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화성 14호에서 화성 15호로 나아간 것은 사거리 때문이다. 화성 14호의 1단 추진체는 옛 소련의 RD-250 엔진을 반으로 쪼개 만들었다. RD-250 엔진은 2개의 연소기를 가진 대용량 액체추진체(LPE ·추력 80~90t)이다. 이 엔진을 반으로 나눴으니 추력 역시 그 절반인 40~45t으로 줄었다. 여기에 보조 엔진 추력을 더하면 미국 서부 해안지대에는 도달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난 7월4일과 7월28일 두 차례 발사된 화성 14호 사거리가 기대에 못 미쳤다. 화성 14호에 북한이 개발한 600㎏의 표준 탄두를 장착할 경우 평양에서 약 6000㎞ 떨어진 알래스카에 겨우 닿는다는 조사 결과가 공표되기도 했다. 미국 전역에 도달하는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이라는 북한의 염원에는 한참 부족한 사거리였다.

ⓒ평양 조선중앙통신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동식 발사대에 실린 화성 15호를 살펴보고 있다.
75일 만인 11월29일 다시 선보인 화성 15호는 사거리 면에서는 확실히 개선됐다. 600㎏ 탄두를 싣고도 1만3000㎞, 즉 워싱턴·뉴욕 등 미국 동부 지역까지 날아갈 만했다. 화성 15호는 화성 14호의 1단 추진체 엔진 두 개를 클러스터링(하나로 묶는 것)해 추진력을 배가했다. RD-250 엔진의 원래 추진력인 80~90t을 회복한 것이다. 연료와 산화제를 공급하는 터보펌프 역시 오리지널 RD-250과 마찬가지로 하나로 공유해 부피를 줄였다. 화성 14호까지 계속 사용하던 자세제어용 보조 엔진을 떼고 대신 주 엔진 자체의 각도를 조정해 방향을 바꾸는 짐벌(gimbal) 시스템을 도입했다. 짐벌 시스템이란 두 개의 노즐에 각각 유한 모터를 달아 ±7~8° 사이를 움직여 방향을 조정하는 장치다. 미사일 전문가인 장영근 항공대 교수가 짐벌 시스템 도입 가능성을 처음 제기했다. 그는 “아주 어려운 기술이라기보다 처음 발사해 성공했다는 게 대단하다”라고 말했다. 2단 추진체에도 변화가 있었다. 1단 추진체와 부피를 같게 해 연료와 산화제를 더 많이 실을 수 있었다.

75일 만에 이 모든 변화가 가능했을까? 장 교수에 따르면 불가능하다. 미사일 엔진을 개조하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화성 14호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새로운 엔진 개발에 착수했다면 75일이라는 기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했을까? 장 교수는 “역순으로 개발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분석했다. 오리지널 RD-250을 들여와 약간의 개조 과정을 거쳐 먼저 화성 15호를 개발했다는 것이다. 두 개의 연소기에 하나의 터보펌프라는 기본형을 유지하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먼저 화성 15호를 개발한 뒤 단일 연소기 엔진 개발에 착수해 결과물로 등장한 게 화성 12호, 화성 14호일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화성 14호의 사거리 문제로 인해 이미 개발한 화성 15호를 이번에 발사했다고 장영근 교수는 분석했다.

