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석방됐다. 군 댓글 부대 관련 혐의로 구속된 지 11일 만이다. 11월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신광렬)는 김 전 장관이 청구한 구속적부심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어서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라며 석방의 이유를 밝혔다. 11월11일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판사는 “주요 범죄 혐의인 정치 관여가 소명된다”라며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11일 사이 증거 등 달라진 상황은 없었지만 법원의 판단이 갈렸다. 이틀 후인 11월24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도 구속적부심 청구가 인용돼 풀려났다. 보수 언론과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무리한 검찰 수사가 드러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연 그럴까? 국군사이버사령부의 2011년부터 2013년 내부 공식 문서를 살펴보자.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방부에서 입수한 자료다. 내부 공식 문서를 보면 국군사이버사령부 530단(심리전단) 운영에 김 전 장관이 관여한 흔적이 남았다. 조직적 댓글 부대 운영을 지시하는 내용과 그가 서명한 사인이 보인다. 군과 같이 일사불란하게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에서 명령을 하달하고 결과를 보고하는 문서는 그 자체로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내부 공식 문서들이 날것 그대로 전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연합뉴스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위)이 석방되면서 검찰의 국군사이버사령부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특별취급 도장이 찍힌 〈문서 1〉의 제목은 ‘C-사령부 부대운영(안) 보고’다. C-사령부는 국군사이버사령부다. 문서 가장 끝에는 ‘※승인해주시면, 기밀 유지하 작전에 진력하는 부대로 만들겠습니다’라고 쓰여 있고, 2011년 7월23일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 결재했다.

530단과 550단은 사이버전 공작·작전 수행 부서로 최고 은닉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530단은 댓글 부대, 550단은 해킹 부대다. 기밀 유지를 위해, 지휘체계를 단순화해 장관 직할부대로 운용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장관→사령관→단장’으로 이어지는 지휘체계를 명시했다. 실제로 2010년 창설된 국군사이버사령부는 애초 정보본부 산하였지만 2011년 7월 장관 직할부대로 독립했다.

530단 부대의 작전에는 정치·선거 관여도 포함됐다. 이들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대북심리전이라는 명목으로 댓글 작전을 수행했다. 국방부와 군 검찰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치 댓글은 1만2800여 건이다. 내용을 봐도 대북심리전이라 보기 힘들다. “문재인이 부산에 (출마)?? 개박살 나겠군요 ㅋㅋㅋㅋ” “MB가 지구 북극권 그린란드를 방문해 자원외교 성과가 빛을 발휘하고 있네요” “박근혜 뽑는 가장 큰 이유는 예쁘다는 거다. 안철수같이 탐욕스럽게 생기지도, 문재인처럼 시체 잘 팔게 생기지도 않았다” 따위 댓글이었다.
 

사이버사 댓글 작전에 MB 관여 정황도

댓글 활동을 격려하기 위해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과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댓글 부대에 ‘격려금’을 내려보냈다. 〈문서 2〉를 보면 국정원장의 격려금 비고란에 ‘현안 업무처리 등 사이버전 수행성과’라고 쓰여 있다. 이례적인 국정원장의 사이버전 격려는 군과 국정원이 조직적 댓글 작업을 공동으로 수행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여기에는 당시 연제욱 사령관과 옥도경 참모장의 사인이 있다. 두 수뇌부 또한 군의 정치 관여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항소한 상태다.

〈문서 3〉과 〈문서 4〉는 총선과 대선이 있던 2012년 1월 사이버심리전 대응 활동 시행계획과 지침이 담겨 있다. 〈문서 3〉에는 댓글 하나를 달면 활동비로 얼마를 지급하는지 자세하게 나와 있다. ‘단가’인 셈이다. 세부 산출 근거를 보면 얼마나 상부에서 꼼꼼하게 지시가 내려갔는지 알 수 있다. 댓글·블로그·트위터 등을 작업하는 데 평균 시급을 7930원으로 잡았다.

 

 

 

 

이에 대해서는 ‘※금년 증액은 전례가 없었던 국정원의 승인으로 투철한 각오와 정신무장이 요구되며, 일심동체하 사업을 완수토록 총력 요망’이라고 마무리 지었다. 군이 국정원의 승인을 받을 이유가 없음에도, 이를 특별히 굵은 표시로 써놓았다. 당시 국정원을 책임지던 이는 원세훈 전 원장이다. 그 또한 국정원 댓글 작업을 지시했다는 이유로 지난 8월30일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문서 4〉에 나오는 활동 지침에는 다시 한 번 국방부 장관의 지시가 명시되어  있다. 제3장 제6조 임무의 첫 번째로 ‘530단장은 국방부 장관, 국방정책실장, C-사령관 및 상부 기관으로부터 지시받은 사항과 자체 판단에 따라 대응 활동 여부를 결정하고 대응 활동을 지도·감독한다’라고 쓰여 있다. 지금까지 드러나고 인정된 이태하 전 단장의 혐의를 ‘개인 일탈’로 볼 수 없는 근거다.

