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토크(VOSTOK)〉

보스토크 편집부 지음
보스토크프레스 펴냄

〈보스토크(VOSTOK)〉보스토크 편집부 지음보스토크프레스 펴냄

“이것은 유쾌한 이야기다. 우리는 새로운 사진 잡지를 만들어 세상에 내보낸다. 이 잡지는 한국의 사진 지형에 어떤 깊은 균열을 낼 것이고, 이 작은 세계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보스토크 매거진〉(이하 〈보스토크〉) 창간사).”

그들의 말대로 얼어붙은 땅처럼 단단한 사진계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젊은 사진작가들은 같이 성장할 비평가도, 무엇을 함께할 공간과 보여줄 기회도 없이 사실상 방치되어왔다. 인터넷과 사진 기술의 폭발적 성장을 바탕으로, 도제 시스템을 통해 작가가 되던 세대와는 전혀 다른 작가들이 성장하고 있다. 사진계라는 행성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예전과 달라졌다.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그들은 공간을 만들고 전시회를 기획하고 팔리지 않던 사진을 팔고 잡지를 만들었다. 이전에도 여러 시도는 있었지만, 너무 앞서갔거나 외국에서 세련된 ‘무엇’을 가져오는 정도에 그치거나 혹은 단기 이벤트성이었다. 이들은 그보다 치밀하고 능숙했다. 무엇보다 하고자 하는 목표가 확실했다. 이는 그들의 축적된 실패와 매체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사진계의 균열은 시작되었다.

〈보스토크〉는 유쾌하게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모험이라기보다 도박이다’라고 스스로 말할 만큼 비장하다. 〈보스토크〉는 사진을 기반으로 현대미술, 디자인, 독립출판, 기계 비평 등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지식과 예술을 탐색한다. 나아가 정치와 사회 속에서 기능하는 이미지의 의미와 구조에 대해 파헤친다. 널리 알려진 필진의 글이 알차게 실려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한다. 필진의 면면을 보아서는 사진 잡지라고 여기지 못할 정도다.

격월간으로 발행되는 한 권의 잡지에 특집이 70% 이상 깊이 있게 다뤄진다. 지난 11월 창간한 첫 호 특집 주제는 ‘페미니즘-반격하는 여성들’이다. ‘사진은 남성의 매체이며 여성은 사진의 피사체나 모델’이라는 통념에 도전한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이 쓴 포토 에세이 ‘키스, 눈을 감고 혹은 눈을 뜨고’로 시작해 여성 사진가들을 전반에 걸쳐 다룬다. 매호 특집 주제를 과감하고 섬세하게 표현한다.

현란하고 감각적인 편집으로 눈을 현혹시키되 이미지와 글자를 오래 보기 힘든 잡지들과 달리 〈보스토크〉는 사진을 오래 보는 것도, 문장을 오래 읽는 것도 가능하다. 사진이 가진 분위기를 해치지 않게 사진을 다룬다. 이런 편집 디자인은 이미지를 다루는 편집부의 철학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 같은 편집부의 고집은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의지로 연결된다.

이쯤 되면 〈보스토크〉의 목적지가 (좁은 의미의) 사진계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험적인 이야기에 도전하는 이들은 완급을 조절하기보다 파열음이 나더라도 그들이 구현하고자 하는 바를 꾹꾹 담아낸다.

시각 문화예술 분야의 서적을 다루는 서점 운영자로서 누군가 사진에 관련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보스토크〉를 우선순위로 꼽는다. 어떤 책을 자신 있게 추천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더구나 잡지는 생명체처럼 변화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현실적으로, 매달 끝내지 못한 과제처럼 쌓이는 과월호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잡지를 입고받는 것은 일반 단행본을 입고받는 것보다 부담스럽다. 하지만 〈보스토크〉는 과월호가 신간보다 많이 나가는 유일한 잡지이다. 그때그때 유행을 담아내는 잡지는 과월호가 되는 순간 생명력을 잃어버리지만, 〈보스토크〉는 매호 여행지가 다른 항해를 할 뿐이다.

균열은 이미 지각변동으로 이어졌다. 〈보스토크〉와 오랫동안 여행하며 마지막까지 함께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진 잡지이지만 과속 금지

송지혜 기자 song@sisain.co.kr

사진계를 ‘좀 아는’ 사람들은 이 잡지의 출간 소식만 듣고도 환호했다.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뜨겁게 이목을 집중시킨 격월간 사진 잡지 〈보스토크〉. 지난해 12월 표지 이미지, 참여 작가와 주제를 소개한 목차만으로 창간호에는 3200만원이 넘는 후원금이 모였다. 편집 동인 김현호씨를 만났다.

사진 잡지의 흐름이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엔날레·갤러리·미술관 등 생산자 궤도에서 머무는 사진집이 아닌 일반 독자가 원하는 부분에 방점을 찍는다. 사진을 중심으로 현대미술, 디자인 등을 탐구하며 새로운 지식을 다루고자 한다.

매호 특별한 주제를 선정하고 지면의 3분의 2 이상을 할애하는데?

지금까지 ‘페미니즘’ ‘사진과 권력’ ‘스냅 사진’ 등을 주제로 총 6권을 만들었다. 텍스트와 사진의 상호관계를 소개하는가 하면 사진에 정착된 담론을 분석하기도 했다. 최근 독자들은 일종의 ‘큐레이션’된 잡지를 원한다. 〈보스토크〉는 주제에 맞춰 여러 가지 코너로 구성한 것이다. 특히 사진 잡지는 과속해서 보게 되는 경향이 있어서 짜임새를 더욱 신경 쓰는 편이다.

전시 행사인 〈보스토크 메리고라운드〉를 연다.

폭발력을 넓히기 위해 매거진 출간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활동에도 힘을 쏟는다. 〈보스토크〉 편집 동인뿐 아니라 작가들이 자신의 콘텐츠를 관객에게 직접 소개하는 자리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기자명 김지훈 (얄라북스 공동 운영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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