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암이란다, 이런 젠장…〉을 읽으면서 떠올린 찰리 채플린의 말이다. 자신의 암 투병기를 그린 이 만화는 분명 비극적인 결말을 전제하고 있다. 유머러스한 대사와 자유분방한 그림체 때문인지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 비극적인 결말을 까맣게 잊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 미리엄 엥겔버그는 암에 걸린 자신의 일상을 꾸미지 않고 가감 없이 그렸다. 고통을 억지로 과장하거나 희화하지도 않았고, 고통에 매몰되지도 않았다.

“이건 그동안 늘 하고 싶어 했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야.” 미리엄 엥겔버그는 불안한 순간과 마주할 때마다 절망에 빠지는 대신 자신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모색했다. 가까운 미래에 최악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먼저 현재의 자신을 달랬던 셈이다. 아무리 마음을 고쳐먹어도 기대하지 않았던 소식을 듣는 순간 쏟아지는 눈물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시시각각 뒤집어지는 내면을 비웃기라도 하듯 암은 태연하고 무심하게 진행됐다.

〈암이란다, 이런 젠장...〉 미리엄 엥겔버그 지음, 이종인 옮김, 고려원북스 펴냄

그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가발을 찾고, 암 환자 모임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암에 맞서기도 했다. 심지어 암에 관한 새로운 농담을 개발하거나, 방사선 치료로 상실한 성욕을 되찾기 위해 포르노 영화를 탐구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암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따위가 이 책의 주제는 아니다. 차라리 ‘미리엄 엥겔버그’ 그 자체가 주제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미리엄 엥겔버그는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암 교육 소책자나, 자신의 병을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다른 암 환자들을 만나도 아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다. 대신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거침없이 만화에 드러냈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의 위선을 빈정거리며, 또 때로는 나약한 자신을 연민하면서 말이다.

미리엄 엥겔버그는 만화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곧잘 소환했고, 그 인생을 영화에 비유했다. 자신을 영원히 지배할 것만 같던 고민도 일주일을 넘기는 법이 없었다. 인생은 크고 작은 고난의 연속이지만, 돌이켜보면 현재까지 영향을 끼칠 만한 사건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인생은 모든 사건이 결말을 위한 복선 구실을 하는 영화와는 다르다. 만일 인생이 영화라면 결말과 관계없는 사건은 굳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미리엄 엥겔버그에게 암은 자기 인생의 결말에 관여하는 최초의 사건이었다.

고통 속에서 웃는 아이러니한 인생

“이게 제발 영화가 아니길! 만약 영화라면 역경을 이기고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그런 영화이길.” 안타깝게도 만화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렇다고 ‘새드 엔딩’도 아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미리엄 엥겔버그는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모든 근심과 걱정이 시시하게 보였던 과거의 한때를 그리워한다.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암과 싸우고 있는 자신도 지구 위의 작은 점에 불과할 텐데, 그 작은 점보다 작은 암은 좀처럼 시시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커다란 장벽처럼 나타나 그의 인생을 가로막는다. 미리엄 엥겔버그의 이야기는 마치 중요한 볼일이 생긴 사람처럼 다음에 계속하겠다는 약속도 없이 가볍게 끝나고 만다. 나는 오랫동안 그 가벼운 결말을 떨치지 못했다. 지구 위의 작은 점처럼 시시한 미리엄 엥겔버그의 못다 한 이야기들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을 것만 같았다.

고통 속에서도 아이러니한 인생을 웃으며 얘기했던 그는 2006년 10월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애도를 표하며 고맙다는 말도 함께 전하고 싶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기자명 송아람 (만화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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