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을 비우고 변경으로 스며들고 싶었다. 그 속의 정치를 활성화시키면 좋을 것 같았다. 중심이 소수만을 위한 공간이라면 변경은 누구라도 올 수 있는 다수의 공간이지 않을까. 언제든 급진 정치가 시작될 수 있는 공간이기에 변경은 지배층에게 위협적인 공간이다(〈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하승우 외 지음, 2018).”

그들은 정말로 ‘변경’으로 갔다. 2014년 2월이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충북 옥천군으로 이주했다.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로 일하는 아내 유해정씨, 당시 다섯 살이던 아들 솔랑(아명)과 함께였다. 옥천읍내에서 멀지 않은 단독주택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아이가 물었다. “엄마 아빠, 이제 마음대로 뛰어도 돼?”

ⓒ시사IN 조남진4년 전 충북 옥천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하승우씨(왼쪽)와 아내 유해정씨(오른쪽), 아들 솔랑군이 창작공간 ‘둠벙’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하승우씨는 수도권에서 살 때 직함이 많은 사람이었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땡땡책협동조합 공동대표,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등. 지금도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을 맡으면서 많게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서울행 기차를 타는 신세지만, 공간이 달라졌다는 점이 큰 차이다. 당장 지역 언론에서 그를 인터뷰할 때 소개가 그냥 ‘옥천 주민’으로 바뀌었다. 

풀뿌리 민주주의와 마을공동체에 뜻을 두었던 그다.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들었다. 원전, 수도권 과밀화, 식량난과 에너지 위기, 기후변화 문제 등을 서울에서 관망하듯 겪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절실함도 컸지만, 지역에서 직접 살다 보면 식량과 에너지 문제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겨우 4년 만에 그런 거창한 해답을 찾을 리 없었다. 다만 그는 이제 옥상 방수 작업, 수도 및 변기 시설 고치기, 웬만한 톱질쯤은 능숙하게 할 줄 아는 시골 사람으로 변했다. 처음에는 읍내를 걷다 끊임없이 누군가와 인사를 해야 하는 ‘비익명성’이 불편했다. 하지만 문득 이것이 ‘안전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동네에서 아이를 잃어버려도 누군가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다줄 거라는 믿음 말이다.

이주 첫해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았다. 이듬해인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옥천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비영리 민간단체 ‘옥천순환경제공동체’와 함께 〈우리가 알아야 할 진짜 옥천 이야기〉 〈우리가 알아야 할 옥천군 예산 이야기〉 등을 펴냈다. 얼핏 보기에는 간단한 소책자 같지만 내용이 간단치 않다. 군청에서 발간하는 〈통계로 보는 옥천〉 같은 기존 자료와는 관점이 달랐다. 전국 기초단체 가운데 민간에서 지역의 통계와 예산에 관한 분석 보고서를 내놓은 것은 2016년 옥천군이 처음이었다.

ⓒ시사IN 조남진하승우씨와 ‘옥천순환경제공동체’가 함께 펴낸 〈우리가 알아야 할 옥천군 예산 이야기〉.

〈우리가 알아야 할 진짜 옥천 이야기〉는 고령화, 농업의 쇠퇴, 인구 감소, 주민지원 사업비, 읍면 불균형 문제 등을 주제별로 나눠 인포그래픽으로 보여준다. 가령 농업 쇠퇴 부분에서는 옥천군 농민이 옥천군 전체 인구의 30%에 불과하다면서, 옥천이 과연 농촌인지 묻는다. 부가가치 생산만 보면 옥천군의 주된 사업이 제조업과 건설업, 공공행정이라는 것이다. 또 전체 9개 읍·면 가운데 어린이집이 없는 면이 5개나 된다고 분석하고, 바로 뒷장에서는 그 결과 5년 동안 초등학생 1085명이 줄었다고 지적한다. 이런 통계 및 예산 분석은 지방선거에서 옥천 시민사회의 공약 제안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녹색당 당직만 안 맡았다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하승우씨가 직접 공약을 들고 도전장을 내밀었을지도 모른다. 

옥천에는 〈옥천신문〉이라는 걸출한 지역 언론이 있다. 2000년대 초반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옥천’을 기치로 내걸고 언론운동을 펼쳤던 주역이 바로 그 언론사다. 지금도 군 단위 지역신문치고는 넉넉한 편집국 인력(9명)으로 매주 신문을 발행한다. 수많은 ‘변경’ 가운데 하승우씨 가족이 옥천을 택하게 된 데에는 〈옥천신문〉 기자들과의 인연도 컸다.

‘놀랍게도’ 〈옥천신문〉 구독자 수는 증가 추세다. 지난해에는 ‘시시콜콜 시골 잡지’를 표방한 〈월간 옥이네〉를 창간하고, 옥천역 인근에 지역문화 창작공간 ‘둠벙’도 만들었다. 황민호 〈옥천신문〉 편집국장은 “신문은 돈 내고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옥천에서는 자리 잡았다. 신문 유료 독자가 아니면 〈옥천신문〉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기사를 볼 수 없다. 지역민이 보고 싶고, 알아야 하는 기사를 쓰면 독자들이 돈을 내고 본다는 믿음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 소멸’이라는 절벽

그럼에도 앞서 말한 통계 보고서에서 보듯 옥천 역시 ‘지방 소멸’이라는 절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역에서 풀뿌리 희망을 찾겠다는 그의 다짐도 막막한 현실 앞에서 때때로 멈칫한다. 더욱이 ‘압축도시’ 같은 전략은 사실 이미 진행 중이다. 옥천군만 해도 인구 5만명 가운데 3만명이 읍내에 모여 산다. 지금 현상을 대도시의 시각으로 ‘소멸’로 보아야 할지도 의문이다. 어찌 보면 ‘적정 인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게다가 도시 고령층과 농촌 고령층은 다르다. 농촌 고령층은 나이 들어도 일을 하는 경제활동인구다.

그가 궁리 끝에 떠올린 아이디어 중 하나가 ‘군 단위 연대’다. 문제는 모두 동일한데, 각 지방 기초단체가 개별적으로 해법을 찾고 있다. 군 지역에서 ‘가장 큰 기업’은 군청이다. 옥천군만 해도 연간 예산이 4000억원이다. 제법 큰 지역사업은 서울의 마을 만들기 사업보다 더 예산 규모가 크다. 결국 기업(군청)이 어떤 전략을 짜느냐에 따라 지역이 바뀐다. 이를 권역별, 광역별로 묶어서 ‘공동의 정치’를 펼치도록 만들 수 없을까 생각한다.

결국 문제는 다시 ‘정치’다. 사실상 ‘개발동맹’으로 이루어져왔던 지방정치 권력을 교체하고 새로운 실험을 하고 나서 ‘소멸’의 문제를 마주해야 하는 건 아닐까. 지방 이주 5년째, 어느 옥천군 주민의 고민이 깊어간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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