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푸틴 대통령(오른쪽)과 부시 대통령(왼쪽)의 관계가 임기 말년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크렘린과 워싱턴 간의 신경전이 한창이다. 지난 10월16일 카스피 해 연안 5개국 정상회담 차 이란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카스피 해 5국은 이들 각국에 (외국군의) 침입이나 군사작전이 있을 경우, 자국 영토를 내주지 않기로 합의했다”라고 발표했다. 이란의 핵무기를 감시 통제하려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제(MD) 계획에 노골적으로 반대한 것이다.

그러자 이튿날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세계 지도자들이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저지해야 한다”라며 푸틴 대통령을 비판했다. 또 푸틴에 대해 “교활(wily)한 사람”이라며 폄하했다. 이에 질세라 18일 푸틴은 이라크 문제를 들며 미국을 공격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주둔 미군의 구체적 철군 시한을 밝혀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갈등이 깊어지면서 ‘신냉전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두 정상은 모두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양국 대통령이 날카롭게 각을 세우는 이유는 MD 때문이다. MD 문제는 부시 대통령 임기 내내 러시아와 갈등을 빚던 사안이다. 관측통들은 양국 대통령이 임기 후반을 맞아 모종의 타협이 있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가고 있다. 

지난 10월12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부 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부 장관이 러시아를 방문했다. MD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러시아 측 카운터 파트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부 장관과 아나톨리 세르듀코프 국방부 장관이었다. 일명 ‘2+2’ 회담의 공식 의제는 MD 문제와 이란 핵개발 문제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난 8월 독일 G8 정상회담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꺼낸 ‘깜짝 제안’에 대해 부시 미국 대통령의 회답을 주는 자리였다.

G8 정상회담 때 푸틴은 ‘러시아 기지 공유 카드’를 꺼내 부시 대통령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MD를 구축하려는 MD의 타깃이 러시아가 아니라 이란이라면, 폴란드나 체코에 MD 기지를 만들 것이 아니라 이란에 인접한 아제르바이잔에 있는 러시아 레이더 기지를 공유하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아제르바이잔에는 옛 소련 시대부터 존속해온 가발라(Gabala) 레이더 기지가 있다. 소련이 와해된 이후, 러시아가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가발라 기지를 임차해 운영하고 있다. 푸틴은 여기에 미·러 MD 공동기지를 만들고 공동 연구를 추진하자고 권했다.

푸틴의 ‘가발라 기지 공동 사용’ 제안 이후, 양국은 실무 그룹을 가동해 이 제안을 검토했다. 그리하여 지난 8월 미국에서 1차 협의를 가졌고, 지난 9월18일에는 양국 전문가들이 직접 가발라 기지를 방문해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다. 10월 ‘2+2’ 회담은 두 달간의 연구를 결론 내는 자리였다.

군사 전문가들 “미국, 내년 3월 이란 공격”

‘2+2’회담에 앞서 라이스와 게이츠를 면담한 자리에서 푸틴은 또 다른 깜짝 제안을 했다. 아제르바이잔 군사기지를 공동 사용하자는 것뿐만 아니라 미?러간에 진행 중인 중?단거리 미사일 폐기에 관한 협정을 전세계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즉 재래식 살상 무기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퇴출하는 데 세계적 합의를 도출하자는 주장이다.

ⓒReuters=Newsis러시아는 자신들이 임차해 쓰는 아제르바이잔의 카발라 레이더 기지(위)를 미국과 러시아가 공유하는 MD 기지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런 푸틴의 제안에 미국의 최종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2+2’ 회담 직후 라이스는 러시아 텔레비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은 지속적으로 미사일 영역을 확장하려 한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이에 대한 방어 조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MD의 유럽 배치가 대 러시아 정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러시아 측에 설득할 수 있다”라고 언급하고, “워싱턴은 MD 기지 설치에 대해서 폴란드·체코와 협상을 계속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워싱턴이 크렘린의 제안에 퇴짜를 놓은 배경은 무엇일까? 러시아 관측통들은 푸틴이 곧 물러날 인물이고, 실제적으로 러시아가 미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심각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미국은 러시아와의 논쟁을 중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폴란드에 요격미사일을 배치하고 체코에 미사일 기지를 세우려는 MD 계획을 강행할 것이라 관측했다. 펜타곤의 구상에 의하면 이 MD 계획은 2012년에 완료된다. 러시아 일각에서는 체코 다음 기지는 러시아의 턱밑인 그루지야일 것으로 본다.

러시아 합참의장 유리 발루예프스키의 말을 빌리면, 미국 측은 가발라 기지를 공동 사용하자는 푸틴의 제안에 맞서 엉뚱한 역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추진하는 MD 시스템 건설에 단순한 ‘보조 기능처’로서 가발라 기지를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애초 푸틴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안이다. 발루예프스키 합참의장은 “이 제안은 새로운 것도 아니고,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미국 측은 ‘2+2’회담 때 이란 핵개발 문제에 대해서도 강경한 목소리를 내며 러시아를 압박했다. 미국 측은 이란의 핵개발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중대한 위협 요소임을 역설하면서, 세계는 이란에 좀더 가혹한 수단으로 제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일 필요하다면 무력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이란의 핵 개발을 저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관측통들은 이러한 주장 이면에는 러시아가 이란의 핵 군사 시설에 대한 공격 계획을 지원하기를 바라는 백악관의 은근한 주문일 수 있다고 예측했다.

물론 러시아로서는 미국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란은 러시아에 상당한 이권이 걸린 나라다. 우선 러시아는 이란의 핵 발전소 건설에 기술을 지원하고, 아울러 발전용 핵 원료를 팔고 있다. 나아가 이란은 엄청난 블랙골드(석유/가스)의 매장지인 카스피 해 인접국이다. 러시아는 남방 경계선(러시아 측의 )에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하기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

이번 회담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양국 간 외교 협상이 탈출구를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단했다. 미국은 국제 무대에서 러시아를 강력하게 밀어붙일 전망이다. 특히 MD 문제는 다음 협상이 2008년 4월에 있을 예정인데 이미 푸틴 대통령이 물러난 뒤이다. 또 미국은 대통령 선거 정국에 들어간다. 어쩌면 그전에, 그러니까 내년 3월 이전에 이란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군사 전문가들이 많다.

대통령 임기 말년에 꽁꽁 얼어붙은 미,러 관계에 봄날이 올까? 세계가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다.

기자명 모스크바=정다원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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