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은 훈장이 많은 산이다. 우선 산 자체가 천연기념물(제171호)인 특별한 국립공원이다. 1982년에는 유네스코가 한국 최초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산 전체가 ‘천연보호구역 (희귀한 동식물의 서식지는 물론 지질 및 지형, 경관 등을 보호할 목적으로 지정한 구역)’이기도 하다. 천연보호구역은 전국적으로 홍도·한라산·독도·우포늪 등 11곳뿐이다. 설악산은 세계자연보전연맹 (IUCN)의 분류 등급에서도 가장 높은 ‘Ia(엄정자연보전지역)’로 등록되어 있다.

설악산이 받은 이런 훈장들은, 결국 우리 사회 전체가 자연 훼손 및 난개발에 맞서 싸워온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정부도 이런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2014년 11월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 공단은 IUCN이 설악산·지리산·오대산 등 3개 국립공원을 ‘녹색목록(Green List)’ 으로 공식 인증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런데 IUCN 녹색목록 인증은 국제적으로 강제성을 띠는 제도가 아니다. 해당 국가가 보호지역을 적극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의미가 더 크다. 즉, IUCN 녹색목록 등재에는 한국 정부의 환경 보전 의지가 담겨 있었다는 이야기다.

ⓒ강원도 제공설악산 케이블카 조감도. 탐방객으로 인해 대청봉이 황폐해졌다(사진 속 동그라미).
그런데 2015년 8월 반전이 일어난다. IUCN 녹색목록에 등재된 지 겨우 9개월 만이었다. 강원도 양양군이 오색지구에서 끝청까지 3.5㎞ 구간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며 제출한 ‘설악산국립공원 삭도(케이블카) 시범사업안’ 심의를 환경부가 통과시켜버린 것이다.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 훼손을 염려한 탐방로 회피 대책, 멸종위기종 보호 대책, 강풍에 대한 안전 대책 등 7가지 대책을 마련하라는 조건을 달기는 했다. 그러나 이런 대책을 세우는 것으로 환경 훼손을 막은 사례는 매우 드물다. 환경단체들이 이날 승인을 두고 ‘생태 국치일’이라고까지 표현한 이유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케이블카에 제동을 걸었다. 2016년 12월 양양군이 케이블카를 설치하기 위해 제출한 ‘문화재 현상변경(문화재 원래의 모양이나 현재의 상태를 바꾸는 행위)’ 신청을 불허한 것이다. 케이블카 설치 공사와 운행이 천연보호구역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였다. 문화재청 실태조사에서는 케이블카 예정 구간에 멸종위기 1등급인 산양 50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청봉은 이미 수많은 탐방객으로 인해 푸르름을 잃고 황폐해진 상태였다. 양양군은 즉각 문화재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결국 두 번째 반전이 일어났다. 지난해 6월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 위원회가 양양군의 손을 들어준다. “케이블카 사업을 통해 증대되는 국민의 문화 향유권이라는 공익이, 문화재 보호라는 공익보다 적다고 단정할 수 없다”라는 이유였다. 문화재위원회는 재차 불허 방침을 의결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상급 기관인 문화재청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문화재 현상변경’을 허가하고 말았다. 문화재청이 자문기구인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거부한 첫 번째 사례였다.

ⓒ시사IN 신선영1월10일 시민단체는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전경련이 그린 ‘산악관광특구’라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문화재청과 환경부, 중앙행정심판 위원회가 얽히고설켜 설악산 케이블카 문제를 배배 꼬이게 만들었다. 언론 보도도 각 정부기관의 판단에 따라 ‘사실상 무산’과 ‘사업 추진 길 열려’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등장시키면 이해가 된다. 박 전 대통령 입에서 ‘케이블카’라는 단어가 나온 적이 있다. 2014년 10월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은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경기 지원시설, 케이블카 등을 구비해 세계인의 기억에 남는 대회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보다 넉 달 전인 2014년 6월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산악관광 활성화를 위한 정책방향’ 제안서를 발표한다. ‘산악관광특구’라는 큰 그림 아래 케이블카 설치는 물론 자연공원 내 산 정상과 절벽 부근에 숙박시설 건설까지 허가해달라는 내용 등을 담았다. ‘자연공원 파괴 제안’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듬해(2015년) 8월 환경부가 문제의 케이블카 시범사업안 심의를 통과시킨다.

이와 관련, 2015년 심상정 의원(정의당)은 ‘환경부와 문화재청이 이미 2014년 하반기부터 케이블카 사업 주체인 양양군을 컨설팅하고 지원한 정황’이 담긴 정부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에 따르면, 케이블카 공사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전인 지난해 12월까지 완료하도록 되어 있었다. 환경단체의 한 관계자는 “환경·문화재 보호에 나서야 할 정부기관이 케이블카 추진 쪽으로 방향을 튼 데에는 과거 정권의 압력이 작용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중앙행정심판 위원회의 결정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다. 행정심판이 구속력을 가지는 만큼 그에 따른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아직 중대한 걸림돌들이 남아 있다. 환경부 환경영향평가를 거쳐야 한다. 또한 다른 정부 부처들도 케이블카 사업 투자를 심사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에서 취임한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이전부터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 설치에 부정적 견해를 지켜온 인사다. 1월10일, 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국민행동 등 시민단체와 시민소송인단은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 취소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케이블카는 계속 산으로 가려 했다. 주로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그랬다. 북한산·지리산·한라산·월출산 등 자연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있었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케이블카 사업을 두고 ‘돈에 미쳐 산으로 간 4대강 사업’이라고 부른다. 4대강 사업이나 케이블카 사업이나 한번 엎지르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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