 

 

 

 

 

〈문서 5-1〉 〈문서 5-2〉 〈문서 5-3〉은 〈문서 1〉에서 명시한 댓글 부대 지휘 라인인 ‘장관→사령관→단장’의 사인이 총집합된 자료다. ‘2012년 사이버심리전 작전 지침’이 상세히 담겼다. 김관진 당시 장관 지침으로 세 가지가 나온다. 그중 하나가 ‘C-사령부는 군 통수권자 및 군 지휘부 음해를 저지한다’이다. 그러면서 작전 범위에 대해 ‘국방·안보 관련 사안’으로 한정한다면서 특정 정당·정치인 옹호는 일절 금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문장에는 ‘다만’이 따라붙는다. 판단이 모호한 경우는 사령관 또는 단장의 지침에 따른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개 사령관과 단장의 지침은 군의 정치·선거 개입이었다는 점이다. 이 점은 국방부·군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이미 인정되었다. 이태하 전 단장은 1심에서 정치 관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2심에서도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연제욱·옥도경 전 사이버사령관 또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철희 의원실이 제공한 2014년 7월경 옥도경 전 사이버사령관과 이태하 전 단장 사이의 녹취록에 따르면, 이 전 단장은 “내가 안고 넘어지니까 조직을 보호해주라는 것이었다” “부하들이 뭐가 죄가 있냐, 내가 시킨 것이지. 그것이 내가 시킨 것이냐, 장관이 시킨 것이지”라고 토로한다. 이때는 이 전 단장이 기소돼 1심 재판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이명박 정부의 군·국정원 댓글 사건은 양대 국기 문란으로 불린다. 정점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다는 의혹을 산다. 2012년 3월10일 김관진 당시 장관이 자필로 서명한 ‘사이버사령부 관련 BH(청와대) 협조 회의 결과(〈문서 6〉)’를 보자. 관련 회의는 김태효 당시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요청으로 열렸다며, 이를 김 장관에게 보고하는 내용이다. 김태효 전 기획관은 현재 검찰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문서 6〉을 보면, 총선과 대선이 있던 해에 댓글 부대원을 더 뽑으라는 지시는 “(이명박) 대통령께서 두 차례 지시하신 사항”임을 굵은 글씨로 표시했다. 또한 “BH는 창의적인 대응 계획을 높이 평가” “주요 이슈(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 탈북자 인권유린 등)에 대한 집중 대응 요구”라는 지시 사항도 쓰여 있다. 530단 산하에는 2012년

 

문재인 대선 후보 포스터를 ‘북한이 먼저다 문재인’으로 바꿔놓거나, 이명박 전 대통령 얼굴을 슈퍼맨에 합성한 ‘한국의 위상을 높인 영웅이 돌아왔다’와 같은 합성사진 등을 만드는 팀도 있었다.

또한 댓글 부대 동향 보고서가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과 경호처에 제공된다고 쓰인 부분도 눈에 띈다. 해당 보고서는 정치 관여 내용을 담고 있다. 530단 부단장 격이었던 김기현 전 총괄계획과장은 〈시사IN〉과 인터뷰하면서 동향 보고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MB가 독도에 간 사실에 대해 찬성이 20%이고 반대가 80%였다면, 밤사이 여론 작전으로 찬성이 80%, 반대가 20%로 바뀌었다는 내용 등이 있다. 군 조직의 특성을 생각하면, 매일 올라간 보고서에 대해 상부에서 ‘앞으로 이런 것 보내지 마’라고 했다면 밑에서 절대 안 만든다. 보고서는 보는 사람이 있으니까 만드는 거다(〈시사IN〉 제523호 ‘군의 댓글 작전은 밤에 이루어졌다’ 기사 참조).”

이철희 의원은 “이 문건은 군 댓글 작업을 김관진 당시 장관이 보고받고 지시한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댓글 작업을 직접 챙겼다는 증거다. 법원이 김관진 전 장관을 풀어주면서 내놓은 설명은 이와 같은 증거에 배치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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