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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 빅토리아와 ‘베이비 P’의 죽음

여덟 살 아이가 학대로 사망한 지 7년 만에 17개월 된 아이 역시 같은 이유로 숨졌다. 두 아이의 죽음은 같은 지역에서 발생했다. 아동보호 시스템이 완전히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webmaster@sisain.co.kr 2017년 12월 06일 수요일 제5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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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여덟 살이던 빅토리아 클림비는 오랜 기간 학대를 당한 끝에 죽었다. 소녀는 아프리카 대륙 아이보리코스트(코트디부아르의 영어 이름)에서 일곱 형제 중 다섯째로 태어났고, 고모할머니에게 양녀로 맡겨졌다. 고모할머니는 소녀를 유럽으로 데리고 가 교육하고 잘 돌봐준다고 약속했다. 진짜 목적은 아동수당이었다. 죽은 소녀 몸에는 상처 128개가 남아 있었다.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 있었고, 적어도 24시간 이상 묶여 있던 흔적이 남았다. 고모할머니와 그녀의 동거남은 아이를 자전거 체인과 망치와 전깃줄로 때렸다. 소녀는 영양실조 상태였다.

관련 기관들이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아이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당시 영국 노동당 정부는 사건을 대대적으로 조사했다. 아이의 죽음에 관련된 개인 및 기관은 물론이고 아동보호 시스템 전반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1년이 넘는 기간 이뤄진 조사에 들어간 비용만 400만 파운드가량이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교훈 삼아 영국의 아동보호 시스템은 전면적인 개선이 이뤄진 것처럼 보였다. 그리 오래지 않아 또 다른 아이가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Mail Online 갈무리
2000년, 여덟 살이던 빅토리아 클림비는 고모할머니에게 학대를 당해 숨졌다.
죽은 아이는 한동안 ‘베이비 P’라고만 알려졌다. P가 피 묻은 아기용 침대에서 파랗게 질린 채로 발견된 때는 2007년이었다. 빅토리아가 숨진 바로 그 런던 북부 해링게이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름은 피터 코널리, 겨우 17개월 된 남자아이였다. 피터의 생모 트레이시 코널리와 동거남 스티븐 바커, 바커의 형인 제이슨 오언이 살인 혐의로 체포되었다. 당시 오언은 코널리 모자와 바커가 살던 집에 열다섯 살짜리 소녀를 데려와 함께 살았다. 이들은 피터를 마치 샌드백처럼 취급했다. 때로는 개에게 피터를 물라고 시키기도 했다.

바커가 코널리 모자와 같이 살기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가족의 주치의(General Practitioner·GP, 영국 국가의료보험 제도 아래 환자들은 지역의 GP에게 등록한 후 1차 진료를 받도록 되어 있다)는 열 달이 채 되지 않은 피터의 얼굴과 가슴에서 멍 자국을 발견했다. 생모 코널리는 체포되었고 피터는 친지에게 임시로 맡겨졌으나, 한 달 만에 생모에게 돌아갔다.

피터는 지역의 아동보호 시스템에 ‘요보호 아동’으로 등록됐으나 이후에도 멍과 긁힌 상처와 타박상 때문에 여러 차례 병원을 드나들었다. 피터가 숨지기 전까지 8개월 동안 60번이 넘게 아동보호나 의료 관계자, 경찰에게 보여졌지만 아이를 엄마와 동거인들로부터 격리하는 식의 적극적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사회복지 공무원이 피터를 격리하기 위한 절차에 대한 법적 자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필요한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Mirror 갈무리
위 왼쪽부터 피터 코널리, 피터의 생모 트레이시 코널리와 동거남 스티븐 바커의 모습.
피터가 죽기 이틀 전 아이를 검진한 소아과 전문의는 유모차에 누워 있는 피터의 척추와 늑골이 부러져 있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의사는 아이가 ‘까다롭기 때문에’ 자세한 검진을 하지 않았다고 진료기록부에 적었다. 그리고 사흘 후 피터는 사망했다. 아이는 죽을 당시 기저귀 말고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멍든 자국을 가리기 위해 몸에는 여기저기 초콜릿이 발려 있었다. 50군데가 넘는 상처가 있었고 척추 및 여덟 대의 늑골이 부러져 있었다. 손톱이 몇 개 빠져 있었고, 손가락 끝도 뭉개져 있었다. 검시 결과, 자기 치아를 삼키는 바람에 호흡이 멎은 것으로 밝혀졌다. 얼굴을 세게 맞아 이가 빠진 것이다.

비난 면하는 데 급급한 아동보호 종사자들

코널리와 바커와 오언을 모살죄(고의에 의한 살인)로 처벌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했으므로 이들에게는 ‘아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죄’가 인정되었다. 피터의 죽음과 관련한 재판의 심리가 끝난 직후 바커와 코널리는 이번에는 두 살짜리 여자아이에 대한 성폭행 혐의로 재판을 받기 시작했고 바커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피터의 죽음에 대한 사회적 반응은 엄청났다. 사실 피터가 죽은 2007년도에 영국에서 학대 등으로 사망한 아이 수는 50명이 넘었다. 유난히 이 어린아이의 죽음에 대중은 분노했다. 죽음을 둘러싼 첨예한 정치적 공방 때문이기도 했다.

피터의 비극적 죽음은 과거 빅토리아 사례가 그대로 반복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피터의 죽음은 빅토리아의 죽음 이후 노동당 정부가 야심차게 시행했던 아동보호 프로그램이 완전히 실패작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었다. 더구나 두 아이의 죽음은 같은 지역에서 발생했다. 당시 야당이던 보수당의 대표 데이비드 캐머런은 아이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는 관례를 깨고 피터의 죽음을 거론하며 연일 노동당의 정책 실패를 공격했다. 대중 일간지 <선(The Sun)>도 매일 총력을 다해 해링게이 지역의 아동보호 담당자들을 비난했고 이들을 해고하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facebook
피터의 묘지에는 그를 추모하는 꽃과 장난감 등이 놓여 있다.
한 아이의 죽음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채 무책임하게 다른 아이까지 숨지게 한 해링게이의 아동보호 담당자들에게 분노가 집중됐다. 이들은 본인 및 가족에 대한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대중의 맹렬한 분노에 뭔가 즉각적 조치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될 처지로 몰리자 담당 장관은 해링게이 지역 아동보호 책임자를 해고하겠다고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전격 발표해버렸다. 정해진 해고 절차를 무시한 조치였다.

이 해고는 2년6개월 뒤 항소법원에서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당시 아동보호 담당자들, 특히 해당 책임자가 부당하게 희생양이 되었다고 밝혔다. 의사나 경찰의 경우 노동당 정책과 직접 관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권과 언론의 공격을 피하고 분노한 대중의 즉각적인 표적이 되지 않았다. 아동복지 종사자들은 피터가 죽은 뒤 10년이 흐른 지금 업무상 최우선 목표가 유사시 비난을 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임을 면하기 위한 서류 작업에 몰두하고 소극적으로 행동하며 법적 절차에 과도하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코널리는 ‘공중과 특히 어린이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기간’ 구금될 것을 선고받았으나 최소 형기를 채우고 가석방됐다가, 본인의 선정적인 사진을 팔아 돈을 벌려고 했다는 혐의로 재수감되었다. 그녀는 이번 크리스마스 즈음 가석방될 수도 있다. 오언 역시 부정기형을 선고받았다가 항소심에서 형기가 6년으로 정해졌다. 2세 여자아이에 대한 성폭행으로 무기형을 선고받은 바커는 최근 가석방이 거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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