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며칠 전에는 영하 30℃의 칼바람이 한반도를 뒤덮었다고 한다. 이러한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살을 에는 강풍처럼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의 손놀림은 여전히 빠르다. OECD 노인빈곤율이 1위인 한국, 아름다운 사계절이라 하지만, 그 계절이 참혹한 얼굴로 다가가 가장 가난한 사람을, 가장 약한 사람을 죽이는 나라의 겨울이다.

매일 인류는 모든 분야에서 신기록을 달성하고 있다. 경제지표는 물론이고, 사회적 관계를 상실당한 사람들의 삶도 그러하다. 사회에서 부자는 더 많이 풍요로워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곤궁해졌다. 문제의 진단과 원인, 그리고 해결 방안에 대한 전 지구적 토론은 이 세계가 자본주의로 재편된 이후부터 지속되어왔다. 유례없는 불평등과 극심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과감한 의구심이 필요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량 실업이 발생했다. 우리 학급에는 서울은행·조흥은행 직원들의 자녀가 많았는데 친구들이 하나둘 이사를 가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아버지가 구조조정당한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면서 별도의 가정통신문을 나눠줬다. 구조를 조정한다고 했는데 왜 사람이 해고라는 이름으로 조정당하는 것인지 의아했다.

이제는 해고가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해고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사람이 많아졌다. IMF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 자라 사회에 나오기 시작했으나 청년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급격한 경기 침체는 첫발을 내디딘 사람에게 닿기 시작해 점차 사회 전반의 위축을 가져왔다. 2004년 청년실업해소 특별법이 2009년

〈우리 아이들〉
로버트 퍼트넘 지음
정태식 옮김
페이퍼로드 펴냄
청년고용촉진특별법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청년들의 고용 문제 해결을 위한 범정부적 노력이 지난 15년 가까이 진행됐다. 그러나 반전할 기회는 찾지 못한 채, 2017년 청년기본법 제정이 논의되고 있다. 청년 문제가 일자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성찰이 드디어 시작됐다.

한 사회에서 노년의 삶을 비추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지금의 청년 문제는 10년, 20년 뒤에는 중·장년의 문제가 될 것이고, 30년 뒤에는 노년의 문제로 우리 사회에 날아올 청구서다. 그래서 오늘의 청년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우리 아이들〉은 미국 청소년 107명을 2년 넘게 인터뷰하면서 빈곤의 잉태와 재생산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학교에서, 공동체에서, 사회에서 관계 맺을 기회를 제한당한 채 정치적 기회마저 박탈당한 청소년과 그 가족들의 삶에 몰두한다. 거대한 서사시와 같은 이 치밀한 책에서 우리는 예견된 미래를 바꿀 힘을 기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자명 임경지 (전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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