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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없는 믿음’이 부른 반성 없는 살인

일제시대 대표적 사이비 종교인 ‘백백교’의 교주 전용해는 사람 목숨을 파리보다 더 가볍게 여겼다. 자신의 심복인 ‘벽력사’들을 통해 반항하는 신도들을 모조리 잡아 죽였다.

김형민 (PD) webmaster@sisain.co.kr 2017년 11월 29일 수요일 제5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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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2월16일. 그해 음력설이 2월10일이었으니 설 분위기가 채 가시지 않을 무렵이었지. 오늘날 서울 왕십리에 있던 한 집에서 소란이 일어났어. 건장한 한 청년이 영화처럼 1대 다수의 육박전을 벌인 거야. 여러 명이 청년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청년의 기세에 눌리고 있었어. 청년이 휘두르는 몽둥이에 머리가 깨져나가고 나뒹구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어떤 풍채 좋은 중년 남성은 다른 사람에게 둘러 업힌 채 문 밖을 빠져나갔어.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자 그 뒤를 쫓아 몽둥이를 휘두르던 청년은 문득 발걸음을 돌린다. “주재소(파출소)로 가자. 이놈들이 떼로 몰려올지 모른다.”

주재소에서 청년은 매우 황당한 사이비 종교의 존재와 교주의 만행을 폭로했어. ‘백백교(白白敎)’라는 이름의 종교였고 교주는 전용해라는 사람이었는데 머지않아 세상의 종말이 오고 백백교를 믿는 이들은 구원받는다는 미명 아래 사람들을 홀려 전 재산을 가로채고 부녀자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아왔다는 거야.

청년은 흥분해서 말했지. “나는 유곤룡이라 합니다. 해주에서 가장 큰 한약방인 구명당(求命堂) 주인이오. 그런데 조부님 때부터 우리 재산이 슬금슬금 없어지더니 급기야 우리 아버지는 여동생까지 데리고 이 백백교 소굴로 들어가버렸소. 여동생은 지금 교주의 애첩이 됐소. 내가 번 돈도 모두 바치겠다고 거짓말을 해서 교주님을 뵙자고 집으로 유인했던 겁니다.”

교주 전용해는 전 재산 10만원을 바치라고 요구했고 유곤룡이 미적대는 모습을 보이자 화를 벌컥 냈다고 해. 이때다 하고 유곤룡은 본색을 드러내 전용해 일당을 때려잡기 시작했던 거지. 경찰들이 출동해 백백교 본부를 습격해 교인들을 연행해왔지만 교주 전용해는 온데간데없었어. 그런데 잡혀온 이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일본 경찰은 오금이 저릴 만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일본 경찰은 아연 긴장해. ‘백백교’라면 일본 경찰에게 낯선 이름이 아니었거든. “이봐 모리야 순사부장! 1930년 백백교 사건 기억나지?”

백백교의 창시자는 전용해의 아버지 전정운이었어. 동학 혁명군의 지도자 전봉준의 먼 친척이었던 그는 역시 세상이 곧 멸망하고 백백교인만 구원받는다고 외치며 사람들을 끌어들였고 첩이 60명이나 되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1919년 죽었는데, 그와 그의 부하들이 여자들 몇 명을 생매장한 사건이 뒤늦게 발각됐어. 백백교 검거령을 내려 백백교를 소탕했다고 생각했던 일본 경찰은 아직도 그 교주 이하 조직이 시퍼렇게 살아서 경성 한복판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는 사실에 경악해.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던 고등계 형사들이 대거 투입됐고 그들의 무자비한 ‘심문’ 앞에서 백백교 신자들은 자신들의 엽기적 행각과 목격담을 털어놓게 돼. 대담하게 교주를 유인하고 그 부하들까지 두들겨 패는 용력을 발휘했던 유곤룡이지만 백백교의 내막을 상세히 알았더라면 절대로 세상에 폭로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거야.

교주 전용해는 사람 목숨을 파리보다도 더 가볍게 여기는 악마였어. 이를테면 예배 도중 누군가를 지목하면 그 사람은 쓰러져 죽었어. “기도할 때 눈 뜨면 죽는다”라고 협박한 뒤 기도할 때 자신의 심복들을 시켜 목을 졸라 죽인 뒤 시신을 앉혀놓았던 거야.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거나 재산을 다 바치지 않거나 동요할 움직임을 보이는 신도들은 모조리 죽였어. 한 신도가 수상한 거조를 보여 조사했더니 백백교 고발장이 나온 일이 있었지. 전용해는 그의 12촌까지 다 죽이라 명령했고 그의 살인기계들인 ‘벽력사’들은 그 업무를 수행했어. 심지어 여신도들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전용해 자신의 핏줄들도 다 죽였을 정도야. 후일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벽력사’들의 범죄는 가히 세계사적이야. 170명을 죽인 김서진, 167명을 죽인 이경득, 127명을 죽인 문봉조.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사이비 종교 백백교의 진상을 보도한 <조선일보> 호외.

