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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매력적인 탈세범이라니

유투의 보노, 롤링 스톤스 등이 탈세로 비난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만은 불가침의 경지였다.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1월 11일 목요일 제5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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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어느덧 유투(U2)라는 밴드가 공연계의 거물로서만 의미 있다고 평가를 끝내버린 경우가 비단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들의 2014년 작 <송즈 오브 이노센스(Songs of Innocence)>는 정말 별로였다. 뭐랄까. 로큰롤을 하기엔 너무 늙은 남자가 필사적으로 젊게 보이려 애쓰는 음악처럼 들렸다. 하긴 먼 옛날 1970년대에 제스로 툴이라는 밴드가 괜히 ‘Too Old To Rock N Roll, Too Young To Die(로큰롤 하기엔 너무 늙었지만, 죽기엔 너무 젊다)’라고 노래했겠나.

의심스러웠다. 비평계의 꼰대가 음악계의 꼰대에게 동지의식을 느낀 나머지 과한 점수를 부여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얘기인즉슨 이렇다. 비평계의 ‘조상님’이라 할 <롤링 스톤>이 2017년 최고 앨범 리스트를 발표하면서 유투의 신보 <송즈 오브 익스피리언스 (Songs of Experience)>를 3위에 올려놓았다. “매각이 결정되더니 <롤링 스톤>이 이제 아주 막 나가는구나.” 이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피에르 바야르 교수는 동명의 저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물론 이 표현은 책에 부여된 과도한 신화를 파괴하고, 개인의 창의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극단적 수사였다. 어쨌든, 명색이 평론가인데 음악을 듣지도 않고 판단할 수는 없는 법. 음반이 국내에 발매되자마자 나는 하나씩 곱씹어가며 감상을 시작했다.

ⓒAP Photo
유투는 여전히 최고의 앨범을 내놓고 있다.

놀라웠다. <송즈 오브 익스피리언스>는 대단히 빼어난 곡들을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단어 하나만 다른 이 두 앨범의 완성도가 이렇게 차이가 난다니 그사이 멤버들에게 뮤즈가 강림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간단하게, <송즈 오브 익스피리언스>는 2000년을 장식한 명반 <올 댓 유 캔트 리브 비하인드(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이후 유투 최고작이라 할 만했다. 몇 가지 증거. 우선 <송즈 오브 이노센스>는 제목 그대로 과거 순수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담아내려 한 앨범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곡에는 의도치 않게 힘이 들어가거나(‘더 미러클· The Miracle’), 어떤 곡들은 과하게 감상적(‘송 포 섬원·Song for Someone’ ‘아이리스·Iris’)으로 들렸다. 특히 뒤에 언급한 ‘송 포 섬원’과 ‘아이리스’는 유투의 곡 중 최악이라 할 멜로디를 담고 있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는 <송즈 오브 익스피리언스>에 실린 ‘겟 아웃 오브 유어 오운 웨이(Get Out of Your Own Way)’와 비교해 들어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비난을 비켜갈 수 있는 영역, 그들의 음악

<송즈 오브 익스피리언스>에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흥미롭게도 이 문제는 음악 외적인 분야에서 발생해 논란을 야기했다. 예술가를 넘어 사회 활동가 행보를 걸어온 프런트맨 보노(Bono)가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해 탈세를 시도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기실 영국 출신 예술가들의 세금 회피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고소득층에 대한 세율이 워낙 높은 까닭이다. 과거 롤링 스톤스가 프랑스로 도피했고, 데이비드 보위 역시 베를린으로 떠나 그곳에서 <로(Low)> <히어로즈(Heroes)> <로저(Lodger)>로 이어지는 ‘베를린 3부작’을 완성했던 바 있다.

당연히 비난이 빗발쳤고 정부 차원의 제재가 들어갔지만, 비난을 비켜갈 수 있는 영역이 딱 하나 존재했다. 다름 아닌 그들이 창조해낸 위대한 음악이었다. 세금 회피를 옹호하자고 이렇게 적는 게 아니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건 예술가는 공직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양립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때로 양립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구체적으로는 작가와 작품을 가끔은 분리해서 사고할 수 있을 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예술적 선택지들이 한층 넓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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