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처럼, 오래전 고향을 떠났다. 유년기 전부를 보낸 곳이지만 언젠가부터 왕래가 끊겼다. 어릴 적 친구를 만나러 가끔 갔지만 그 친구들도 예전 나처럼 고향을 떠났다. 남아 있던 가족과 나이 많은 친척들도 차례차례 인근 소도시로, 광역시로, 서울로, 외국으로 빠져나갔다. 만나러 갈 사람이 없으니 고향을 찾아가는 일도 완전히 사라졌다.

어느 날 잊고 있던 고향 소식을 들었다. 고향 이름이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소멸 위험 지자체 1위 경북 의성군.’ 내 고향은 경북 의성군. 마늘과 공룡 발자국 화석이 유명하고 삼한 시대에 조문국이라는 국가가 세워지기도 했던 유서 깊은 고장이다. 넓은 면적(1174.9㎢, 서울시 면적이 605.21㎢이다)과 씨름(이태현 선수가 의성 출신이다), 컬링(의성에서 겨울 스포츠 컬링 국가대표들을 많이 키워냈다)도 의성의 자랑거리다. 유년기 이후 만난 바깥 도시 사람들에게 이런 의성의 특색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고향을 묻고 난 뒤 마늘 이야기 정도나 나올까, 도시 사람들은 경남 ‘의령’과도 자주 헷갈렸다.

그랬던 고향이 최근 꽤 유명해졌다. 고령화와 저출산, 지방의 위기를 논할 때 의성군이 꼭 등장했다. 유소년 인구 대비 노인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노령화지수 1위 지역(통계청 2016 인구주택총조사), 주민 평균연령(55.1세)이 가장 높은 전국 최고령 지자체(2017년 3월 말 기준 행정자치부 주민등록 인구조사), 65세 이상 인구 비중 대비 20~39세 여성 인구 비중이 가장 작은, 소멸 위험 1위 기초단체(2016년 3월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부연구위원 ‘한국의 지방 소멸에 관한 7가지 분석’)와 같은 타이틀이 고향에 주어졌다. 내 고향은 이제 ‘지방 소멸’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한때 ‘웅군(雄郡)’이라 불리던 의성이었다. 면적도 넓고 인구도 많았다. 1965년 21만여 명에 이르던 의성군민 수는 내가 태어나던 1984년에 12만5552명, 대도시로 이사 나온 1996년에는 8만3636명으로 줄었다. 2017년 11월 기준 의성군민 수는 모두 5만3479명. 이 가운데 37.5%가 65세 이상 노인이다(2015년 의성통계연보). 통계에 적힌 숫자들은 ‘네 고향은 지금 소멸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진짜, 내 고향은 사라지고 있을까. ‘소멸 위기’ 고향을 지난 12월20일 다시 찾았다.

ⓒ시사IN 조남진2007년 폐교된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의 안평중학교 신평분교장.
학교 운동장은 누군가 밭으로 사용 중이다.


■ 의성읍 문소3길 96, ‘공생의원’

태어난 곳부터 가보았다. 의성읍 중심지에 위치한 공생의원. 1984년 어느 여름날 이 병원(당시에는 공생병원이었다) 산부인과에서 어머니가 나를 낳았다.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나의 살던 고향은~ 의성 공~생병원”이라며 가사를 바꿔 노래를 불렀다. 의성읍내 유일한 산부인과였기에 옆집 친구도, 학교 단짝도 모두 공생병원에서 태어났다. 경상북도 통계연보를 뒤져보니 내가 태어난 1984년 의성군 신생아 수는 3029명이었다. 그중 상당수가 나처럼 공생병원 출신이리라.

공생병원은 33년 전처럼 위치도 건물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제 이곳에서는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다. 산부인과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이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는 내과, 신경외과, 성형외과 전문의 각 1명씩뿐이다. 분만실 병상 수는 0개, 물리치료실 병상 수는 20개다. 병원 대기실에는 보행보조기와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들이 잔뜩 앉아 있었다.

