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재미있는 강의를 듣는 것 같았다. 한 인물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담아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58)가 풀어놓는 가인 김병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법이나 역사에 대해 잘 몰라도 900쪽짜리 ‘벽돌 책’을 펼 용기가 생겼다. 한 교수는 10년 동안 가인 김병로를 연구한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 제목은 이름 그대로 〈가인 김병로〉다.

주로 초대 대법원장이나 존경받는 법조인으로 기억되는 가인의 삶을 한 교수 안내대로 따라가다 보면 ‘좋은 어른’ 한 명을 만난 기분이 든다. ‘시키는 대로 했다’라는 법조인의 변명이 통용되는 요즘, 더 엄혹했던 시절 꼿꼿하게 정도를 걸었던 가인의 삶을 오롯이 복원했다. 이를테면 김병로 대법원장은 법원의 결정에 대놓고 불만을 표하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할 말을 다 했다. 집권 연장을 위한 개헌에 반대한 서민호 의원의 구속을 정지한 법원의 결정에 시비가 붙자 “절차를 밟아 항소하라”며 사법부 독립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가인 김병로의 열정적인 변론은 과거 기록을 찾아 복원했다. 1930년 대중 잡지 〈별건곤〉에 나온 “변론할 때이면 열심히 변론을 하는 맛치 언제나 입에서 허연 침이 맛치 가재 침 모양으로 질질 흘르는 특색이 잇다”라는 구절 등은 당시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가인은 좌우 인사 가리지 않고 여운형·안창호·박헌영·이재우 등 일제 치하 독립운동가를 변론했다. 한 교수는 ‘교수였기에 연구이지, 기자였으면 취재, 검찰이나 경찰이었으면 수사일 뻔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가인의 인생을 세밀하게 쫓았다. 그래서 엄청난 두께의  책이  쉽게 읽히는 편이다.

깊이 있는 연구 덕분에 기자로 치면 ‘단독’도 많다. 저서에는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사진·문건 등 자료가 여럿이다. 한 교수가 가인 집안의 위임장을 받아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명치대(메이지 대학) 학적부 등을 떼기도 했다. 틈날 때마다 1차 자료를 모았고, 이를 바탕으로 방학이면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고문, 옥중투쟁, 전쟁 등을 겪던 시절을 문서로 읽다 몸이 아플 때도 있었다. 그는 “그러다 보니 10년이 걸렸지, 이렇게 오래 걸릴 작업인 줄 알았으면 시작도 못했을 거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아내가 “이 정도면 됐다”라고 조언한 덕에 출간할 수 있었다.

가인의 삶에 매료된 한인섭 교수 또한 꼿꼿한 사연으로 유명하다. 1981년 사법시험 3차 면접에서 국가관을 시험했는데 ‘데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시에 합격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시대에 따라 다를 것 같다” “무변촌(변호사가 없는 지역)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변론하고 싶다”라고 답했다가 떨어졌다. 뒤늦게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며 2008년 사시 합격증을 받았다.

그는 현재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아 개혁 작업에 함께하고 있다. 학교에서 법조 윤리를 가르치는 한 교수에게 이번 저서는 더 값진 작업이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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