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사랑’을 말해보자. 그것도 관능적인 사랑을. 자유와 도덕을 넘어 방종과 쾌락까지 포함한, 사랑이라고 말하려다 주저하게 되는 사랑 말이다.
지난해 겨울 ‘상상 이상의 일’을 겪은 우리에게 이젠 사랑을 말할 여유가 생겼다. 4·19를 겪은 김수영도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뭐, “너의 얼굴은” “번개처럼/ 금이” 갔지만. 결이 조금 다를지 몰라도 우리도 모종의 ‘사랑’을 배운 듯하다.
사실 이 모든 ‘잡설’이 올 2월에 출간한 책을 두고 하는 말이다. 모든 일에는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기 마련일지 몰라도, ‘상상 이상의 일’ 덕분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질펀한 사랑의 속살을 구구절절 들려주는 이 책은 독자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사랑의 손길을 거부당한 사람은 알 것이다. 사랑의 ‘나쁜 면’이 얼마나 해로운지.
그래서… 이 책의 사랑 이야기를 짧게 들려주겠다. 소심한 사랑의 제스처다.
사랑의 경계 혹은 한계를 생각해본 적 있는가. 저자 메릴린 옐롬은 그 유명한 사르트르, 보부아르, 랭보, 스탕달, 오스카 와일드 등 거장의 삶과 작품을 거론하며 사랑의 경계 혹은 한계를 묻는다. 너무 겁낼 건 없다. 진짜 묻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 그 물음을 떠오르게 할 뿐이니까. 사실 이게 더 무섭다. ‘나도 모르게 사랑을 한계 짓고 있는 나’에게 사랑에 한계 따위는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한계 있는 사랑은 일종의 코미디다.
그래서 옐롬은 ‘프랑스식 사랑’을 말한다. 자신의 감정을 능동적으로 창조하며 살아가야 할 인간에게 생명력을 일깨워주는 복합적 행위로서의 사랑을 말이다. 관능, 자유, 방종, 쾌락, 동거, 혼외 관계…. 이 책은 (우리가 사랑이 아니라고 여기는) 질펀한 사랑을 모조리 보여준다. 그래서 진짜 재미있는 이 책의 사랑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소심한 사랑의 복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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