지금 의성에는 신생아를 받을 수 있는 분만 산부인과가 단 한 곳도 없다. 2015년 3월 의성군 안계면에 위치한 영남제일병원에 산부인과가 개설됐지만 분만이 연계되지 않은 외래 산부인과다. 그나마 그것도 마지막 하나 있던 산부인과가 1997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후 하나도 없다가 18년 만에 보건복지부의 ‘분만 취약지 지원사업’ 공모로 예산을 따내 겨우 개설된 곳이다. 2017년 7월 다른 지역에서 의성으로 이사 온 신성미씨(가명·26)는 읍내 미용실에서 “의성에는 아이 받는 산부인과가 하나도 없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임신을 준비하던 신씨는 인터넷을 뒤진 끝에 외래 산부인과가 개설된 안계면의 영남제일병원을 산전 검사차 방문했지만 “산모도 없이 썰렁한 분위기에 보건소 수준의 진료”에 실망해 다른 병원을 수소문했다. 알고 보니 의성의 임산부들은 모두 왕복 2시간씩 차를 운전해 안동·구미·대구 등지의 산부인과로 ‘원정’ 검진을 다니고 있었다. 출산도, 산후조리도, 신생아 예방접종과 영유아 건강검진도 거의 의성 밖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신씨는 걱정이 크다. “공기 좋고 한적해 아이 키우기 좋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당장 임신·출산 때 발생하는 차 기름값과 왕복 시간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2016년 기준 한 해 의성군 출생아 수는 270명에 불과하다.

ⓒ시사IN 조남진의성군의 신생아 수가 줄면서 공생의원은 산부인과를 폐쇄했다.

산부인과가 사라진 공생의원 옆에는 전에 없던 신축 건물이 하나 보였다. 요양병원이다. 어릴 적 기억 속 쌀집, 신발 가게, 합기도 학원이었던 읍내 요지마다 요양병원·요양센터·노인복지센터가 들어서 있었다. 의성군 통계연보에 따르면 요양병원과 같은 노인 의료복지시설은 2007년 3곳에서 2015년 17곳으로, 방문요양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재가노인 복지시설은 같은 기간 3곳에서 14곳으로 늘었다. 일자리도 바뀌었다. 유치원 입학식 날 ‘고데기’로 내 머리를 말아주던 읍내 미용실 아주머니는 지금 장례식장 도우미로 일한다고 한다. 한 어린이집 운영자는 최근 장례식장을 새로 열었다. 2017년 11월 한 달 동안 의성군에 17명이 출생신고를 했고, 76명이 사망신고를 했다.

■ 의성읍 군청길 26, ‘의성초등학교’

다니던 초등학교도 옛 모습 그대로였다. 아니, 더 커지고 깨끗해졌다. 운동장 뒤에는 전에 없던 체육관도 새로 생겼다. 현재 의성초등학교 전교생은 모두 522명. 한 학년 학생만 180여 명에 이르던 내 재학 시절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지만, 하교 시간 초등학교 운동장과 정문 앞은 여전히 아이들 재잘거림으로 활기찼다.

다만 여느 도시와 다른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노란색 버스 5대가 시동을 켜고 차 안 공기를 데우고 있었다. 학교에서 나온 아이들 상당수가 이 셔틀버스를 타고 안평면, 사곡면, 춘산면 등 읍내 바깥 마을로 향했다. 면 소재지의 폐교된 초등학교에서 ‘통합’돼 원거리 통학을 하는 학생들이다. 내가 태어난 1984년만 해도 의성군의 초등학교 수는 모두 66개였다. 의성을 떠나던 1996년에는 46개로 줄어 있었다. 이후에도 한 해에 한 곳 이상씩 사라져, 이제 의성군에는 초등학교가 18개만 남아 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도 사정이 비슷하다. 1996년 33개이던 유치원은 2016년 15개로 줄었다. 1992년부터 의성읍에서 보육시설을 운영해온 충애어린이집 박선희 이사장(64)은 의성의 ‘소멸 위기’를 체감한다고 말했다. “처음 어린이집을 시작했을 때는 아이들이 넘쳐서 못 받을 정도였다. 오전에 한 아이가 퇴소하면 오후에 새로 들어왔다. 건물이 모자라서 짓고 또 짓고 했는데, 지금은 텅텅 비어 있다. 그래도 7~8년 전만 해도 정원은 채워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급속도로 원아 모집이 어려워졌다.” 1990년 의성의 만 0~9세 아이는 모두 1만2167명으로 전체 연령 대비 12.6%를 차지했다. 2015년 만 0~9세 아이는 모두 합쳐 2224명뿐이다. 전체 연령 대비 4.1%이다. 의성 사람 100명 중 10세 미만 어린아이는 4명 남짓인 셈이다.

