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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와 함께 쓴 ‘노동의 새벽’

이창근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1월 06일 토요일 제5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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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카메라 한번 잡으시죠.” “왜, 뭐 하려고?” 어떤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016년 2월에 복직했다. 해고된 지 6년8개월 만이었다. 기뻤지만 기쁨을 숨겨야 했다. 7년 만에 잡은 연장도, 일머리도 낯설고 힘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이것을 복직 못한 동료에 대한 미안함이라 하기에도 마음이 복잡했다. 복직하면 책만은 많이 읽겠다던 다짐도 쉽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은 한 줄의 책도 허락하지 않았고 마음만 복잡한 채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중 올해 반가운 책 한 권을 만났다. 노순택 작가가 찍고, 박점규 작가가 쓴 <연장전>이었다. 일하기 전 공구 잡듯 한숨에 술술 읽혔다. 장갑을 벗고 읽고 쉬는 시간에도 읽었다. 글처럼 이야기하는 사진과 사진만큼 세밀하고 화상도 높은 글이었다. 미용사, 굴삭기 기사, 조경사, 만화가, 사진가, 어린이집 교사 등이 쓰는 스물네 개 연장과 그 연장을 다루는 사람의 이야기다. 평범한 노동자들의 이야기,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극적이거나 드라마틱하지 않고 스며들어서 좋았다. 작가 박점규는 여기에 탄탄한 자료와 통계를 곁들여 사회에서 이들의 고된 노동이 어떤 대우와 차별 속에서 이뤄지는지 진단하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한다. 책 <노동여지도>를 낸 바 있는 박점규는 노동계에서 알아주는 글쟁이다. 노동자에 대한 애정이 글 속에 깊이 묻어 있고 글의 재미가 엄청나다. 노순택 작가는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받을 만큼 사진에선 정평이 나 있다. 특히 현장 사진에 발군이다. 이 책에서도 그 기대를 충족시킨다.

<연장전>
박점규·
노순택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해고 기간 가장 놀랐던 점은 노동자에 대한 지나친 멸시와 특별한 경외심이 공존한다는 사실이었다. 멸시와 경외심은 등을 맞댄 사이처럼 서로를 볼 수 없는 운명이다. 멸시와 경외심은 친절함에선 다르지만 나와 다른 세계에 있다는 생각에선 묘하게도 닮았다. 이 존재와 인식의 부조화를 줄여야만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논의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을까. 언제까지 직업으로 귀천을 구분하고 연봉만이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하는 시대를 살아야 하는가.

이 책을 읽고 나서 함께 일하는 쌍용차 사람들과 2018년 달력 작업을 하고 싶어졌다. 앞서 말한 형님이 흔쾌히 카메라를 잡아줘서 일은 수월해졌다. 어떤 노동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달력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침마다 보는 거울 속 아빠·남편·자식이 아니라 일하는 자신의 모습, 노동자의 모습을 지금까지 객관적으로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노동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고 스스로의 모습을 직시할 때가 되었다. 치열하게 싸웠던 전·후반전을 지나 어쩌면 진정한 승부처인 ‘연장戰’에 돌입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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