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국회의원이 16개 교육청을 통해 사드 배치, 탈핵, 탈원전, 5·18 관련 수업 자료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각 학교에 보냈다. 사드 배치와 탈핵이야말로 올해 학생들이 입시를 치를 때 면접 등에서 질문을 받을 수 있는 유력한 시사 이슈이다. 특히 탈핵과 관련해서는 공론화위원회까지 가동된 국가 시책으로, 전 국민이 알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공론화위원회에서 ‘제발 이 문제에 대해 국민들의 생각을 올려달라’고 포털 사이트에 광고도 했다. 5·18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대사 교과서에 이미 빼곡하게 실려 있는 주제이다.

누가 무슨 내용을 가지고 수업하는지 왜 궁금한가? 국회의원이 이를 감시하고 보고받을 권리가 있는가? ‘수업 사찰’에 가까운 이러한 보고를 요구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이런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교사가 어떤 주제로, 어떻게 수업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생각이 좌지우지된다. 교사가 어떤 자료로 수업하는지에 대해 국회의원으로서 검사해야 한다.’

ⓒ김보경 그림

실제 세월호 참사에 관한 내용이 담긴 계기 수업용 교재인 ‘기억과 진실을 향한 4·16 교과서(4·16 교과서)’ 때도 그랬다. 4·16 교과서로 계기 수업을 하지 말라는 공문에는 ‘가치판단이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부적합한 바’라고 적혀 있었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학생들은 부적합한 자료에 대해 문제 제기할 능력도 권한도 없으므로 4·16 교과서 수업을 금지한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을 스스로 역사나 사회현상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주체로 존중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직 교사가 어떤 자료를 쓰는지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학생들은 그 누구보다도 어떤 것이 옳은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귀담아듣고 싶은 이야기와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할 때 학생들의 표정은 귀신같이 달라진다. 4·16 교과서 사용 금지 공문이 내려왔을 때,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며 이 일에 관한 자신들의 판단을 종이에 자유롭게 적어달라고 했다. 한 학생은 이렇게 적었다. “학생들에게 알 권리, 판단할 권리, 자신의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습니다. 책이 유해한 것인지 아닌지는 그 책을 읽는 학생들이 판단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기억해야 할 일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고, 앞으로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책을 읽은 당사자인 학생들이 그렇게 느꼈는데 그것을 어른들이 금지할 권리가 있을까요? 치우친 생각이라고 비판하는 것 역시 이 책을 읽은 학생들의 역할입니다.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금지해버리는 것이 세월호 그날의 거짓들과 다를 게 무엇일까요? 우리가 알고 우리가 감당하겠습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이 필요한 이유

이번에 사드 배치, 탈핵, 탈원전, 5·18 관련 수업 자료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받은 후,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말했다. “국회의원이 이런 보고 자료를 보내라고 했는데 부끄럽게도 선생님이 진도 때문에 이런 문제들에 대해 여러분과 제대로 된 수업을 한 기억이 없네요.” 그러자 한 학생이 말했다. “아 짜증 나, 저희에게는 그 국회의원을 떨어뜨릴 권리가 없네요.”

적폐는 누가 대신 청산해주는 것이 아니다. 국민 각자가 그것을 청산하도록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촛불 1주년, 광장과 함께했던 학생들에게 참정권을 보장하고,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을 때, 교실을 감시하는 적폐도 청산할 수 있을 것이다. 촛불청소년인권법이 교사인 나에게 필요한 이유다.

기자명 조영선 (영등포여고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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