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과학
오드라 J. 울프 지음, 김명진·이종민 옮김, 궁리 펴냄

“한반도에 냉전, 그리고 냉전 과학기술은 현재진행형 사건이다.”

한·미 정상회담의 최대 이슈는 단연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였다. 북한이 핵을 갖고 있으며, 대륙간 탄도미사일 기술을 곧 완성할지 모른다는 사실은 한반도를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냉전 지역으로 만든다.
미국이 핵 개발에 성공하고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린 이래로, ‘나는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저 자식이 날 때릴지 모르니 압도적인 힘을 가져야 해’라고 냉전의 두 거인은 똑같이 생각했다. 그 과제를 풀어내는 것은 과학기술의 몫일 수밖에 없었다.
과학사가 오드라 울프는 냉전기에 국가권력의 이해와 과학이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었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과학이 정치로부터 독립적이라는 통념이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낸다.

주식회사는 왜 불평등을 낳았나
미즈노 가즈오 지음, 이용택 옮김, 더난출판사 펴냄

“신자유주의 이후 국가는 국민에게 이혼 서류를 내밀고 자본과 재혼하기를 선택했다.”

지금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재벌 논쟁’을 이해하려면 주식회사라는 ‘조직’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 피라미드식 그룹 구조에 따른 재벌 일가의 ‘소유 없는 경영’은 물론이고 이에 대한 개혁 논의도 주식회사라는 조직을 기반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던 주가와 임금이 어느새 상충관계로 바뀐 현상 역시 주식회사를 매개로 벌어지는 사태다.
일본의 진보적 경제학자인 저자는 주식회사의 기원과 조직 원리, 역사, 한계에 대해 쉽게 설명한다. 특히 주식회사의 운명을 각 시대의 시장 상황과 연결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저자의 결론은 “시장이 ‘유한’해지면서 성장이 멈춘” 20세기 말 이후의 상황에서는, 이전의 방식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주식회사가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장 도시적인 삶
황두진 지음, 반비 펴냄

“‘건물이 말을 걸어온다’라는 표현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사람을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책을 읽고 나면 ‘현장’에 직접 가보고 싶어진다. 실은, 책을 읽기 전부터 그랬다. 목록을 살핀 후 ‘부록5:무지개떡 건축 답사 코스’ 페이지로 직행했다. 성요셉아파트-관문빌딩-서소문아파트-충정아파트-미동아파트(경성대화숙 터)로 이어지는 길은 〈시사IN〉 사무실 주변이다. 산책 코스를 새로 조정했다.
이 책은 도시를 수많은 ‘빗장 공동체’로 쪼개놓은 단지형 아파트가 아닌, 오래된 상가아파트를 주로 다룬다. 건축가인 저자가 발품을 팔아 답사를 다니고 이 잡듯이 자료를 뒤져 역사를 톺아봤다. 변변한 자료조차 남아 있지 않은 이 건물들의 이력서가 바로 한국 근현대사다. 이 책의 헌사는 그 이름 없는 건축가들에게 바쳐졌다.



루터의 두 얼굴
볼프강 비퍼만 지음, 최용찬 옮김, 평사리 펴냄

“루터는 농민전쟁에서 제후들 편에 섰고, 농민들을 마구 공격하라고 요구했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게시 500주년. 그는 종교개혁으로 근대의 문을 연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과연 그럴까? 이 책은 세간의 지배적 인식에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루터의 저작을 분석해 ‘루터가 교회를 교황에서 해방시켰지만 제후 등 국가권력에 귀속시켰다’고 주장한다. 독일 개신교의 국가숭배주의는 루터의 유산이라는 설명이다. 또 반유대주의를 선동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뿌리가 나치즘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에 필요한 것은 종교개혁 비판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개신교를 다시금 개혁하라는, 제2의 종교개혁이 요구되는 때라는 주장이다. 교회까지 자식에게 세습하는 한국의 개신교도 경청할 만한 이야기다.

김미루의 어드벤처
김미루 지음, 통나무 펴냄

“진정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둘러보고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영어권에 ‘여기서 팀북투까지’란 관용구가 있다. 아주 먼 거리를 뜻하는 말이다. 팀북투(Timbuktu)는 사하라 사막에 실제로 있는 도시다. 아스피린이나 다이너마이트처럼, 이 도시의 이름은 다른 모든 오지들을 대표하게 되었다. 이 책은 팀북투와 고비 사막의 몽골 여행기다.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저자는 도올 김용옥의 딸이다. 사막에 사는 사람과 동물, 그리고 사막을 찍었다. 때로는 저자가 직접 나체 모델로 등장한다. 옷을 벗은 저자는 마음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헤어진 남자친구의 흉을 보기도 하고, 현지 주민에게 납치당할까 봐 두려웠다는 말도 적었다. 거창한 통찰을 얻기는 어려우나 친구의 경험담처럼 솔직하고 생생하다. 책을 덮으면, 가본 적 없는 사막 도시들이 잔상으로 남는다.



블랙코미디
유병재 지음, 비채 펴냄

“대한민국의 청와대가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세요. 다 어디 갔나? 저 감옥에 다 갔다고.”

유병재는 유명한 방송인이다. 방송작가지만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 인기가 있다. 아마 돈도 많이 벌 것이다. 돈을 많이 버는 만큼 삶도 화려할 것이다. 그런데 그가 절묘하게 자신의 세대를 대표한다. 그의 글을 읽으면 88만원 세대의 ‘유쾌한 한숨’을 들을 수 있다.
그는 즐거움이라는 한 가지 감정에만 의존하지 않고 바닥에 우울함을 깔고 있는 블랙코미디를 선호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하는 ‘웃픈’ 코미디를 구사한다. ‘딸 같아서 성희롱하고 아들 같아서 갑질하는’ 대한민국에서 ‘내가 겁이 많아서 참는 거지 착해서 참는 게 아니야’라며 버티고 사는 동세대의 소심한 저항을 전하며 ‘나는 가끔 내 취향까지 허락 맡으려 하는 것 같다’고 자조한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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