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 버튼을 누른 후 접하게 될 소리의 질감에 당신은 잠시 놀랄지도 모른다. 보컬과 기타를 맡은 황소윤(20), 베이스 문팬시(22), 드럼 강토(24)로 이뤄진 3인조 밴드 새소년을 ‘올해의 발견’이라고 부르며 다소 호들갑을 떤다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새소년의 첫 EP 앨범 〈여름깃〉이 플레이어 위를 빙글빙글 도는 25분16초 동안은, 적어도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다. “참 이상해 난 조금 더 시간을 잡아두고 싶어”지고 만다(2번 트랙 ‘긴 꿈’). 이들의 무대가 궁금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순서이다.

지난 11월18일 서울 서교동 KT&G 상상마당에서 열린 새소년 첫 단독 콘서트(400석 규모)는 예매 오픈 1분 만에 매진됐다. 멤버들도 놀랐다. 팬레터에는 ‘새소년의 음악은 나의 종교’라는 내용이 담기고, 황소윤의 얼굴을 본뜬 문신을 하고 나타난 관객도 있었다. “그런 건 레전드 뮤지션한테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신기해요.”(강토)

조짐은 있었다. 6월 데뷔 싱글
〈긴 꿈〉과 9월 두 번째 싱글 〈파도〉를 발표하며 연 쇼케이스에는 입장한 사람보다 들어가지 못한 관객의 줄이 더 길었다. 아직 정규 앨범도 없는, 황소윤의 말에 따르면 ‘코딱지 밴드’인 새소년이 90분간 단독 공연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들을 알아본 눈 밝은 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사IN 신선영
새소년은 ‘2017년 음악’이지만 지난 20년간 한국 인디밴드 신이 만든 모든 사운드를 거침없이 넘나든다. 모던록, 블루스, 신스팝, 사이키델릭을 아무렇지 않게 횡단하는 곡과 곡 사이를 함께 건너고 나면 질문이 남는다. 이 밴드의 음악을 어떤 장르로 규정해야 할까. 황소윤은 말한다. “뭔지 모르겠는 것들, 그래서 ‘새소년스럽다’라고밖에 할 수 없는 그 말이 가장 좋아요.” 이 유연한 움직임의 중심에 황소윤이 있다.

성별을 가늠하기 어려운 황소윤의 목소리는 듣는 이를 멈춰 세운다. “보컬이 남자인 줄 알았다는 반응을 듣고 셋 다 깜짝 놀랐어요.” 조금 더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름을 댈 수 있는 밴드의 대다수는 남성이다. 그 한복판을 뚫고 나타난 드물고도 매력적인 여성 보컬. 심지어 작사와 작곡과 기타까지 전담하는 여성 프런트맨의 등장을 주목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짧은 시간 경험한 여러 반응 앞에서 황소윤은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여성 프런트맨으로) 할 수 있는 게 뭘까, 라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하는데. 이 자리에서 나로 존재하면서 재밌고 즐거우면 되지 않을까. 그게 제일 멋있는 거 같아요.”

음악을 시작하면서도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부작사부작 혼자 하는 일들 중 하나가 음악이었다. 영상을 제작하고 그림을 그리고 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음악을 만들었다. 2015년, 십 대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열여섯부터 열아홉 살까지 만든 노래를 모아 〈16-19〉라는 제목의 앨범을 만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힘으로 만든 100장 한정판 데모 CD였다(사운드 클라우드에서 ‘soyoon’을 검색하면 들어볼 수 있다). ‘긴 꿈’과 ‘나는 새롭게 떠오른 외로움을 봐요’의 초기 버전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음반은 새소년 EP 앨범 〈여름깃〉의 밑바탕이 됐다.

ⓒ박수환 제공지난 11월18일 KT&G 상상마당에서 열린 새소년 첫 단독 콘서트는 예매 오픈 1분 만에 매진됐다. 위는 새소년이 공연하는 장면.
‘설 무대가 없다고? 우리가 만들지 뭐’

직접 만든 곡을 들고 친구들과 서울 홍대 일대 여러 작은 무대에 서곤 했던 어느 날, 황소윤은 제천간디학교 선배인 강토와 우연히 같은 무대에서 공연했다. 정작 학교 다니면서 말 한마디 섞어본 적 없었던 두 사람은 이날 뒤풀이에서 ‘급결성’된다. “나랑 드럼 한번 쳐보겠나, 이런 식이었죠(웃음).”

처음에는 밴드라기보다는 소모임이나 동아리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궁리하던 황소윤이 서울 종로의 한 독립 서점에서 들춰본 책에서 눈에 띈 단어가 새소년이었다. 새롭기도 하고(new) 새처럼(bird) 자유롭기도 하고 아직 완성되는 과정에 있는 ‘소년’이라는 단어들이 달라붙은 모양이 썩 마음에 들었다. 1980년대 어린이 잡지의 이름이 〈새소년〉이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밴드 이름을 따 ‘새소년 프로독숀’을 만들기도 했다. 동료 뮤지션들을 모아 기획 공연을 하는 프로젝트성 행사를 위해서다. 공연장과 공연팀을 섭외하고 포스터나 굿즈를 제작하는 등 설 무대가 없으면 무대를 직접 만들었다. 이제껏 두 차례 열었던 새소년 프로독숀 활동은 새소년이라는 밴드를 유지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 해나갈 예정이다.

