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호의를 베풀자 칼을 들고 돌아왔다

트레이시 윌킨슨은 갈 곳 없는 에런 베일리를 돌보았다. 하지만 약물중독자였던 베일리는 자신을 거둬준 윌킨슨과 그녀의 아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webmaster@sisain.co.kr 2017년 12월 28일 목요일 제536호
댓글 0
영국의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때다. 다른 때는 가족을 찾지 않는 사람도 크리스마스에는 ‘집’에 돌아간다. 사 들고 돌아갈 것을 장만하는 ‘크리스마스 쇼핑’도 한다. 크리스마스 직전은 다들 매우 흥청거리고 들떠 있다. 서로 사생활에 대해 잘 묻지 않는 영국 사람들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집에 가느냐”고 묻는다. 돌아간 집에는 부모가 있다. 영화에서 자주 보는 풍경이다. 아이들은 선물 상자가 놓인 크리스마스트리 주위에서 뛰놀고 크리스마스 문양의 스웨터를 입은 가족들이 술잔을 들고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며 민스 파이나 칠면조 구이 같은 음식을 먹는다.

물론 현실은 이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아서, 자주 만나지 않던 사람들이 마주치다 보면 서로 긴장이 고조되기 마련이다. 특히 홀짝거리고 마시는 식전주에 취하기라도 하는 경우 그간 서운했던 일이나 앞으로 상대방에게 바라는 일, 현재의 어려운 사정, 그 모든 사연이 몽땅 다 튀어나와 목청 높여 싸운다. 때로는 훌쩍 돌아와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극적으로 화해하기도 하니, 이 역시 명절 스트레스다. 말하자면 크리스마스 휴일이란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 첫날은 기쁘고, 둘째 날은 부글부글 끓고, 사흘까지 있으면 싸우는, 그러고는 돌아와 다시 1년을 기다리는 기간이다. ‘가족’이 있는 한 그렇다.

ⓒPA Wire
피터 윌킨슨(오른쪽)과 그의 딸 리디아가 에런 베일리의 재판을 보기 위해 법원에 출석했다.
이때를 가족 없이 보내야 하는 사람들은 평상시보다 그 쓸쓸함의 정도가 훨씬 더하다. 그러니 크리스마스 때 주변에 갈 곳 없는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 크리스마스 음식을 대접한다는 것은 각별히 마음을 써주는 일이다.

에런 베일리는 2015년 크리스마스 저녁, 윌킨슨 가족의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다. 2015년 봄 그는 윌킨슨 가족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40대 후반의 트레이시 윌킨슨은 유복한 사업가의 아내로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해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녀 자신도 알코올 중독을 가까스로 이겨낸 경험이 있었다. 트레이시는 슈퍼마켓 앞에서 종이 상자를 깔고 누워 있던 베일리를 보고 다가가 말을 걸었다. 22세의 베일리는 약물중독자였고, 헤어진 여자 친구를 흉기로 공격하여 이미 3년간 구금된 적이 있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자랐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고 폭력적이었다. 돈을 받고 몸을 팔기도 했다. 하지만 트레이시는 이런 사실을 몰랐다.

베일리가 날조해 들려준 사정을 듣고 그의 처지를 깊이 동정하게 된 트레이시는 그날 당장 베일리를 집으로 데려와 저녁을 먹이고 계속해서 베일리를 돌봐주었다. 베일리가 제대로 음식을 먹었는지 살펴보고, 잘 곳을 알아봐주고, 잘 곳이 없다고 하면 집에서 재워주었다. 비록 아들 피어스와 딸 리디아가 베일리와 같은 집에 있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트레이시는 남편 피터를 설득해 피터의 회사가 진행하는 건설 현장 중 한 곳에서 베일리가 일하도록 했다.

베일리는 아무런 연락 없이 일터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친어머니가 죽었다는 핑계를 댔지만 거짓말이었다. 약물을 사용하다가 들키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윌킨슨 가족은 계속하여 베일리를 도왔다. 집 앞에 웅크리고 있는 그를 발견해 2주일간 집에 묵게 하기도 했다. 윌킨슨 가족의 베일리에 대한 후원은 1년 정도 계속되었다.

ⓒCaters News Agency
돌보던 청년에게 살해당한 트레이시 윌킨슨 씨의 집 앞에 추모객들이 가져다 놓은 꽃들이 쌓여 있다.
“내가 가져보지 못한 어머니에게”

사건이 벌어지기 한 달 전쯤 윌킨슨 가족은 그간 대신 내주던 베일리의 휴대전화 요금 지불을 중단했다. 이즈음 베일리는 페이스북에 자기 ‘가족’을 죽여버리겠다는 내용의 과격한 포스팅을 올렸다. 자기와 이야기조차 하지 않는다며 피도 눈물도 없고 무정하다고 비난하는 내용도 있었고, 잡히기 전에 몇 명이나 죽일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도 썼다. 자신이 학살극에 나서지 않도록 (심리적)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글도 있었다. 이를 보게 된 베일리의 예전 위탁모는 그에게 심리 상담을 받으라고 권했다. 베일리가 약을 먹기 싫다며 거절하자 위탁모는 경찰에 이런 사실을 알렸다. 경찰은 베일리의 가족을 접촉하려 노력했으나 그가 의미하는 가족이 그의 생물학적 가족이 아닌 윌킨슨 집안이라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했다.

3월30일 이른 아침, 베일리는 얼굴 대부분을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온통 검은색으로 차려입고 윌킨슨 가족의 집 정원에 숨어 있었다. 검은색 장갑을 끼고 노란색 운동화가 눈에 띌까 봐 검은색 양말을 운동화 위에 덧신은 채였다. 집주인 피터가 개를 산책시키기 위해 집을 나서자 베일리는 뒷문을 열고 집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는 이 집의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부엌에서 칼을 집어 든 그는 부부 침실로 올라가 아직 잠들어 있던 트레이시를 열일곱 차례 찔렀다. 그다음에는 아들 피어스의 방으로 가, 역시 침대에서 자던 열세 살짜리 소년을 여덟 차례 찔렀다. 어찌나 세게 찔렀는지 소년의 등뼈가 잘려나갈 지경이었다. 모자를 죽이고 현관문 옆에서 숨어 피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베일리는 집에 들어서는 피터를 덮쳐 여섯 차례 찔렀다(피터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피터가 겨우 베일리를 떨쳐내자, 그는 밖으로 뛰어나와 주차되어 있던 피터의 차를 끌고 도망쳤다. 막무가내 질주는 남의 집 담을 들이받고서야 막을 내렸다. 베일리가 윌킨슨 가족의 그 모든 호의에도 불구하고 원망의 마음을 품게 된 경위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가 살해 동기에 대하여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체포된 직후, 그들을 다 죽여버리지 못한 게 한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열아홉 살인 딸 리디아는 대학에 다니느라 집을 떠나 있어 참사를 피했다. 리디아는 재판에서 베일리가 자기 인생을 망쳤다고, 가족 중 절반을 빼앗아갔다고, 집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눈물이 솟아난다며 “베일리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베일리가 바라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서 행복을 빼앗는 것. 자신이 갖지 못한 가족을, 자기 것이 될 수 없는 어머니를 말이다. 2015년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 때 베일리가 트레이시에게 준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가 가져보지 못한 어머니에게.” 베일리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최소 30년을 복역해야 가석방을 신청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