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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학생들’ 특성화고의 삶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2017년 11월 23일 목요일 제5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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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졸업생 취업자 페이지를 보여주시면서 말했습니다. ‘삼성에 갔다. 못생기지 않았냐? 뚱뚱하다. 이런 학생도 갔으니 너희도 갈 수 있다.’ 금융권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더니 ‘얼굴은 본다. 몸무게도 빼야 하고 웃는 얼굴에 예뻐야 한다. 키도 165㎝는 되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10월29일, 학생의 날을 맞아 특성화고등학교(특성화고) 학생 50여 명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특성화고등학생 2000명 권리선언’을 했다. 이날 참여한 학생 중 한 명의 발언이다. 이 밖에 학생들은 ‘고졸 출신’이 받는 임금 차별과 성차별, 질 낮은 현장학습 실태 등을 고발했다. 학생들은 차별과 무시를 받지 않을 권리, 노동인권 교육을 받을 권리, 취업 강요를 받지 않을 권리 등 10가지를 주장했다. 특성화고는 특정 분야의 인재와 전문 직업인 양성을 위해 특성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고등학교를 의미한다. 하지만 어떤 특성화고학생들은 학교에서 특성화 교육에 앞서 ‘차별’의 서러움을 먼저 배웠다.

특성화고 학생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단체를 꾸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현장인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직접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5월, 특성화고에 다니던 ‘구의역 김군’은 현장실습 나간 업체에 취업한 상태였다. 올해 1월에는 LG유플러스 고객센터 해지방어 부서(협력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특성화고 학생이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

ⓒ시사IN 신선영
‘특성화고 권리연합회’ 소속 학생 3인이 <시사IN> 회의실에서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교육부가 지난 3월 전국 593개 학교, 3만1404개 기업체를 대상으로 현장실습 실태를 점검한 결과, 표준협약 미체결 적발 건수(238건)가 가장 많았다. 또 근무시간 초과(95건), 부당한 대우(45건), 유해·위험 업무(43건), 임금 미지급(27건), 성희롱(17건) 순으로 현장실습을 나간 특성화고 학생들의 어려움이 조사됐다. 전국의 (직업계) 특성화고등학교는 2016년 기준 전국 472개다.

‘특성화고등학생 권리연합회’는 11월11일 창립대회를 열고 2만명 특성화고 학생들의 권리선언을 비롯해 청소년 노동보호법 제정 촉구 등의 활동을 이어가기로 했다.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에 속하지만 전문적인 직업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마이스터고 학생들도 함께였다. 10월29일 현재 회원은 820명이다. 이 학생들이 말하는 특성화고의 문제점은 현장실습에만 있지 않았다. 특성화고 재학생 3명을 만나 각자가 경험한 ‘나의 특성화고’에 대해 들었다. 입학의 계기와 학교 특성 모두 달랐지만, 셋 다 특성화고 학생을 바라보는 시선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나 학생이야, 직장인이야?


금융계열 특성화고에 다니는 김유선양(가명·18)은 한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한 언니를 통해 취업을 우선으로 하는 학교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상업 계열 학교를 찾다가 지금의 학교와 연이 닿았다. 중학교 교사들은 특성화고등학교에 대해 잘 몰랐다. 외국어고등학교 같은 특목고에 보내는 데만 관심을 가졌다. 학교를 찾는 건 개인 몫이었다.

