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 말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체 노동자의 90%에 달하는 미조직 노동자들을 사회적 대화에 참여시킬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여기서 ‘미조직 노동자’는 노동조합에 소속되지 않은 노동자이다.

‘임금은 능력에 따라 받는다’고 하지만 노동자가 자신의 이익을 공개 표명하고 협상해서 관철할 수 있는지(즉, ‘사회적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지) 여부도 임금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 도구가 바로 노동조합이다. 비슷한 능력의 노동자라도 노동조합이 있는 회사에 들어가는 쪽이 더 많은 임금을 받게 된다. 문제는 노동조합을 갖지 못한 노동자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지난 7월18일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실이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임상훈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가 발표한 자료(〈한국의 노사관계 현황과 노동회의소 필요성 및 도입 방향〉)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2015년 현재) 1948만명 중 9.8%(노조 조직률)인 190만명만이 노동조합 소속이다. 사용자 측의 임금 지불능력이 풍부한 대기업 노동자들은 상당수가 노조 조합원인 반면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노조 조직률이 낮다. 예컨대 2015년 현재 ‘300인 이상 사업체’의 임금 노동자는 모두 247만명인데 그중 62.9%가 노동조합원이다. 반면 ‘30인 미만 사업체’의 임금노동자는 1132만명(전체 노동자의 58%)에 이르지만, 노조 조직률은 0.1%에 불과하다. 이 밖에 ‘3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체의 노조 조직률은 2.7%, ‘100인 이상 300인 미만’은 12.3%다. 노동조합 부문에서도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다(오른쪽 표 참조).

ⓒ연합뉴스10월2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7 촛불 1년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전국노동자대회’ 모습.
이런 ‘노동조합의 양극화’는 ‘원·하청 간 불공정 거래’와도 무관하지 않다. 원청 대기업과 하청 중소기업은 함께 완제품을 만든 뒤 그 매출액을 나누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원청이 지배하는 협력관계다. 원청 대기업은 하청 중소기업의 비용과 수익률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관리하기까지 한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수년에 걸쳐 하청 부품업체의 노동조합 파괴를 지휘하고 심지어 어용 노조까지 만들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시사IN〉 제509호 ‘노조 파괴 뒤에 현대차가 있었나’ 기사 참조). 하청 중소기업에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임금(하청 기업 측에서는 노동비용) 수준이 인상되면, 하도급 대금 역시 올려줄 수밖에 없다. 대신 무노조 하청 중소기업의 임금을 일정 수준으로 묶어둘 수 있다면, 원청 대기업에서는 하도급 대금을 올릴 절실한 필요가 사라져 자사의 수익(과 임금 지불 능력)이 늘어나면서 사내 노동조합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원·하청 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는 날로 심화된다.

대안은 있다. 중소기업 노동자들과 비정규직들이 스스로 노동조합을 결성하면 된다. 하지만 가난한 기업일수록 고용이 불안정하고 이직마저 잦으며 노동자 중 일부를 작업장에서 빼내 노조 업무만 전담시킬 경제적 여력도 없다. 간접고용의 경우, 노동자의 소속 업체가 불분명해서 노조 설립 자체가 어렵다. 다른 대안으로는 ‘산별노조 및 산별 교섭 강화’가 있다. 지금처럼 각 기업 내에서 노사가 맞서기보다 특정 산업 내의 모든 노동자가 소속 기업과 관계없이 산별노조로 단결해서 ‘사용자 연합체(그 산업 내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용자들을 통합한)’와 협상하는 방법이다. 산별노조가 대기업 노동자는 물론 중소기업 및 비정규 노동자들까지 대표하므로 임금 격차 역시 자연스럽게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의 임금인상률을 낮추는 반면 중소기업의 임금인상률은 높이는 쪽으로(이와 함께 사용자 간 하도급 대금 조정 등도 가능)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상공회의소나 경영자총협회 같은 사용자 연합체가 산별 교섭을 기피하고, 대기업 노조 역시 자신들의 손해가 예상되는 산별 교섭에 흔쾌한 눈치는 아니다. 결국 산별노조는 형식적으로 존재하지만 산별 교섭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와 사용자를 상대로 노동자 이익 대변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미조직 노동자들을 사회적 대화에 참여’시킬 목적으로 검토 중인 방안은 ‘노동회의소’ 설립으로 추정된다. 대통령 후보 당시 공약으로 제기하기도 했다.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인 이용득 의원이 논의를 주도해왔으며,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지난 8월 인사청문회 당시 “미조직 근로자들을 대변할 노동회의소 부분을 의원들과 함께 협의해 진행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노동회의소는 노동조합과 어떻게 같고 다른가? 둘 다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법정 단체라는 점에서는 같다. 다만 노동조합은 임의 가입 조직이다. 일터에 노조가 없거나 결성하지 못한다면 조합원이 될 수도 없다. 또한 노조는 단지 소속 노동자들만 대표한다. 반면 노동회의소는 노동시장에 들어가는 즉시 자동으로 그 회원이 된다. 모든 노동자를 대표하도록 규정된 조직이라는 이야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정규직은 물론이고 직간접 고용 비정규직, 육아휴직자, 특수고용직(법률적으로는 개인사업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용자로부터 지휘·감독을 받는 화물차 운전자, 퀵서비스 배달원, AS 직원 등) 같은 노동조합 없는 90% 노동자까지 대변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회의소가 비정규직들의 단체교섭이나 쟁의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와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임금협상, 단체교섭, 나아가 파업과 정치투쟁 등은 노동조합의 고유 영역이다. 대신 노동회의소는 정부와 국회, 사용자 등을 상대로 정책과 입법 부문에서 ‘모든 노동자’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활동한다. 민주노총 등 기존 노조 조직 일각에서는 ‘노동회의소보다 노동 3권의 보장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노동회의소의 핵심은 ‘모든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것에 있다. 노동회의소 주창자 중 한 사람인 임상훈 한양대 교수(경영대학)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 3권 보장과 노동회의소는 별개의 문제다. 예컨대 노동 3권이 확립된다 하더라도 노동조합에 소속되지 못한 90% 노동자들은 그 혜택을 볼 수 없다. 노동회의소가 ‘모든 노동자’들을 대변한다는 의미는 (지금까지 노조 체계에서 소외되어온)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것과 같은 얘기다.”

모든 노동자를 대변하는 노동회의소는 대기업 및 조직 노동자로 기운 정책·입법 부문의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이 밖에도 노동회의소는 개별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동법·사회보험·세제 등에서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무노조 기업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지원하고 촉진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노동회의소 제도가 활성화된 오스트리아의 경우, 노동자들이 1년에 평균 3회 정도의 법률 조언을 노동회의소로부터 받는다.

한편 정부와 노동계 일각에서는 ‘노사협의회 개편’을 대안으로 제기하기도 한다. 현재 30인 이상 기업은 의무적으로 노동자와 사용자 대표로 구성된 노사협의회를 설치·운영하도록 되어 있다. 노사협의회에서는 노동자가 사용자의 들러리에 머물 뿐 아니라 그나마 비정규직은 배제되어 ‘미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로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렇다면, 해당 기업에서 비정규직까지 포괄한 전체 노동자들이 자율적으로 대표들을 선출토록 하고, 그들에게 노동 측의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면 어떨까?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파업권은 없지만 무노조 중소기업 노동자나 비정규직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확대 재생산해온 기업별 노조체제의 문제를 극복하거나 크게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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