ⓒ자료:마이클 엘러먼 국제전략연구소(IISS) 선임연구원 논문북한이 시험한 세 번의 미사일은 주 엔진 하나와 보조엔진 네 개로 구성된 동일한 엔진 복합체를 가졌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화성 15호를 등장시키지 않고 왜 이렇게 돌아갔을까. 화성 15호는 추진력은 좋으나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크기를 줄일 수 없다는 점이다. 화성 15호의 길이는 화성 14호보다 2m 긴 22m 정도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이동식 미사일을 싣는 차량의 최대치가 보통 바퀴가 8개짜리인데, 여기에 실으려면 길이가 20m 이하여야 한다. 화성 15호 이동을 위해선 별도로 9축 차량을 제작해야 했다. 북한이 11월30일 발표한 성명에서는 9축의 자율주행차 제작을 업적으로 홍보했다.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8축 차량만 해도 기동성에 제약이 있다. 회전 반경이 커 웬만한 도로에서는 주행하기 어렵다. 9축 차량은 이동이 더욱 어렵다. 북한이 이동식 미사일에 집착하는 것은 빠른 기동력으로 미국 정찰 무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다. 화성 14호에서 화성 15호로 나아가면서 사거리는 늘었지만 기동성은 떨어진 셈이다. 이것은 미사일 기술의 진보일까 퇴보일까? 장영근 교수는 “대외 과시용으로 9축 차량을 보여줄 수 있으나 실제로는 백두산 인근의 사일로(지하 격납고)에 배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사일이 사일로에 배치되면 유사시 미군의 선제타격으로 제일 먼저 제거되기 때문에 무기로서 효용은 떨어진다. 북한은 결국 이동식 ICBM을 원했으나 고정식으로 귀결했으니 퇴보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 미사일 능력이 대단한 수준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독일의 미사일 전문가 마르쿠스 실러 박사는 북한 ICBM 기술 수준을 미국·러시아·중국에 비견하는 세계 3~4위권이라고 평가했다. 과장이 아니다. 바로 1년 전만 해도 북한은 스커드와 노동, 무수단 미사일이 전부였다. 대포동이나 은하라고 해봐야 이들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조악한 수준이었는데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화성 12호와 화성 14호에서 선보인 단일 연소기 대용량 액체추진체(LTE) 기술부터 살펴보면 전문가들은 대단한 발전으로 평가한다. 기존 미사일을 개량해 새로운 엔진을 개발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는 연료와 산화제를 공급하는 터보펌프 문제가 중요하다. 오리지널 RD-250은 두 개의 연소기가 하나의 터보펌프를 공유한다. ‘2대1 대응’이다. 이것을 단일 연소기에 대응하는 ‘1대1 대응’의 터보펌프로 바꿔야 한다.

기존 미사일 엔진 개량은 쉽지 않은 일

북한의 화성 12호, 화성 14호가 옛 소련의 RD-250 엔진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처음으로 밝혀내 국제적으로 북한 미사일의 기원 논쟁을 불러일으킨 마이클 엘러먼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미사일방어 선임연구원의 논점 역시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그는 화성 12호나 화성 14호가 북한 자체 기술이었다면 근래 그보다 떨어지더라도 유사한 엔진 개발 실적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지난해 9월 우주발사체용 대출력 엔진 시험 이전에 화성 12호나 화성 14호 계열로 여길 만한 움직임이 표면화된 적이 없었다. 이전에도 북한 미사일의 주류는 제4차 중동전쟁 직후인 1973년 이집트에 미그-21을 제공한 대가로 조달한 스커드 미사일 계열과 1990년대 초 옛 소련의 마케예프 설계국(Makeyev Rocket Design Bureau)과 이자예프 설계국(Isayev Design Bureau) 기술자들을 초빙해 제작한 노동과 무수단 계열이었다. 노동 미사일은 옛 소련의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인 R-21을, 무수단은 R-27을 응용했다. 지난해 9월 대출력기 시험 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ICBM 개발 계획은 무수단 미사일을 몇 개 묶어서 추력을 높이는 쪽에 초점이 맞춰졌다.

지난해 3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사일개발실을 방문했다. 당시 배경 사진으로 노출된 미사일 엔진이 바로 이자예프 설계국이 만든 4D10 엔진이었다. 이 4D10 엔진을 마케예프 설계국이 제작한 미사일 발사체에 탑재하면 무수단 미사일이 된다. 지난 3월 예고편에 이어 4월9일 4D10 엔진으로 ‘새 대륙간 탄도미사일 고출력 엔진 지상 분출시험’, 그리고 여덟 번에 걸친 무수단 미사일의 시험 발사를 했다. 그러나 여덟 차례 시험 중 단 한 번만 성공했다. 결국 무수단을 포기하고 방향을 전격 전환한 게 9월의 대출력 엔진 시험이었다. 엘러먼 선임연구원이 대출력 엔진을 옛 소련의 RD-250로 특정할 수 있었던 것은 외양이 같고 연료 내장형이라는 특징 및 추진력의 크기 등에서 유사했기 때문이다. 미국·프랑스·중국·일본·인도·이란의 모든 액체추진체와 달랐다.  

