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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미가 웃었다, 국정원이 얼어붙었다

2013년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을 폭로한 후 꾸준히 국정원의 문제를 제기했던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의 적폐청산특위 간사를 맡아 국정원의 개혁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이숙이 기자 sook@sisain.co.kr 2017년 11월 22일 수요일 제5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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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왜 센 언니죠? 전 완전 부드러운 여잔데…. 따뜻한 언니~(웃음).” 간만에 만나 인사를 나누자마자 ‘시비’부터 걸어온다. 예의 그 환한 웃음이 담긴 타박이다. 맞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강동구갑)은 평소 부드러운 여자다. ‘해피 바이러스’라 불릴 정도로 잘 웃고 리액션이 크며 주변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하지만 일에 몰두하면 야무지다. 특히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권력 오남용을 끄집어내고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에 한번 꽂히면 인정사정없다.

일머리는 좋은데 거절을 잘 못하는 성품이다 보니 일복이 터질 수밖에 없다. 재선인 진 의원은 초선 때부터 이완구 총리 후보자 청문회, 조희대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청문회 등 굵직한 인사청문회에 청문위원으로 들어갔다. 다들 총선 준비에 바빠 상임위원회 활동을 부담스러워하던 2015년 하반기에는 행정안전위원회·여성가족위원회·운영위원회 등 3개 상임위원회를 한꺼번에 담당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한 11월7일에도 진 의원은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했다. 당의 적폐특위 간사로 ‘제2롯데월드 특혜 의혹’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연 데 이어, 국정원 전면 개혁을 촉구하는 토론회 주최, 당 제1정조위원장으로서 당·정·청 협의회 참석, 핵심 국정과제 이행 TF와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TF 단장으로서의 활동 등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보좌진은 “완전 파김치가 될 상황”이라고 했다. 하지만 두 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그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꽂히면 집중하는, 그야말로 센 언니의 면모를 보였다.


ⓒ김흥구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4년 선고를 받은 것에 대해 “4년 형량이 좀 아쉽다. 하지만 재판부가 원 전 원장이 저지른 행위를 준열히 비판해 판결을 내렸다”라고 평가했다.

꼼짝 마라 원세훈 문재인 정부 들어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쏟아내고 있는 내용들을 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국민걱정원’이라 비판하듯 국정원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동안 정치 공작을 일삼았다. 이런 문제점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꾸준하게 파헤쳐온 이가 바로 진선미 의원이다.

2013년 3월18일 폭로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이 신호탄이었다. 그 전날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야당이 요구해온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의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오랫동안 지체된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통과시키는 조건으로 국정조사를 내준 것이다.

제보자를 통해 이미 국정원 인트라넷에 게시된 원세훈 원장의 지시·강조 말씀을 확보하고 있던 진 의원은 쾌재를 불렀다. “세종시·4대강 등 주요 현안에도 원이 확실하게 중심을 잡고 대처해주기 바람(2010년 4월16일)” “세종시 등 국정 현안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좌파 단체들이 많은데, 보다 정공법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음. 우리 원이 앞장서서 대통령님과 정부 정책의 전의를 적극 홍보하고 뒷받침해야 할 것(2010년 1월22일)” 등이 담긴 국정원 내부 자료는 원세훈 전 원장을 조사하지 않을 수 없는 ‘증거’였다. 3월24일 원 전 원장이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라는 첩보를 입수한 진 의원은 직접 인천공항에 나가 출국금지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직원들을 동원해 게이트마다 지키게 했고, SNS에 글을 올려 “원세훈과 인상착의가 비슷한 사람을 보면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일종의 여론 압박 전략이었다. 원 전 원장 측은 이날 출국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2013년 3월18일 진선미 의원이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을 주장하며 관련 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이후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에 대한 수사의 고비마다 진 의원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국정원이 작성한 이른바 ‘박원순 제압 문건’을 공개해 원 전 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라고 압박했고, 국정원 심리전단이 트위터와 오늘의유머, 아고라 등에 올린 방대한 게시 글을 일일이 분석해 검찰과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이 빛을 발해 원세훈 전 원장은 지난 8월 파기환송심에서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모두 인정되어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진 의원은 이날 선고 장면을 법정에서 직접 지켜보았다. 진 의원은 “4년 형량이 여전히 좀 아쉽다. 하지만 재판부가 원 전 원장이 저지른 행위를 준열히 비판해 판결을 내렸다”라고 평가했다.

