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의 전성기를 본 팬들은 그 시원시원한 투구 폼과 156㎞ 강속구를 기억한다. 하지만 요즘 인터넷에서 메이저리그 124승의 이 대투수는 ‘투머치 토커(too much talker)’라는 별명으로 더 자주 등장한다. 한 번 열면 멈출 수 없는 입담을 자랑하는 박찬호는 열성팬마저 질리게 만든 일화를 여럿 남겼다. 김인식 감독, 이대호 선수 등 야구계 선후배들이 박찬호 옆에서 넋이 나가 있는 장면도 유명하다. 한동안 야구팬들 사이에서만 회자되던 이 별명은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지더니 이제는 대표적인 인터넷 밈(문화적 유전자)이 되었다.

ⓒ연합뉴스

바로 옆 사람만 질리게 만드는 박찬호는 위험하지는 않다. 진짜 해로운 건 듣는 국민들을 질리게 만드는 광역 투머치 토커다. 이 분야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사진)를 따라갈 사람은 없다. 해양수산부의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골 수습 은폐 의혹이 불거진 11월23일, 홍 대표는 어김없이 ‘투머치’했다. “세월호 의혹 7시간을 확대 재생산해서 집권했는데 유골 은폐 5일이면 그 얼마나 중차대한 범죄입니까? 그들 주장대로라면 정권을 내어 놓아야 할 범죄지요. 세상 참 불공평합니다.” 이 정도 적반하장으로도 제1야당 대표라니 세상 참 불공평하다. 정작 세월호 3주기인 올해 4월16일에는 홍 대표 본인이 “세월호 사건은 정치권에서 얼마나 많이 우려먹었습니까. 정치에 이용하는 그런 것은 안 했으면 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투머치 토커는 보통 자기 말로 반박당한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의료진이 북한군 귀순 병사의 기생충 등 건강정보를 무분별하게 공개했다며 “자유와 행복을 갈망하던 인격체가 어떻게 테러를 당했는지(11월17일)”, “내장에 가득 찬 기생충을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 환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의료법 위반 아닌지(11월22일)” 등의 메시지를 연이어 냈다. 대중의 관심이 쏠린 환자라도 사안과 무관한 건강정보가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은 논의할 만했다. 하지만 이국종 교수를 비롯한 의료진에게 책임을 묻는 메시지 전략은 ‘투머치’했다. 인터넷은 ‘이국종 응원’과 ‘김종대 성토’로 온통 들끓었다. 결국 의원뿐만 아니라 당 대표까지 사과해야 했다. 투머치 토커이면서 제 발등을 찍지 않는 정치인은 정말이지 보기 드물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