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대수 선생이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이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제법 화제를 모았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그 글의 요지는 “요즘 음악은 1960~1970년대와 비교해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라는 것이었다. 한대수 선생은 글을 통해 콜드플레이와 레이디 가가를 “데뷔곡만 좋은 경우”라고 표현했고, 비욘세를 향해서는 “수영복 모델인지 가수인지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확신하건대, 한대수 선생은 비욘세의 최근작 〈레모네이드(Lemonade)〉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아델이 그래미 시상식이 끝난 후 “당신이 타야 했다”라며 트로피를 반으로 쪼개 나눠 갖게 했던 바로 그 앨범 말이다. 관점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콜드플레이와 레이디 가가의 경우 데뷔작보다 ‘훨씬 좋은’ 노래가 최소 3곡씩은 있다고 본다. “도대체 한대수 선생께서 갑자기 왜?”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Sony Music아델이 극찬한 비욘세의 앨범 〈레모네이드〉.

한대수 선생은 대중음악 쪽 종사자들 대부분에게 존경받는 진짜 거장이다. 특유의 너털웃음, 절망 속에서도 한줄기 유머를 구사할 줄 아는 열린 감각, 자기만의 독창적인 언어 세계(그는 돈을 ‘화폐’라 칭하는데, 나에겐 이런 것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만들어낸 위대한 음악. 그의 존재감은 지금까지도 굉장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기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음을 밝힌다. 

나도 동의하는 측면이 없지는 않다. 시간이 흘러 내가 60세가 되면, 나는 어떤 음악을 듣고 있을까. 양적인 면에서 과거의 음악, 즉 내 청춘을 바쳐 감상했던 음악들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더불어 다음과 같은 생각도 든다. 젊은 척하느라 고생하느니, 차라리 한대수 선생처럼 솔직한 게 훨씬 나은 태도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꼭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든 세대는 자기만의 사운드트랙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내 시대의 음악이 최고야”라고 확신하는 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이걸 비교의 도구로 삼아 다른 세대의 음악을 폄하하는 건, 아무래도 현명한 사고방식이라고 볼 수 없다.

지금 세대가 조각하는 사운드트랙

젊은 세대를 올드 팝송 틀어주는 음악 카페까지 기어이 끌고 가서 신청곡 용지에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나 ‘스테어웨이 투 헤븐(Stairway To Heaven)’을 적어낸 뒤 전주가 좡~ 하고 흘러나오면, “이게 진짜 음악이지. 요즘 음악은 음악도 아니야”, 이렇게 툴툴거리는 부장님은 영 별로다. 물론 세계적 화두인 여성주의와 젠더 이슈, 인종차별 등에 대해 민감한 촉수처럼 반응해 찬사를 얻은 비욘세의 걸작 〈레모네이드〉의 수록곡을 중년이 넘은 나이에도 신청해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과거의 음악만 숭배하고 요즘 음악은 잘 듣지 않는 어른들에게 말하고 싶다. 박물관으로서 과거의 음악을 존중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자꾸 과거의 영화 (榮華)만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 과거는 있어도 미래는 없는 까닭이다. 그것이 아름답건 추하건 현명하건 어리석건, 미래는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되, 그것과는 다른 장소에서 펼쳐져야 마땅하다. 지금 세대는 최선을 다해 지금 세대의 사운드트랙을 조각해 나가고 있다. 그러니 걱정과 참견은 고이 접어두시고, 당신 세대의 사운드트랙을 마음껏 즐기시라.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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