문봉조라는 이의 말을 들어보자. “선생의 명령이니까, 신의 아들의 명령이니까 죄가 안 될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 아들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좀 더 생각해야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을 생각하면 원통하고 부끄럽습니다.” 폭로자 유곤룡의 아버지, 즉 전 재산과 딸까지 전용해에게 바친 유인호의 말은 더 우습다. “교주를 믿으면 잘 먹고 잘살며 불로장생 부귀한다기에….” 백백교가 아니어도 잘 먹고 잘살 수 있었던 사람인데 말이야. 

‘믿음’의 불길 아래 상식과 합리는 증발

재판정에서까지 백백교의 주문 “백백백의의의적적적”을 읊으며 신앙을 고백하는 치들도 있었고 그때까지도 교주에 대해 존대를 잃지 않는 이들도 많았으나 그들 또한 자신이 왜 그렇게까지 교주에 절대적으로 순종했는지 스스로 궁금해했다고 해. 아빠는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결국 ‘회의(懷疑) 없는 믿음’이었다고 봐. 전용해는 말세론과 눈앞에서 펼쳐지는 죽음의 공포를 통해 그들로 하여금 회의할 수 없게 했고, 의심을 품지 못한 이들은 ‘믿음’의 불길 앞에서 상식과 합리는 물론 인간성마저도 녹여버리고 말았던 거야.

얼마인지도 모를 수의 생명을 빨아들인 악마 전용해는 자살한 채 발견됐어. 인간의 두상으로 범죄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는 골상학의 영향 때문일까, 일제는 이 희대의 살인마 머리를 잘라 포르말린 용액에 담가두었고, 해방 후 우리나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로 인계됐다가 21세기에 들어서야 화장(火葬)을 치러 그 잔인함의 화신은 종적을 감추게 돼. 우스운 것은 위에서 말한 골상학 또한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인’ 학문이라 여겨 숭상했으나 사실은 근거가 없는 사이비 과학이었다는 거야. “이 살인마의 머리를 보관하여 연구하자”라며 전용해의 머리를 표본으로 만들었던 일본인들 역시 잘못된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던 거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이 ‘믿음’이라는 놈일지도 몰라. 1937년 식민지 조선 전체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유곤룡의 폭로는 ‘믿음’이 얼마나 끔찍한 괴물이 될 수 있는지를 처절하게 입증했어.

ⓒ연합뉴스
사이비 종교를 고발하다 광신도의 칼에 찔려 사망한 고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
몇 년 전 아빠는 누군가에게 심하게 구타당한 듯 피멍이 든 채 거리를 배회하며 구걸하는 할머니를 취재한 적이 있어. 도대체 누구의 조종이며 할머니는 왜 그러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뒤를 쫓다 보니 할머니가 어느 사이비 종교에 남은 단 한 명뿐인 신도임을 알게 됐지. 아빠는 몰래 카메라를 들고 할머니의 ‘인도’를 받아 ‘교주님’께 나아갔단다. 중국에서 도를 터득했다는 교주와 할머니는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며 예배를 올리더구나. 할머니는 교주를 위해 구걸을 하며 돈을 가져왔고 피멍이 들게 맞으면서도 그를 숭배하고 있었던 거지.

아빠는 한국의 사이비 종교에 대한 연구서를 읽으면서 경악했단다. 이 ‘중국산’ 사이비 종교는 당시에는 신도가 단 한 명 남았지만 왕년에는 꽤 큰 교세를 지니고 있었고 예배나 신도 착취 방식이 아빠가 본 모습이랑 똑같았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잘못된 믿음의 희생양이 됐을까. 아울러 그 책의 저자였던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 소장은 1994년 어느 광신도의 칼에 목숨을 잃었어. 범인은 탁명환 소장이 자신의 교회 목사를 음해했다고 주장했지. 아마 그는 “우리 목사님에게 못되게 구는 놈은 죽어도 돼”라는 믿음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거야. 칼을 휘두르면서 “할렐루야”를 외쳤는지도 모르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회의 없는 믿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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