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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통과 없이 국정원 개혁 없다

국가정보원이 개혁안을 냈다. 명칭 변경부터 권한까지 떼어내는 국정원법 전면 개정안이다. 정치 관여 금지와 대공수사권 폐지를 명시한 대목이 눈에 띈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2017년 12월 25일 월요일 제5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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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자체 개혁안을 냈다. 명칭 변경부터 권한까지 떼어내는 국정원법 전면 개정안이다. 과거 ‘셀프 개혁안’과는 다르다. 입법을 통한 개혁인 만큼 셀프 개혁안과 달리 되돌리기 힘들다. 핵심은 정치 관여 금지와 대공수사권 폐지를 법으로 명시한 대목이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의 법 개정 권고안을 받아들인 결과다.

지난 9월 출범한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는 시작부터 적폐청산 TF와 조직쇄신 TF를 발족했다. 적폐청산 TF가 15가지 사건 조사 결과를 순차 발표하며 댓글 민간인 동원, NLL 회의록 유출 등 문제가 발견된 사안은 검찰에 수사 의뢰를 했다. 그사이 조직쇄신 TF는 언론에 부각되지 않고 쇄신안을 준비했다. 쇄신안의 핵심은 대공수사권 폐지였다. 서훈 국정원장이 지난 6월 취임하자마자 국내정보 수집을 금지하며 관련 부서 폐지를 선언했기에,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대공수사권 폐지 등을 담은 입법이었다.

ⓒ시사IN 이명익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은 대표적인 국정원 대공수사권 남용 사례로 꼽힌다. 12월7일 기자회견에서 김용민 변호사(왼쪽에서 두 번째)가 발언하는 모습.
이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과도 맞닿아 있다(<시사IN> 제509호 ‘국정원 적폐청산, 제도로 완성한다’ 기사 참조). 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국정원의 국내정보 수집 업무를 전면 폐지하고, 간첩 조작 등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국내정보 활동의 빌미가 된 수사 기능을 없애겠다”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국정원의 국내정보 수집과 대공수사 두 기능은 서로 연관이 되어 있고 같이 없애지 않는 이상 효과가 없다는 의미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도 이를 공감했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한 관계자는 출범 당시 <시사IN> 기자와 만나 “적폐청산 작업은 국정원 개혁이 필요하다고 여론을 모으는 일이고, 결국 핵심은 조직 쇄신이다. 국내정보 수집 금지와 대공수사권 폐지의 입법화가 목표다. 대공수사권 폐지는 국정원 내부는 물론이고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반대할 가능성이 커 더욱 여론의 지지가 중요하다. 그래야 국회가 움직인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예상대로 개정안 통과를 위해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석만으로 부족하다. 야당의 협조가 필요하지만 자유한국당은 국정원 개혁안이 나오자마자 반발했다. 정우택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2월1일 “국정원 개혁안은 안보를 포기시키겠다는 말이다”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박주원 당시 국민의당 최고위원도 “반세기 동안 이 나라를 지켜온 대공수사권을 함부로 폐지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
2014년 3월 간첩 사건 증거 위조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된 국가정보원 협조자 김원하씨.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다. 대공수사권이 없어지면 ‘간첩은 누가 잡느냐’는 우려다. 국정원의 수사 기능을 국가경찰 산하 안보수사국과 같은 곳으로 떼어준다는 문 대통령 공약이 실현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공수사권만 없앨 경우 안보 공백이 생긴다는 논리다. 또한 정보와 수사는 분리할 수 없기에 대공수사권을 떼어내고 국정원을 정보기관으로서만 존재하라고 주문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국정원 개혁안을 설계해온 이들은 현재 대공수사는 국정원뿐만 아니라 경찰과 검찰도 맡고 있다고 설명한다. 결과적으로 안보수사국과 같은 곳을 신설해 대공수사 총괄기관을 만들어야 하지만, 안보 공백이 생긴다는 주장은 과도한 불안감 조성이라고 반박한다.

오히려 국정원이 정보와 수사를 모두 맡아 권한이 집중돼 생기는 문제점이 국정원 개혁 요구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견제받지 않은 권한이 남용돼 인권을 유린하거나 없는 간첩을 만들어내는 상황까지 갔다는 것이다.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으로 국정원은 ‘국조원’이라는 불명예 딱지가 붙여졌다. 국가정보원이 아닌 ‘국가조작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2014년 당시 국정원 민간인 협조자인 중국동포 김원하씨는 자살 기도를 하며 묵던 모텔 방 벽에 혈서로 ‘국조원’이라고 썼다. 김씨는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의 가담자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국정원 대공수사팀 의뢰로 중국 문서 조작에 동참했다. 유서에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국정원은 개혁하기보다 바꾸는 게 좋겠다” “지금 국정원은 국조원이다”라는 내용을 남겼다. 검찰 수사와 언론의 취재로 밝혀진 증거를 조작하는 데 든 돈만 5000만원이 넘는다. 국정원은 수사 실적을 위해 중국에 있는 민간인 협조자를 이용해 문건을 조작했고, 그대로 재판부에 제출됐다.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은 국정원 대공수사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개혁의 핵심은 정보와 수사의 분리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 국정원을 대공수사 적임 기관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국정원이 간첩이라고 수사하고 재판까지 사실상 관여한 유우성·홍강철 사건 모두 무죄가 났다. 심지어 증거 조작까지 들통났다. 차라리 정보기관으로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나머지는 손 놓는 게 위상 강화에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국정원 출신들도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목소리를 낸다. 국정원 대북 파트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관계자는 “국내정보 수집을 이용해 국정원 내부 인원도 정치를 한다. 권력 부침에 따라 줄을 선다. 어느 때부터는 (국정)원에서 진짜 정치를 하지 않으면 옷을 벗어야 하는 조직이 됐다. 해외 음지에서 헌신하는 요원들은 전혀 빛을 못 본다. 유우성 사건도 ‘박원순용’으로 기획됐다는 말이 파다했다. 그런 식으로 대공수사를 하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국내정보 수집 기능을 없애고, 대공수사도 전문기관으로 가는 게 국정원 본연의 기능 강화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질릴 때가 있다”라고 말했다.

수사와 정보가 합쳐진 국정원 기능에 대한 우려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나왔다. 1989년 박찬종 의원 등이 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가 위헌이라고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했다. 1994년 헌재는 이를 기각했는데, 별개 의견이 도드라진다. 조규광·한병채·김양균 당시 헌재 재판관은 국정원이 정보와 수사를 모두 담당하는 점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정보기관으로부터 수사권을 분리시키는 것이 반드시 헌법적 지시라고까지 할 수는 없으나 정보기관이 수사권까지 가지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것은 아니므로 그 수사권은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권한의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적절한 견제장치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결국 국정원 개혁의 핵심은 정보와 수사의 분리다.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안에 대한 큰 그림도 이 방향과 일치한다. 정보는 국정원,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이 담당하도록 해 각 기관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견제와 균형을 이루자는 것이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대변인 구실을 한 장유식 변호사(법무법인 동서남북)는 “수사권 분리가 국정원 탈권력화의 필수 전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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