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적인 여행 정보 그룹 ‘론리플래닛’이 2018년 최고의 여행지(국가)를 발표했는데, 대한민국이 칠레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갑작스러운 낭보에 SNS에 의견이 쏟아졌다. 지금 한국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중국인 여행자를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밖에 없다는 비아냥부터 한국인조차 국내 바가지요금에 질려 해외로 나가는 판에 대체 무엇이 매력적이냐는 한탄까지, 비판 일색이었다. 론리플래닛이 한국을 2위로 선정한 가장 큰 이유는 평창 동계올림픽이다. 새롭게 개통되는 고속철도(서울-강릉 간)를 타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즐겨보라는 게 론리플래닛의 권유다. 론리플래닛은 여행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여행지 순위를 발표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살인적인 숙박료 논란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나 보다.

ⓒ론리플래닛 홈페이지2018년 최고의 여행지(국가) 2위를 차지한 대한민국.

다른 나라를 살펴볼까. 론리플래닛이 꼽은 최고 여행지 국가 4위는 아프리카의 지부티다. 홍해 연안에 있는 이 작은 나라는 사실상 준전시 상태다. 1990년대에 내전이 있었고 지금도 반정부 무장 세력이 활동 중이다. 소말리아 같은 주변 국가보다는 훨씬 평화롭다는 평을 받지만, 문제는 내년에 총선이 열린다는 점이다. 선거 기간에 폭동 또는 테러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 외교부는 지부티에 여행 경보 2단계(여행 자제)를 발효 중이다.

최고 여행지(도시) 2위에 등재된 미국 디트로이트는 2009년 론리플래닛이 ‘세계 최악의 도시’ 1위로 선정한 곳이다. 낙후한 공업지대가 도시 관광지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 흥미롭지만, 9년 사이 최악이 최고가 된 비결에 대해 좀 더 그럴듯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2015년에는 몇몇 여행 정보 사이트가 ‘최고의 여름 가족여행지’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때도 이번처럼 온갖 언론이 받아썼는데, 그중에 상하이가 포함되어 있었다. 의아했다. 저 사람들 한여름의 상하이를 가보긴 한 걸까? 상하이는 일단 휴양지가 아니라 도시 여행지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여행을 해야 하는 곳이다. 게다가 상하이의 여름은 가혹할 정도로 고온다습하다. 새벽 3시 바깥 온도가 30℃ 안팎인 경우가 허다하다. 도시 크기는 경기도만 하고, 볼거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비영어권이라 의사소통도 어렵다. 여름 가족 여행지로 상하이를 선택하는 건 ‘자폭 행위’다. 여행 정보 사이트에서 상하이를 추천한 탓인지 그해 여름 내가 쓴 상하이 가이드북은 한 쇄를 더 찍었다. 한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당시 인터넷에는 여름에 상하이로 가족여행을 갔다가 고생했다는 이야기가 허다했다.

이해 불가하고 위험천만하기까지 한 여행지 순위

론리플래닛 같은 여행 정보 매체에는 하나의 불문율이 있다. 한번 순위에 오른 곳은 적어도 몇 년간 다시 추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순위는 ‘점점 알려지지 않은 곳’ 위주로 매겨진다. 해가 거듭될수록 리스트는 보편성을 잃어가고 희소한 곳, 생각지 못했던 곳들로 채워진다. 상하이야 땀으로 범벅된, 온 가족의 원망을 받는 여름휴가 정도로 끝날 일이지만, 총선을 앞둔 지부티는 아무리 생각해도 심했다.

모든 정보가 그렇지만 여행 정보는 신중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1년 내내 그 여행지에 대한 설렘을 품고 버텨온 어떤 사람을 절망스럽게 하거나, 아예 이 풍진 세상과 작별을 고하게 할 수도 있다. 언제까지 저 이해 불가하고 위험천만하기까지 한 여행지 순위 매기기 정보를 무차별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같은 여행 정보업 종사자로서 씁쓸하기만 하다.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