때문이다. ‘나는 문란하지 않기에 성병에 걸릴 일이 없다’고 부정하거나 혐오하는 태도는 검진을 늦추고, 증상이 있어도 산부인과나 비뇨의학과 진료를 꺼리게 만든다. ‘성병’이 아닌 ‘STI’로 중립적 표현을 사용하려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실제로 미국 질병관리본부는 26세 미만의 성관계를 하는 ‘모든’ 여성에게 1년에 한 번씩, 26세 이상이라면 새로 파트너가 생겼거나 파트너가 여럿인 경우, 파트너가 STI 진단을 받았을 때 검진을 권유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매독·임질·클라미디아·HIV· B형간염 등 기본적인 검사는 보건소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예방은 물리적 방어막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파트너와 대화를 하는 것, 파트너와 나의 과거력을 아는 것, 어떤 성생활이 어떤 위험 요소가 있는지 아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 섹스하려는 순간 검사 이야기라니 무드를 깨지 않느냐고? 명심하자. 미리 준비를 하고 대비하는 것만이 당신을 훨씬 건강하고 장기적으로 섹시하게 해줄 것이다. 검사를 받았는데 양성이 나왔다면 인터넷 검색 말고 의사에게 예후와 치료, 예방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듣자. 한국어 자료는 ‘국가건강정보포털’이 제일 객관적이다. TED나 유튜브에서 ‘How to tell STI’로 검색하거나, Bedsider, Planned Parenthood 등의 홈페이지를 찾으면 어떻게 받아들이고 관리할지, 어떻게 파트너에게 고지할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1년에 한 번 커플이 함께 STI 검사를 받는다면

100점을 준 사례를 소개한다. 사귄 지 한 달째인 커플이 찾아와 STI 검사를 받고 상담한 후, HPV 백신과 B형간염 백신을 맞았다. 남성에게서 클라미디아가, 여성에게서 가드네렐라 질염균이 검출되었다. 질염은 현재 증상이 없어 치료하지 않기로 했고, 클라미디아는 유착과 난임을 유발할 수 있기에 바로 항생제 치료를 시작했다. 문제는 남성에게 석 달 전 헤어진 전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 어렵겠지만 그분을 위해서, 모르고 방치해 돌이킬 수 없는 것보다는 한순간 당황스럽더라도 알고 치료하는 게 낫다고 설명했고, 남성은 전 여자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이 커플은 1년에 한 번 연애를 시작한 기념일에 같이 검사를 받으러 오고, ‘통과’ 결과를 받은 날엔 콘돔을 생략하기도 하며, 즐거운 성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기자명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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