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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퇴장하니 아베가 선봉에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한 가운데 일본의 주도로 미국을 뺀 11개국이 참여하는 ‘포괄적·점진적 TPP’가 타결되었다. 향후 더 많은 나라가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webmaster@sisain.co.kr 2017년 11월 29일 수요일 제5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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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미국의 탈퇴로 좌초 위기에 놓였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부활할 기세다. 미국·일본·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등 태평양 연안의 12개국이 참여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 TPP는, 2015년 10월 협상 타결 이후 각 회원국 내부에서 비준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1월, TPP 핵심 국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야말로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주범’이라며 탈퇴를 선언해버렸다. 이후 TPP는 존폐 기로에 놓였다.

최근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미국을 제외한 11개국이 이미 타결한 TPP의 핵심 조항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유무역 블록을 결성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는 일본이 주도했다. 11개국 가운데 6개국에서 국내 비준이 성사되면 협정을 발효할 계획이다. 이르면 내년 봄쯤 출범이 예상된다. 핵심 참가국인 캐나다의 요청에 따라 협정 이름을 CPTPP로 바꿨다. TPP에 ‘포괄적·점진적(Comprehensive and Progressive)’이라는 용어를 추가했다. 기존 TPP에서 각 회원국의 국내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일부 급진적 조항을 수정하거나 폐지할 방침이다. 실제로 베트남은 TPP의 지식재산권 보호 조건이 개발도상국에 지나치게 불리하다며 관련 조항의 개선을 요구했고, 캐나다 역시 국내 문화산업 및 자동차 시장에 대한 보호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PA
11월9일 베트남 다낭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한 11개국 각료들이 회의하는 모습.
CPTPP는 미국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환태평양에서 최대 경제 강국인 일본을 비롯해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싱가포르·말레이시아·베트남·브루나이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물론 캐나다·멕시코·페루·칠레 등 남북미 대륙까지 11개국을 망라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들 11개국의 교역량은 3563억 달러로 전 세계 교역량의 6분의 1을 차지했다. 특히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과 진행 중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여의치 않더라도 CPTPP라는 새로운 대안으로 거대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시장을 뚫을 수 있는 경제적 활로를 찾게 됐다.

일본 ‘TPP 부활로 중국 견제하겠다’


CPTPP 협상의 막후 주역인 일본의 고노 다로 외무장관은 11월11일 성명을 통해 “이번 새 협정은 아시아 전역에 보다 광범위한 자유무역지대를 구축하는 데 토대가 될 것이다”라고 자신감을 비쳤다. 고노 외무장관의 발언 하루 전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손을 묶고, 미국의 주권을 위협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을 앞으로는 체결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트럼프는 다자간 무역협정 대신 미국과 다른 상대국이 1대1로 무역관계를 형성하는 ‘양자 간 협정’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나라보다는 한 국가와 협상하는 쪽이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관철하는 데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EPA
11월8일 APEC 회의에 참석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왼쪽)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장관.
미국의 탈퇴로 좌초가 확실시되던 TPP가 이처럼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데는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의 막후 역할이 주효했다. 트럼프의 탈퇴 선언 뒤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의 참여 없이도 강행할 뜻을 보였지만 일본 아베 신조 총리는 미국의 지도력과 시장이 배제된 TPP는 “아무 의미가 없다”라며 일본의 탈퇴를 시사했다. 하지만 TPP 탈퇴에 따른 정치경제적 손익계산을 따져본 결과 유지하는 쪽이 더 이로운 것으로 판단되자, 일본은 TPP 부활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태도를 급선회했다. 일본은 먼저 해외 수요 창출 차원에서 오스트레일리아나 캐나다 등 선진국은 물론 베트남 같은 개도국 시장에도 진출해야 했다. 더욱이 중국이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 10개국으로 구성된 지역협력기구)과 함께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다자간 자유무역 블록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 협정(RCEP)’도 일본의 신경을 건드렸다. 일본 처지에서는 TPP를 어떻게든 부활시켜 중국 중심의 RCEP를 견제할 필요성을 느낀 셈이다.

RCEP는 아세안 10개국과 한국·중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인도·뉴질랜드 등   6개국이 2012년 캄보디아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담’을 계기로 공식 논의를 시작한 뒤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이다. 당초 협상 참가국들은 올 연말까지 모든 쟁점을 해소하고 RCEP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각국 내부의 복잡한 경제 사정과 함께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가 TPP 부활에 더 역점을 두면서 다소 김이 빠진 상태다. TPP에서 빠진 중국은 RCEP의 조속한 출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브랜다이스 대학의 피터 페트리 교수는 <파이낸셜 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중국은 이 협정을 통해 무역 부문에서 지도적 위치를 과시하고 싶어 한다”라고 진단했다. 페트리 교수의 전망에 따르면 중국 경제는 RCEP가 출범하면 오는 2030년까지 1.4% 추가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통상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의 TPP 탈퇴로 발생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무역 지도력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으로 본다. 중국은 지역 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 및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해상 실크로드’를 병행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역동적으로 추진 중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노리는 중국의 경제적 힘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처럼 TPP 부활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심리도 크다. 그런 점에서 TPP가 CPTPP로 새롭게 단장한 것은 “지역 내외로 뻗어가는 중국의 영향력을 막아보려는 일본 등 일부 국가의 욕망을 반영한 결과다”라고 CNN은 평가했다. 특히 일본은 미국의 복귀를 바라면서 그때까지는 지역 내 최대 경제국으로 지도국 위치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통상 전문가들은 CPTPP가 최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다양한 자유무역협정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등장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실제로 일본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들과 각기 별도의 자유무역협정을 추진 중이다. TPP에서 탈퇴한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자유무역협정과 정반대의 길에 나선 상태다. 현재 미국은 한국과 이미 체결해 2012년부터 발효 중인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물론 캐나다·멕시코 등과 맺은 북미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정을 압박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이런 행태를 가리켜 “갈수록 통합되고 있는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 수류탄을 던지겠다고 위협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세계적 회사들을 위한 로비 단체인 전국대외무역협회(NFTC) 루푸스 엑사 회장은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향후 어느 시점에 가서 미국은 TPP 탈퇴 결정이 전략적 실수이며, 미국 노동자들의 이익에도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대다수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을 제외한 11개국으로 출범한 CPTPP가 내년 초 참가국 비준을 거쳐 정식 발효되면 더 많은 나라가 참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가입 의사를 보인 한국·인도네시아·필리핀·타이완·타이까지 참여하면, CPTPP 회원국은 16개국으로 늘어난다.

반(反)자유무역주의자인 트럼프는, 미국이 TPP에서 탈퇴하면 이 협정의 폐기가 불가피하다고 계산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었다면, 미국은 개별 국가들을 1대1로 상대하면서 자국에 유리한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트럼프 예상과 정반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 없는 TPP’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물론 미주까지 아우르는 초대형 자유무역지대로 확대될 태세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턱대고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의 TPP 탈퇴는 결국 자충수로 귀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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