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거름마다 기차 안에선 신음 같은 중얼거림이 들렸지. “계속 서쪽이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야 하는지는 도시 몰랐소. 칭얼대던 애들도 잠잠해지고 날짜 헤기를 그만두고도 기차는 그저 서쪽으로 달렸지. 카자흐스탄 땅에 발 디뎠을 때 눈에 익은 풍경이라곤 파란 하늘과 태양뿐, 흙도 물도 공기도 낯설고 느끼하고 메스꺼웠소. 부모에게 버림받아 길바닥에 팽개쳐진 갓난아이나 그 마음을 이해할까.


살아야 했소. 이름 높던 홍범도 장군이 극장 수위로 여생을 마쳤듯 끌려온 고려인들은 땅을 갈든 양을 치든 아등바등 살아내야 했소.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그들의 속담을 들려주며 위로했지. “어제보다 더 먼 것은 없고, 내일보다 더 가까운 것은 없다.” 우리에게 어제는 이미 없었지만 내일이 가깝다고 느껴진 적도 없소. 우리는 항상 오늘뿐이었으니까. 

 

ⓒ시사IN 신선영강제 이주 고려인들이 집단으로 묻혀 있는 무덤.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손승현한 안드레이 씨(뒷줄 오른쪽)의 가족사진. 카자흐스탄 알마티.

 

 

 

기자명 사진 손승현 신선영·글 김형민(PD·〈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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