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에서 나와 바로 마주한 풍경은 비교적 차분해 보였다. 훼손된 건물도 눈에 띄지 않았다. 진앙인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망천리에서 포항역이 있는 흥해읍 이인리는 다소 거리가 있어 피해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불안감은 포항 시내 전체에 감돌았다. 지하철이 지나가는 듯한 약한 강도의 여진에도 시민들은 몸을 움츠렸다. 11월15일부터 11월16일까지 여진은 49차례 발생했다.
진앙에 가까워질수록 외벽이 무너지거나 벽에 금이 간 건물이 많아졌다. 낡은 단독주택이 모여 있는 흥해읍 남성2리에는 두 집에 한 집꼴로 담벼락이 무너져 내렸다. 해병대 병력 200여 명이 투입돼 자루에 무너진 벽돌, 기왓장 등을 주워 담고 슬레이트 판을 치웠다. 지붕에 올린 기와가 심하게 훼손된 한 주민은 현장을 지휘하던 지휘관에게 “집이 아직 엉망인데 군인들이 치우다 말고 다른 곳으로 갔다”라며 울상을 지었다.
대피소에 있어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김씨의 둘째 여동생은 구호 물품을 내려놓을 때 울리는 쿵쿵 소리에도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지진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 두려움을 모른다. 남편이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는데 마땅한 곳이 떠오르지 않아 대피소에 있다. 우리 아기는 여기 계단에 걸려 넘어져서 지금 입안이 다 찢어졌다.” 울다 지친 아기는 큰이모 품에 안겨 잠들었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마산리 대성아파트는 5개 동 가운데 한 동이 이번 지진으로 4°가량 기울었다. 지진의 참상을 보여주는 상징물처럼 되어버린 이 아파트에는 주민보다 취재진이 더 많이 몰렸다. 260가구가 대피한 뒤, 짐을 빼내기 위해 다시 온 주민 몇몇이 아파트 현관을 오갔다. 이곳에서 부모와 20여 년을 살았다는 문지안씨(가명)도 1t 트럭으로 짐을 옮기고 있었다. 컴퓨터, 이불, 옷가지, 전기밥솥, 온수매트 등 세간 살림이 트럭 짐칸에 실렸다. 문씨는 “집이 무너질까 봐 걱정돼 트럭을 빌려와서 일단 짐만 빼놓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문씨의 어머니가 짐을 더 가져오기 위해 집에 들어가려는 순간 여진으로 땅이 흔들렸다. 문씨는 “다시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라며 어머니를 말렸다. 짐 빼기를 포기한 듯, 문씨와 아버지가 세간이 실린 트럭 짐칸 위로 밧줄을 감았다. 곧바로 트럭은 대성아파트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