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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는 틀렸다

워싱턴의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서 ‘디커플링’ 논의가 한창이다. 한국과 미국의 안보 연계를 분리·차단하자는 주장이다. 주한미군 철수 옵션까지 나온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webmaster@sisain.co.kr 2017년 12월 01일 금요일 제5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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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북한이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급의 화성 14호 시험발사에 성공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쟁 가능성을,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예방전쟁을 옵션 중 하나로 언급했다. 이후 선제타격은 미국 언론의 고정 메뉴로 자리 잡았고 위기설은 8월 이후 한층 심화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응은 즉각적이었다. 8·15 경축사에서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라고 천명했다.

한반도 ‘디커플링(decoupling·분리)’ 논의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대화나 협상,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북핵 문제 해결이 어렵고 군사행동 또한 부수적 피해가 클 뿐 아니라 한국이 필사적으로 반대하니, 아예 한국과 미국의 안보 연계를 분리·차단하자는 게 디커플링 전략의 골자다. 요컨대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미국 안보를 지켜내는 데 초점을 맞춘 셈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시각이 있다. 하나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주장이다. 그가 렉스 틸러슨 장관에게 했다는 디커플링 조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한의 ICBM 핵 위협이 가시화되고 있으므로, 중국과 빅딜을 통해 북한의 붕괴를 가속화하는 대신 ‘북한이라는 완충지대’의 상실을 우려하는 중국에게는 주한미군 철수를 약속해주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최근 워싱턴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 많이 오르내리는 내용이다. 단기간에 북한의 비핵화를 이뤄내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아예 평양이 미국을 겨냥한 ICBM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폐기하기만 해도 주한미군 철수를 심각하게 고려하자는 주장이다. 워싱턴 주변의 이러한 주장은 크게 우려할 만하다. 우리에게 미국은 여전히 혈맹이지만, 미국에게 우리는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익에 걸림돌이 된다면 한국의 안보는 언제든지 부차적인 이슈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7월28일 고각으로 발사된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 14호의 모습.


키신저 전 장관 주장의 또 다른 한계는 북한을 과소평가하고 중국을 과대평가하는 오류다. 중국이 대북 원유 공급을 중단하고 국경무역을 차단한다고 김정은 체제가 당장 무너질까. 설령 김정은 체제가 무너진다고 해서 북한이라는 국가 자체가 사라질까. 그 경우에도 군부에 의해, 혹은 당·군부 집단지도체제로, 혹은 민중 봉기에 의해 수립되는 새로운 정부가 북한에 들어설 것이고, 그들이 쉽게 주권을 포기할 리는 만무하다.

북한을 과소평가하고 중국을 과대평가하는 오류

더욱이 중국은 북한을 붕괴시킬 지렛대가 없다. 원유 공급과 국경무역 중단은 중국 동북 3성 경제에 엄청난 부작용을 불러올 공산이 크다. 북한 난민이 대규모로 중국에 유입되는 상황 역시 베이징 시각에서는 심각한 안보 문제다. 그뿐 아니다. 베이징이 어떤 식으로든 내정에 간섭해 북한을 붕괴시킨다고 가정해보자. 20개 넘는 주변국들의 반응은 어떨까? 주변국과 친목을 도모하고 주변국에 정성을 다하며 혜택을 베푸는 동시에 관용의 자세를 보이겠다는 시진핑 주석의 친성혜용(親誠惠容) 정책은 사문화되고, 주변국들의 반중 연합 가능성은 거세질 것이다. 베이징이 과연 이런 손해 보는 장사를 선택할 수 있을까?

북한의 ICBM과 주한미군 철수를 맞바꾸겠다는 또 다른 아이디어는 위험할 뿐 아니라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한다. 북한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으니 적당히 봉합하고 한국을 떠나자는 무사안일한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을 미국의 다른 동맹국과 우방국이 어떻게 볼까? 결국 이는 패권국 미국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도덕적 해이의 극치로 남을 것이다.

디커플링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다만 과거의 역사를 돌아볼 때 그 개연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도 어렵다는 점이 최근 워싱턴 일각의 논의를 지켜보는 우리에게는 불길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자강과 균세의 지혜로운 외교를 이끄는 지도자, 명민하게 행동하는 깨어 있는 국민이 절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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