지난해 9월 엔진 시험 당시 북한의 발표문에서 새로운 터보펌프의 작동이 원활하게 이뤄졌다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오리지널 RD-250 출력 확인 시험이었다면 굳이 새로운 터보펌프를 시험할 이유가 없었다. 즉 기존 RD-250이 아닌 새로운 엔진을 시험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엘러먼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이런 시험은 RD-250 엔진 설계와 제작에 풍부한 경험을 가진 전문가 팀이 함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기술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두 가지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옛 소련의 RD-250 생산에 관여한 기관 소속 전문가들이 북한에 와서 같이 실험했을 가능성이다. RD-250은 옛 소련의 유명한 미사일 전문가 발렌틴 글루시코가 만든 OKB-456 설계국이 1965년 설계했다. 우크라이나 유즈마시 공장에서 생산할 대륙간 탄도미사일 R-36의 엔진으로 설계한 것이다. OKB-456 설계국은 1991년 모스크바의 로켓 엔진 제작사인 에네르고마시로 바뀌었다. 유즈마시 공장은 인근에 있는 유즈노예 설계국의 미사일 발사체 설계와 에네르고마시의 RD-250 설계에 따라 발사체와 엔진을 각각 제작해 조립한 뒤 2006년까지 러시아에 납품해왔다. 엘러먼 선임연구원의 추론에 합당한 경험 있는 전문가란 에네르고마시와 유즈마시의 기술자이다. 그러나 엘러먼 선임연구원은 이들이 북한에 건너와 시험을 도왔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봤다. 그만한 생산 시설이 북한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대신 유즈마시나 에네르고마시에서 단일 연소기 RD-250 엔진이 만들어져 완제품 상태로 북한으로 건너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엘러먼 선임연구원은 2015년께 유즈마시가 파산 지경에 이른 뒤 일부 노동자나 부패한 과학자가 ‘블랙마켓’을 통해 북한에 유출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뉴욕타임스〉도 유즈마시를 특정했다.

하지만 이 같은 추론을 두고 미국이나 유럽의 전문가 및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뉴스위크〉 등의 언론이 비판했다. 화성 12호와 화성 14호 엔진이 RD-250을 변용한 것이라는 지적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당국이나 유즈마시 기업과 무관한 일부 노동자가 블랙마켓을 통해 열차 편으로 북한에 유출했다는 설명은 소설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 같은 가설에는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 당국이 핵·미사일 유출을 막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다. 2011년 북한 외교관 두 사람이 설계사인 유즈노예 연구원에 접근했으나 함정수사로 검거될 정도로 관련 연구자나 기술자는 당국의 24시간 감시체제에 놓여 있다. 러시안스페이스웹닷컴(Russian SpaceWep.com)이라는 매체는 유즈마시와 유즈노예 사정에 정통한 베테랑 전문가 두 명을 인터뷰해 엘러먼 선임연구원의 주장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조목조목 비판했다. 연소기 두 개짜리 RD-250을 하나짜리로 개조하는 것은 새 엔진을 개발하는 것에 맞먹을 만큼 대단한 일로 몇몇 사람이 몰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또 북한이 완제품만 몰래 들여와 시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2006년 러시아와 계약이 끝나면서 RD-250 엔진을 모두 러시아에 반납했다고 한다. 그 뒤 자체 우주로켓을 개발하기 위해 오리지널 RD-250 엔진을 구하려 10여 년간 4억 달러의 돈까지 투입했다. 이마저도 러시아의 도움 없이는 재생산이 어려워 RD-870이라는 자체 엔진 개발에 착수했다. 2014년 크림반도 사태 후 러시아와의 핵심 부품 공급이 중단돼 이것도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

엔진 설계 제작 경험 풍부한 전문가 있었나

‘우크라이나 조달설’이 비판에 부딪히면서 전문가별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지난 9월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 웹사이트에 마리나 버드제리안 박사 등이 공동명의로 발표한 글에서는 “RD-250이 러시아 에네르고마시에서 개발됐고, 모든 기술적 자료도 그곳이 가지고 있으며 똑같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의심의 대상에서 제외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독일 분석가 노베르트 뵈르게는 북한이 소련 붕괴 시 RD-250이 장착된 R-36 미사일을 들여와 역설계 방식으로 자체 생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 정보기관 역시 북한의 자체 기술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사일 전문가 제프리 루이스 박사는 9월14일 트위터를 통해 미국 재무부가 지난해 9월 80t 엔진 시험을 도왔다는 이유로 2017년 1월 이란 관리들을 제재했다는 내용을 알리기도 했다.

이 같은 갑론을박 분석에서 특이한 것은 러시아의 역할에 대해 조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RD-250 엔진의 기술적 원천이나 북·러 관계 및 국경 통과 가능성, 그리고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 사태 이후 대미 관계 악화 속에서 극동 지역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온 점 등을 보면 북한 미사일 개발에 모종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미·러 관계에 정통한 국내 전문가는 “미국은 자체 조사 결과 러시아에서 흘러들어갔다고 결론 내렸으나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러시아도 이란이나 파키스탄 문제 때처럼 우크라이나 핑계를 대지만 내부적으로는 자기들에게서 흘러갔다고 보고 예의주시 중이다”라고 밝혔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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