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페미니스트다.” 지난 11월26일 배우 유아인이 페이스북에 이렇게 선언했다. 이 선언 이후, 유아인이 페미니스트인가 아닌가 하는 찬반론이 SNS를 메운다. 이 물음에 반응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질문이 있다. 과연 페미니스트란 어떤 사람인가. 페미니즘의 다양한 이해에 따라서 누군가가 페미니스트인가 아닌가에 대한 답은 달라진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각기 다른 이해와 개념 정의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는 논쟁은 파괴적이고 소모적이다.

1971년 미국에서 나오는 〈가톨릭 세계(Catholic World)〉라는 저널에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라는 글이 발표되었다. 이 글의 저자인 레너드 스위들러라는 신학 교수는 남성이다. 그의 글이 나온 후, 다양한 논쟁이 벌어졌다. 논쟁은 ‘예수가 페미니스트인가, 아닌가’는 물론이고 ‘남성 구세주인 예수가 여성을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까지 확산되었다. 그는 ‘페미니스트는 누구인가’를 규정하는 데에 복잡한 페미니즘 이론을 차용하지 않는다. 그 당시 하부 인간으로 취급받으며 살아가던 여성들을 온전한 인간으로 본 예수의 시선과 행동에 초점을 두었다. 여성을 온전한 인간으로 보는 것, 이것이 페미니스트의 우선적 규정 기준이었다. 이러한 페미니스트 개념에 따르면,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 그것도 매우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였다”. 스위들러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와 같이 급진주의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페미니즘을 생물학적 본질에 관한 것으로 귀속하게 하며, 페미니즘 자체를 매우 편파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페미니즘은 궁극적으로 본질에 관한 게 아니라, 성차별을 포함한 다층적 차별 구조를 넘어서고자 하는 정치적 견해로 보아야 한다. 페미니즘의 다양한 정의 중 이론가들이 수용하는 것은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급진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급진적(radical)이라는 말은 뿌리로 간다는 의미이다. 즉, 눈에 보이는 현상의 근원으로 들어가서 차별적 구조들에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한다는 의미이다. 페미니스트 의식은 성차별의 뿌리 문제(root problem)를 인식하면서, 그 문제들에 뿌리 물음(root question)을 던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유아인은 이러한 뿌리 문제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가부장제가 자연스러운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것이 의미하는 가부장제적 특권(두 누이가 있는데 아들이라는 이유로 막내인 자신이 ‘장남 특권’을 누려왔다는 사실)과 남존여비의 전통이 양산하고 있는 “차별적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것의 부당함 등의 인식을 드러낸다. 또한 그러한 사적 영역에서의 차별이 “인간 사회의 참상”으로 이어진다는 사실도 짚어내고 있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다’라는 페미니즘의 모토와 연결되는 지점이다.


ⓒ연합뉴스

페미니스트 자격을 간단명료하게 판단할 ‘대심판관’은 없다

유아인은 페미니스트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그렇다-아니다’라는 소모적 논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페미니스트라는 표지는 단순한 자기 정체성만이 아니라, 과제이자 책임성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여타 페미니스트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유아인의 페미니즘’도 치열한 학습과 개입에의 의지 없이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다’는 공허한 구호만을 외치는 ‘낭만적 페미니즘’을 넘어서야 하는 과제를 지닌다. ‘차별과 배제의 문제가 이 현실 세계 속에서 매우 복합적인 다양한 얼굴로 구성되고 실천되고 있는가’에 대한 다층적 학습을 통해서 페미니스트가 되어가야 한다.

다양한 종류의 특권과 권력이 복합적으로 교차하는 이 현실 세계에서, 누군가의 페미니스트 자격을 간단명료하게 판결 내릴 수 있는 ‘대심판관’은 어디에도 없다. 논쟁적 이슈가 등장할 때, 비난과 냉소가 아닌 비판적 개입과 토론이 필요한 이유이다. 남성·여성 또는 트랜스젠더 등 그 어디에 속하든, 페미니스트 역시 다층적인 인식의 사각지대를 지닌 존재로서, 오직 ‘형성 중인 페미니스트’인 것이다.

기자명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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