ⓒ시사IN 조남진12월20일 의성읍 후죽리의 한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 의성읍 염매시장길 6, ‘염매시장’

어릴 적 어머니 손을 잡고 드나들었던 쇼핑 중심지인 상설시장 염매시장을 찾았다. 분명 사람들 틈에 부대꼈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인데, 지난 12월20일 염매시장은 저녁 찬거리 준비할 시간에도 행인들이 없어서 한적했다. 빈 점포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동네 어르신들 말에 따르면 이 시장 입구에는 예전 ‘아카데미극장’이라는 큰 영화관이 있었다. 지금 의성군민회관 자리에 있던 ‘의성극장’까지, 읍내에만 그럴싸한 영화관이 2개였다. 젊은 사람들이 모여 영화 보고 쇼핑하던 청춘의 거리는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 의성에 사는 젊은 사람들은 거의 의성 밖에서 돈을 쓴다. 다섯 살 아이를 둔 민수영씨(가명·33)는 “아이 데리고 놀거나 먹을 만한 데가 없다. 토요일은 안동의 마트, 일요일은 대구의 백화점 이런 식으로 매 주말 무조건 나간다”라고 말했다. 사업차 1년 전 의성에 들어온 이건정씨(35)는 “의성에서 젊은 사람들이 놀 곳이라곤 길거리 지나가다가 본 인형뽑기 기계 두 대 정도밖에 생각이 안 난다”라고 말했다.

의성에서 청년층 이탈은 특히 여성의 경우 더 두드러진다. 초등학교 졸업 앨범을 펼쳐 의성에 남아 있다고 알려진 여자 동창 수를 세어보니 열 손가락이 다 필요하지 않았다. 실제 2014년 기준 의성군에 사는 20~39세 여성 인구 비중은 6.6%로 전국에서 가장 낮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34.9%)과 견줬을 때 나오는 상대비도 0.19로 전국 꼴찌다. 〈지방 소멸〉(김정환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이라는 책을 쓴 일본의 마스다 히로야는 이 상대비가 낮은 지역일수록 ‘소멸 위기’가 높다고 분석했다. “고령화로 인해 인구 재생산의 잠재력이 극도로 저하된 상태에서 (가임기 인구에 해당하는) ‘젊은 여성’이 머무르지 않는다면 그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는 것”(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부연구위원)이다.

전남 고흥군, 경북 군위군, 경남 남해군 등의 ‘소멸’ 위험지수도 의성군과 같거나 바짝 뒤쫓고 있다. 도시도 소멸 위험지수가 낮지 않다. 부산 영도구(-44.1%), 대구 서구(-42.5%) 등 산업단지가 쇠퇴한 도심지의 2004~2014년 20~39세 여성 인구 감소율은 의성(-43.2%)이나 전남 고흥(-45.1%)과 그리 다르지 않다. 마스다 히로야는 “현재와 같은 고령화 추세 속에서 지방이 소멸하고 나면 그다음 차례는 대도시가 된다”라고 주장했다. 내 고향 의성의 현재는 대한민국 모든 지역의 미래일 수 있다.

■ 의성읍 원당리 구봉산 위 ‘문소루’

의성읍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마을 뒷산 구봉산에 올랐다. 구봉산 북쪽 능선에는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 안동 영호루와 함께 영남지방의 4대 루 중 하나로 불렸다는 의성의 ‘랜드마크’ 문소루가 서 있다. 어린 시절 학교 소풍, 그림 그리기 대회마다 단골로 방문하던 곳이다. 이 추억의 장소 주변에 어린 묘목 20여 그루가 지지대에 의지해 옹기종기 심어져 있었다. 의성에서 태어난 신생아의 명찰을 단 ‘생명의 꿈나무’이다. 2003년부터 의성군청은 매년 식목일마다 구봉산 등지에 그해 태어난 아기 이름으로 벚나무와 전나무 등을 심어주는 사업을 벌여왔다.