입학한 뒤 실망이 컸다. 학교 홍보할 때 좋은 점만 들어서 그런지 입학하고 보니 안 좋은 면이 많이 보였다. 생각보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적었다. 전학이 불가능한데 난감했다. 학기 초 적응을 못해 자퇴를 생각할 정도였다. 김양은 “‘정신 차리고 공부하면 잘 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게 맞지 ‘다 증권사나 은행에 갈 수 있어’ 이렇게 말하는 건 문제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특성화고등학교 권리연합회 제공
10월29일 특성화고등학교 학생 50여 명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특성화고등학생 2000명 권리선언’을 했다.
김양의 경우 대외활동 경력만 30여 개에 이른다. 취업을 위해 여러 자격증과 수상 경력이 필요했다. 교사들은 김양에게 은행 취업을 권했다. “학교가 선호하는데 저는 원하지 않았다. 넣으라니까 넣긴 했지만 진심이 없는데 통과가 되겠나. 떨어지고 시간만 버렸다.” 학교는 매년 2월, 실습(취업) 중인 학생을 기준으로 졸업생 취업자 통계를 잡는다. 취업률을 지표로 각종 지원금이 결정되다 보니 질과 상관없이 취업률을 올리는 데 열중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돌아온 뒤 다른 곳에 재실습을 나가는 경우, 두 번 다 취업률 통계에 넣을 때도 있다고 김양은 말했다.

3학년 때 외부 강사가 화장법을 가르쳤다. 면접 대비용이다. 입술이 너무 빨간 색이면 곤란하고 생기가 있어 보일 정도의 ‘적당한’ 색감이 필요하다. 교사는 여학생들에게 눈을 성형해오라고 말했다. 통통한 친구들에게는 그만 먹으라고 했다. 피부가 까만 편인 김양은 너무 까무잡잡하니 집에 좀 있으라는 얘길 들었다.

김양은 지난 10월까지 석 달간의 현장실습을 마쳤다. 보통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2학기에 실습을 나간다. 10명 규모의 무역회사였는데 마케팅부에 배정되었다. 김양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없던 부서였다. 사전 교육 역시 없었다. 3학년 때 마케팅 과목 수업을 듣긴 했지만 관련 지식이 부족했다.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독학했다. 체계가 없어서 어려웠다. 정규직 전환을 제안받았지만 김양은 학교로 다시 돌아갔다. 집과 너무 멀기도 하고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도 실망스러웠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장실습 중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치마를 입고 지나가는데 ‘○○씨는 저러다 치마 터지겠어’라는 말을 듣거나, 회식 자리에서 술 따르라는 지시를 받는 식이다.

김양은 특성화고에 다니며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뭔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컸다. 정체성이 애매하다. 학생인 것 같은데 직장인 같기도 하다. 취업을 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대졸자든 고졸자든 배우는 건 똑같고 해야 하는 행동도 같은데 임금이 다르다. 누구는 ‘많이 받고 싶으면 대학을 갔어야지’ 하더라. 하지만 서로 다른 선택을 한 것뿐인데…. 학력을 감안해도 임금 격차가 너무 컸다. 아르바이트생도 아닌데 최저임금을 받는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고졸 임금을 100으로 따졌을 때 전문대 이상 졸업자들의 임금수준은 141이다).”

ⓒ연합뉴스
9월6일 서울 마포구청에서 열린 ‘2017 마포구 특성화고등학교 인재매칭데이’ 행사 모습.
특성화고 나와서 대학 가는 게 왜 이상해?


IT 계열 특성화고에 다니는 이호성군(가명·18)은 어릴 때부터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주최한 교육에 참가했다가 입학을 권하는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진학을 결심했다. 중학교 때 전교 2등을 하기도 했던 이군의 부모는 아들이 특목고에 가길 기대했지만 그는 컴퓨터 관련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었다. 이군은 학교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입학 경쟁률도 높은 편이다. 요즘 그는 대학 진학을 준비 중이다.

특성화고의 장점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군 역시 그게 좋았다. 다만 IT 계통은 하루가 다르게 관련 지식이 변하는데 수업이 그걸 따라가지 못할 때가 있다. 1~2학년 내내 1시간 정도만 눈 붙이고 학교에 가는 게 일상이었다. 전공과목도 욕심나고 내신도 챙겨야 했다. 외부 활동까지 신경쓰다 보면 수면 시간이 늘 부족했다. 대외 활동을 하면서 특성화고에 대한 편견을 경험했다. 대회에 출전해 IT 관련 기술을 발표해도 특성화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탐탁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었다.

