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1986년 초 겨울이었던가? 그 ‘문건’을 처음 본 순간만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우리는 간첩 박헌영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제목부터 인상적이었다. 풋내기 운동권이었지만, 박헌영이 어떤 인물인지는 알고 있었다. ‘간첩 박헌영’이라는 칭호 역시 공산주의자들을 통칭하던 어법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본문을 읽으면서 쉴 새 없이 뒤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해당 문건이 박헌영을 간첩이라 부른 이유는, 그를 김일성 정권에 맞선 ‘미 제국주의의 스파이’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의 주체사상과 적화통일 노선을 지도이념 및 활동 방향으로 공공연히 수용하고 있었다.

문건을 쓴 김영환은 ‘남한 주체사상의 대부’로 불려온 사람이다. 그가 태동시킨 ‘한국의 주체사상 운동’은 1990년대 초·중반의 전성기를 거쳐 지금은 이미 일종의 ‘컬트’로 전락한 상태다. 그 과정에서 김영환 등 ‘NL 운동’의 지도급 인사들이 ‘주사파 사냥꾼’으로 돌변하고, 그 2·3세대 중의 일부는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결합하는 코미디 같은 해프닝도 벌어졌다. 〈NL 현대사〉의 저자는 그 경과를 여러 사람과 정치세력의 시각을 빌려 연대기적으로 담담하게 책으로 묶어냈다.

책의 에피소드들에 따르면, 김영환은 북에서 김일성을 직접 만난 뒤 체제 경직성과 ‘우물 안 개구리’ 같은 현실인식 수준에 낙담한다. 간첩에게 포섭당해 ‘중부지역당’을 조직한 황인오씨는 ‘김정일이 남한에서 신출귀몰하며 인민들을 위로한 뒤 북으로 돌아갔다’는 소문을 퍼뜨리라는 황당한 지령을 받는다.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는 북이라면 몰라도 남에서는 통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주체사상이 한때나마 한국의 학생들에게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당시 ‘우리’는 억압과 금기, 심지어 학살의 동의어였던 반공주의에 지친 나머지 사상적 금기를 범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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