노인만 남고 젊은 사람과 어린아이들이 없어지는 동안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갖가지 노력을 해왔다. 의성군청은 나무 심어주기는 물론이고 아기를 낳은 집에 미역과 황태, 아기 내의 등이 담긴 선물 꾸러미를 보낸다. 첫째 아이 100만원, 둘째 아이 150만원, 셋째 아이 50만원씩 출산장려금을 주고, 셋째 아이부터는 만 5세까지 매달 25만원씩(총 1500만원), 넷째 아이부터는 만 5세까지 매달 30만원씩(총 1800만원) 다자녀 양육비를 지급한다. 의성군청 관계자는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는데 밖에서는 소멸 어쩌고만 하니까 여기 사는 사람들 처지에서는 참 곤혹스럽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의성터미널 인근 버스정류소 모습.
각종 병원을 찾는 노인들이 주를 이룬다.

의성이 다시 살아나기 위한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은 “뭐가 들어오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무언가를 ‘유치’하는 일은 오랜 세월 의성군의 숙원이었다. 전에는 경북도청(대구에 있던 경북도청 유치를 위해 의성군을 비롯한 경북 내 여러 지자체가 경쟁했다)이 그 희망이었다면, 그것이 좌절(경북도청은 2016년 2월 안동시 풍천면으로 이전했다)된 이후에는 K2·대구통합신공항 유치를 염원하고 있다. 

취재 중 만난 한 의성 주민은 말했다. “강원랜드 같은 외부 투자, 아니면 극단적으로 쓰레기 매립장이나 핵폐기물 처리장 같은 혐오시설이라도 하나 맡아 외부 자본과 인구가 유입되지 않는 한 솔직히 의성은 답이 없다고 본다.”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이런 ‘유치’만이 유일한 대안일까. 의성청년이룸협동조합 박지혁 대표(44)는 “바깥에서 자본과 사람을 끌어오는 것도 필요하지만 일단 여기 사는 사람들을 안 나가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20~40대 의성 청년들이 모여 만든 의성청년이룸협동조합은 의성군청이 마늘테마파크 내 유휴 공간에 마련한 의성 내 유일한 키즈카페를 위탁 운영하고, 의성 청년아카데미와 의성 노인대학을 꾸려가는 등 지역 내 교육·문화 인프라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박 대표는 “평균연령이 높은 동네라 젊은 층이나 어린아이들을 위해 교육·문화 투자를 하자는 건의를 해도 지역 내 어른들에게 잘 먹히지 않았다. 다행히 최근 들어서는 ‘이제는 젊은 층에게 정책 주도권을 넘겨야 한다’는 여론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의성군 옥산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대도시로 나간 이새벽씨(32)는 몇 년 전 다시 의성으로 돌아왔다. 할머니 등 가족이 살고 있는 이 고장이 “엄청나게 발전을 하기보다는, 그냥 없어지지 않고 사람들이 소소하게나마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씨 자신의 미래도 구상했다. 2017년 5월 이씨는 의성군 봉양면 파출소 옆에 ‘블루하라’라는 이름의 작은 카페를 열었다. 면 소재지 여느 ‘다방’ 스타일과는 달리 인문·사회·예술 책을 갖다놓고 세미나실 같은 공간도 마련했다. 올해 1월부터는 의성 지역 주민들과 독서모임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씨는 “전시회도 열고, 독립출판물과 접목도 하면서 의성에서 문화를 만들어내는 사랑방 같은 구실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소멸 위기’ 내 고향에는 아직도 희망을 품은 사람들이 여럿 살고 있다. 1996년 의성에서 대도시로 이사 가기 전날 내가 썼던 일기장을 찾아 읽었다.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게 됐다. 의성 친구들, 나무, 하늘, 골목길 다 모두 너무 그리울 것 같다. 꼭 다시 만날 수 있겠지?” 22년 후에 만난, 소멸 위기에 빠진 ‘나의 살던 고향’은 앞으로도 누군가의 고향이 될 수 있을까.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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