이호성군은 “특성화고는 취업에 맹목적이고 일반고는 대학에 맹목적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 역시 현장실습 나간 친구들의 좋지 않은 사례를 지켜봐왔다. 하루 노동시간 7시간이 지켜지지 않는 건 다반사였다. IT 업체에 실습을 나간 친구에게 아무것도 안 알려주고 웹페이지 제작하는 일을 맡겼다. 실무 경험이 없는데 실수하면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스트레스로 몸이 망가져 병원에 가야 했다. 결국 사표를 내고 이직했다. 학교는 한동안 이직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친구가 힘들어하는 걸 보고 유난히 특이한 케이스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업체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학생들은 그만두기가 쉽지 않다. 후배에게 피해를 줄 뿐 아니라 일부 학교에서는 벌을 주기 때문이다. “회사가 이상하면 돌아오는 게 정상인데 체벌을 하니 정말 본인이 잘못한 줄 안다.” 아예 노동권 관련 과목을 교과목으로 지정했으면 좋겠다. 학생들에게는 절실한 지식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정부는 현장실습을 근로 중심에서 학습 중심으로 바꾸고 기간 역시 6개월 이내에서 1개월 내외로 축소하는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정작 학생들은 그럴 경우 기업이 특성화고 학생을 뽑을 명분이 없어지는 게 아닐까 우려했다. 이군 역시 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관리의 문제라고 말했다.

학교는 내심 취업을 권한다. 내신 좋은 친구들이 대학에 간다고 할 때 취업을 먼저 하고 가도 나쁘지 않다는 식이다. ‘선(先)취업 후(後)진학’ 제도가 있긴 하다. 특성화고 졸업 후 3년 이상 산업체에 재직하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제도다. 명문대 진학에 성공한 소수의 사례가 성공 신화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문이 좁다. 2년 전부터 특성화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입 특별전형 모집 인원도 3%에서 1.5%로 줄었다. 취업을 중시하겠다는 방침 때문이다. 이호성군은 ‘공부 못해 특성화고에 간다’는 시선이 아쉽다. “원하는 게 있어서 간 거다. 어떻든 한번이라도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 친구들이다.” 최근 그에게는 계속 이쪽 분야를 공부해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지도교사 눈 밖에 나면 취업 힘들어

학업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었던 신유림양(가명·17)은 ‘대학 생각이 없으면 특성화고에 가라’는 중학교 진로 담당 교사의 말을 듣고 상업 계열 특성화고에 지원했다. 공업고에 더 가고 싶었지만 성적이 맞아떨어지지 않아 안전하게 지원했다. 떨어지면 일반고에 가야 하니까 불안했다. 적성을 찾아온 친구도 있고, 내신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온 친구도 있었다. 신양은 회계 전공이다. 학교생활은 생각보다 바빴다. 자격증을 비롯해 각종 대회 준비를 해야 했다. 중간고사를 치르며 두 가지를 동시에 준비한 적도 있다.

학교에선 취업지도부 교사의 권한이 센 편이다. 학생들과 현장실습 나갈 업체를 연결해주기 때문이다. 공기업이나 대기업은 성적순으로 자르지만 나머지는 지도교사의 역량에 맡겨졌다. 성적이 좋아도 교사의 눈 밖에 나면 소용없었다.

2학년인 신양은 아직 현장학습에 나가지 않았다. 3학년 선배들을 보면 2학기부터는 거의 수업이 진행되지 않는다. 현장실습 나가지 않은 학생도 취업 준비로 바빠서 교실에는 몇 명 없는 실정이었다. 현장실습을 나갔다 중간에 돌아온 선배들의 사례가 다양했다. 업체가 부도난 경우도 있고 성추행을 당한 선배도 있다. 그만큼 부실한 기업이 중간에 걸러지지 못하는 것이다.

신양은 ‘특성화고등학생 권리연합회’ 모임에 참여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게 즐거웠다 “‘나만 이런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얘기를 똑같이 하니까 공감이 되었다.” 신양은 특성화고 학생들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신양은 언제고 대학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학 안 나오면 무시당하는 사회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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