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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먹부림’을 위한 ‘푸드 바이블’

진지하게 맛과 음식을 탐구하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눈 밝은 출판인들이 썩 괜찮은 음식 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몇몇 책을 추려서 소개한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2017년 12월 07일 목요일 제5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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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만 해도 음식 책 하면 요리책과 맛집 소개 책이 거의 전부였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은 방송과 인터넷의 맛집 소개가 빨아들였다. 먹방과 쿡방이 대세를 이루면서는 급기야 ‘푸드 포르노’ 시대를 탄식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반작용이었을까. 양질 전환이었을까.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양질의 콘텐츠에 목말라했다. 2010년 이후 진지하게 맛과 음식을 탐구하려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맛 콘서트’ 같은 행사가 열리고, 음식 칼럼니스트 양성 과정이 생겨났다. ‘음식 전문가’를 꿈꾸는 이들이었다.

책이 단비를 뿌려주었다. 눈 밝은 출판인들이 썩 괜찮은 음식 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 출판 분야에서 음식 이야기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에세이부터 묵직한 연구서에 이르기까지, 만만치 않은 저작과 번역서가 국내에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막상 손에 쥐려면 막막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읽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음식 연구자, 요리사, 출판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몇몇 책을 추렸다. 난이도는 차이가 있지만, 되도록 미식 전반을 다룬 책으로 골랐다.

ⓒ시사IN 윤무영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푸른숲)는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씨의 음식 에세이다. 누구든 집어들기 좋은 애피타이저 같은 책이다. 45억 년 지구 역사에서 인간의 존재를 묻는 것으로 호기롭게 첫 장을 여는 이 책은, 정작 도시락과 배추전과 멍게 같은 개별 음식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기억을 가져온다. 음식과 요리와 추억을 어쩜 저리 잘 버무렸을까 싶은 글 솜씨를 보여준다. 고교 시절 짬뽕 많이 먹기 내기에서 진 사연을 지나, 지중해와 하와이에서 산 낙지를 어떻게 다루는지 설명하는 대목에 이르면 이 사람이 지금 어떤 요리를 내는지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동의하게 된다. 결국 ‘내가 먹고, 내가 되었음’을.

입맛이 좀 돌았다면 슬슬 배를 채울 차례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의 <미각의 제국>(따비)을 준비했다. 저자가 1990년대 후반부터 축적해온 ‘음식 경험’을 소재별로 풀어냈다. 음식에 관심은 있지만 교육받은 적이 없는 보통 사람을 위한 ‘미각 입문서’다. 방송 등에서 단편적으로 회자되는 그의 주장에 아쉬움을 느꼈거나 고개를 갸우뚱거렸다면 일독을 권한다. 뜻밖에 그는 ‘맛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쉽사리 정의하지 않는다. 다만 세상에는 늘 새로운 맛이 있으며, 그 맛을 보기 위해서는 문화적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본격적인 식사다. 우선 한식이다. <우리 음식의 언어>(어크로스)라는 책을 내놓는다. 국어학자인 한성우 교수(인하대 한국어문학)가 스탠퍼드 대학 언어학 교수 댄 주래프스키의 명저 <음식의 언어>(어크로스)를 읽고 자극받아 쓴 책이다. <음식의 언어> 한국판인 셈이다. 올해 수확한 작물을 ‘햇곡식’ ‘햇밤’이라 부르는데 쌀은 왜 ‘햅쌀’인지, 군것질과 디저트는 뭐가 다른지, 왜 밥과 쌀에는 사투리가 없는지 등 신선한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음식의 원형에 가닿게 된다.

ⓒ시사IN 윤무영
‘맛 콘서트’ 참석자들이 좋은 맛을 찾기 위해 청매실 액과 황매실 액을 시음하고 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라는 시구로 알려진 일제강점기 시인 백석도 우리 음식을 사랑했다. 소래섭 교수(울산대 국어국문학부)가 쓴 <백석의 맛>(프로네시스)을 펼치면 메밀국수, 떡국, 가자미, 나물지짐, 꼴뚜기회, 멧돼지고기, 개암범벅 등 무려 100가지 넘게 음식이 등장한다. 알려진 백석 시 100여 편 가운데 음식이 나오는 시는 60여 편에 이른다. 그렇다고 이를 시인 백석의 ‘먹부림’쯤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그가 사랑한 것은 음식을 내어준 자연과, 그 음식에 깃든 삶이었다.

일식도 있다. 먼저 한국인이 쓴 일본 음식 책이다.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따비)는 부산이 고향인 박상현씨가 10년간 뻔질나게 후쿠오카를 드나든 결과물이다. 바다 건너 ‘남의 나라 것’을 제 것인 양 자신만만하게 풀어놓으면서도 관찰자의 시선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일본의 맛은 한국의 맛과 포개진다. 일본 음식에 꽂힌 이라면 무조건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일본의 에세이스트 히라마쓰 요코는 <어른의 맛>(바다출판사)에서 60여 가지 맛을 소개한다. 혼자의 맛, 물의 맛, 저녁 반주의 맛, 초겨울의 맛···. 거기에는 해삼 알집 젓갈을 올린 오차즈케(녹차에 만 밥), 양하와 두부를 넣은 된장국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른이 되어 좋았던 게 뭐냐는 질문에 은어 맛을 알게 된 것이라고 답하는, 어쩌면 그것은 인류 보편의 맛이기도 하다.

국어대사전보다 두꺼운 ‘요리의 모든 것’

서양 음식으로 눈을 돌려볼까. <외식의 품격>(오브제)이라는 책이 있다. 업계에서는 이미 화제가 된 문제작이다. 저자 이용재씨는 음식 평론가이자 건축 칼럼니스트이면서 번역가다. 팔방미인인데, 내공이 만만치 않다. 이 책에서 그는 미국에서 한 경험과 스스로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국의 서양 음식을 때린다. 빵부터 식전주, 전채, 파스타·피자를 지나 스테이크와 후식에 이르기까지 조목조목 직격탄을 날린다. 그리하여 한국의 외식업 수준이 ‘상향평준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외식이 ‘맛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한식의 품격>이라는 책도 펴냈다.

아직 허기가 가시지 않았다고? 굵직한 외국 저작으로 가보자. <음식과 요리> (이데아)라는 책이 있다. 1260쪽이다. 집집마다 서가에 꽂혀 있던 국어대사전보다 두껍다. ‘요리의 과학자’로 불리는 해럴드 맥기가 1984년 펴낸 이래 전 세계 셰프들의 바이블이 된 책이다. 13가지 범주 식재료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물론이고, 조리기구 재질에 따른 차이까지 방대하게 다뤘다. 이용재씨는 <외식의 품격> 말미에 이 책이 주요한 참고문헌이라고 밝혔다. 박찬일 요리사는 음식 글을 쓸 때 이 책을 옆에 두고 슬쩍슬쩍 베낀다고 고백한 바 있다. 정독을 고집하기보다는, 항목별로 짬짬이 살펴보는 게 이 책의 사용법이다. 미국 저널리스트 마이클 폴란이 쓴 <요리를 욕망하다>(에코리브르)도 빼놓을 수 없는 필독서다. 전작 <잡식동물의 딜레마>(다른세상)에 이어 ‘올바른 먹거리는 무엇인가’라는 관점에서 요리의 사회문화사를 펼친다. 550쪽짜리로, 충분히 배부를 책이다.  

위에 소개된 책들은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구조와 분야로 들어가면 얼마든지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저작들을 만날 수 있다. 당신이 음식에 관심을 가졌고 이 글을 읽었다면, 앞으로 더 맛있고 새로운 밥상을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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