용감하다고 해야 할까. 공식 발매된 음원 하나 없이 신인 대상 각종 경연에 참여했다. 2016년 5월 EBS 〈스페이스 공감〉의 신인 발굴 프로젝트인 ‘이달의 헬로 루키’ 오디션 참가도 그 연장선이었다. 그리고 그날 새소년의 무대를 인상 깊게 본 사람이 있었다. ‘장기하와 얼굴들’ ‘브로콜리 너마저’를 배출한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의 고건혁 대표였다. 붕가붕가레코드 소속 밴드 실리카겔이 그달의 헬로 루키로 선정된 무대에서 고 대표의 ‘촉’이 발동했다. 무심함과 강렬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황소윤의 목소리가, 스타일이 확고한 강토의 드럼이 ‘통하겠다’라는 업계 관계자의 예감이었다.

한 달 뒤 새소년은 고 대표한테 전화를 받는다. 고 대표는 황소윤의 데모 CD 음원을 찾아 들어봤다고 했다. 새소년과 붕가붕가레코드의 계약이 성사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뭐? 붕가붕가레코드가 우리랑? ‘와, 이런 세상에’였죠(웃음).” 베이스 자리가 오랫동안 공석이었던 밴드는 그즈음 문팬시가 합류하면서 모양을 갖춰가고 있었다. 본능적이고 날것에 가까운 황소윤과 강토의 음악은 기존 교육과정을 착실히 밟아온 전공자 문팬시와 만나면서 시너지가 나기 시작했다.

문재완의 예명인 문팬시는 강토가 그의 이름을 갖고 놀다 지었다. “재완? 완으로 시작하는 말이 뭐 있지? 완구? 이러다가 ‘팬시(fancy) 어때’가 된 거죠.” 황소윤·강토라는 두 멤버의 ‘센’ 이름에 비해 문재완이라는 이름은 어딘지 밋밋한 느낌이어서 캐릭터를 부여하고 싶었다. 문재완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두 멤버가 제시한 안이 두 개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문팬시 아니면 팬시문으로 하자는 거예요. 사실상 선택지가 없잖아요(웃음).”

고건혁 대표는 새소년을 통해 붕가붕가레코드 레이블 역사상 최초의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레이블의 아티스트들은 개성과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셀프 프로듀싱을 당연하게 여겼다. 새소년은 달랐다. 실리카겔의 김한주를 새소년의 프로듀서로 붙여 곡을 끝없이 다듬었다. 멤버 모두가 편곡에 참여했다. 노래 한 곡당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버전의 곡이 만들어지고 사라졌다. 멤버들이 가진 개성과 비범함을 해치지 않으면서 ‘플러스알파’의 결과물을 낼 수 있을까. 고 대표로서도 결과를 짐작할 수 없는 1년이 흘렀다. 어떤 것이 가장 ‘새소년다울까’ 궁리하며 보낸 시간이었다.

지난 6월 발매된 데뷔 싱글 앨범 〈긴 꿈〉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과정도 과감했다. 노래와 어울리는 뮤직비디오를 모색하다가 애니메이션으로 결정됐고, 황소윤이 직접 국내외 애니메이터 작품을 샅샅이 살펴봤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사람이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는 일본 출신 애니메이터 쓰치야 호지였다. 무작정 보낸 메일에 쓰치야 씨는 하루 만에 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문제는 3초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결과물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앨범 발매일을 미뤘다. 제작 기간 4개월간 60통의 메일이 독일과 한국을 오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긴 꿈’의 뮤직비디오는 새소년이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쓰치야 씨는 뮤직비디오를 여러 나라의 애니메이션 영화제에 출품할 계획이다.

얼마 전 새소년은 CJ문화재단의 뮤지션 지원 사업인 ‘2017 튠업’ 18기로 선정됐다. 신인 부문에 총 209개 팀이 지원했고, 그중 네 팀이 선정되는 치열한 과정을 뚫었다. 뽑힌 팀은 음반 제작비와 홍보 마케팅은 물론 CJ의 공연장과 창작 공간 등을 지원받는다. 국내외 대형 페스티벌에 설 기회도 주어진다.

예정된 연말 공연을 마치고 나면 본격적으로 정규 앨범 준비를 시작할 예정이다. 배순탁 음악평론가의 말마따나 “작은 공연장으로는 그들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날이, 곧 찾아올 것이다 (〈시사IN〉 제533호 ‘혁오가 끌어주고 장기하가 밀어주네’ 기사 참조).” 2017년 ‘올해의 발견’은 2018년 ‘올해의 앨범’이 될 수 있을까. 새소년이 지금까지 거둔 성취는 ‘그렇다’에 무게를 싣는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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