진 의원은 요즘 당의 적폐청산특위 간사를 맡아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조사한 내용을 확인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회에는 진 의원이 지난 6월 발의한, 국정원을 해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고 국정원 예산을 좀 더 투명하게 운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정원법 개정안을 비롯해 여러 건의 국정원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연합뉴스
2014년 3월11일 진선미 의원이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시 대신 수행?
민주화 열기가 뜨겁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출신에 권력기관 개혁 등을 소리 높여 외치니 진 의원을 운동권 출신으로 지레짐작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전북 순창여고와 성균관대 법대를 나와 8전9기로 사법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그는 세상일에 별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가 중학교 때 돌아가셔서 고등학교도 친구들처럼 대도시로 나가지 않고 어머니 곁을 지켰다. 위로 넷인 오빠들이 민주화운동을 하며 어머니 속을 썩인 터라 자신은 대학에 가도 운동권은 기웃거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법대를 택한 건 아버지처럼 믿고 의지하던 큰오빠의 권유 때문이었다. 진 의원의 큰오빠는 운동권 이력 때문에 사법고시(사시)를 두 번 합격해 법조인이 된 진봉헌 변호사다. 진 의원의 대학 선배이기도 한 진 변호사는 수원지법, 전주지법 판사를 거쳐 전주에 변호사 사무실을 낸 후 전라북도와 전북도의회 고문변호사 등을 지냈다. 지금은 국민의당 전북도당 상임고문과 중앙당 사회적경제지원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의 전주시장 후보로도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오빠와 동생이 서로 다른 당에서 주요 역할을 하는 흔치 않은 경우다.

사시 도전에서 진 의원은 몇 차례 1차에 붙었지만 2차에서 실패하곤 했다. 8년째 도전 때 1차 시험에 합격한 뒤 집중력을 높이고 마음도 다스리려 단전호흡을 하고 기천문에도 심취했는데, 그러다가 2차 시험을 때려치우고 아예 수행의 길에 들어설 생각까지 했다. 2차 시험을 앞둔 사람이 맨날 수행 책이나 사러 다니고 결혼도 안 하겠다고 하니 대학 1학년 때 만나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던 지금의 남편이 설득에 나섰다. “지금 네가 가겠다는 길은 정말 오래 걸린다. 그래도 진짜 원하는 길이라면 보내줄 거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네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은 마무리하는 게 어떻겠나….”

ⓒ진선미의원실 제공
4월17일 진선미 의원이 문재인 후보 중앙유세단 슈퍼문과 함께 율동을 하고 있다.
진 의원보다 다섯 살이 많지만 군 제대 후 같이 학교를 다닌 남편은 원래 ‘뭘 하지 마라’ 간섭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진 의원이 학창 시절 내내 다른 남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인기도 많아서 두 사람이 커플이라는 게 알려졌을 때 주변에서 ‘남자 친구가 그렇게 일찍부터 있었냐’고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런 남편이 정색을 하니 진 의원도 고집을 부리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2차 시험을 치렀고 최종 합격하면서 사법연수원을 28기로 수료했다.



이석태 변호사와의 만남 사법연수원에 다니면서 승려가 되거나 수녀원에 들어가 자기 수행의 길로 가겠다던 생각은 바뀌었지만 ‘이 자격증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누군가의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더 깊어졌다. 판검사가 되거나 대형 로펌을 택하는 대신 삶의 지표가 될 만한 이들을 찾아다녔고 그러다 생태학과 환경문제 등에 눈을 떴다. 환경법학회에 들어가고 당시 사회적 갈등이 심했던 부안 방폐장(방사성폐기물 처리장) 현장을 쫓아다녔다. 그 와중에 ‘조화로운 삶’을 평생 실천한 헬렌 니어링의 책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읽은 후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책의 번역자가 이석태 변호사였고 수소문 끝에 이 변호사를 만난 게 인권 분야 전문 로펌으로 유명한 ‘법무법인 덕수’에 합류한 계기가 되었다.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장으로 더 잘 알려진 이석태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과 민변 회장을 역임한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다. 환경운동연합 상임집행위원과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맡아 시민운동에도 오랫동안 몸담았으며, 지금은 ‘덕수’ 대표 변호사를 맡고 있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동성동본 불혼 헌법소원’ ‘미결수의 수의착용 헌법소원’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담당했고 호주제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운동 등에 동참했는데, 진 의원도 이런 사건들에 적극 관여하면서 환경·생태·여성·소수자 인권 등에 관심을 키워왔다. “법전만 들여다봤던 고시생이 삶을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철거민들을 만나본 후 나는 절대 집을 안 사리라 치기 어린 다짐도 해보고, 가족한테 외면받고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며 괴로워하는 성 소수자들을 대변해보리라 마음을 먹기도 했죠.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며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키웠습니다.”



해피 바이러스 다뤄온 사건이나 관심 갖는 주제는 대체로 심각하지만, 진 의원의 성격은 밝고 활달한 편이다. 음주가무를 즐기고, 탁구·배드민턴·테니스·수영 등 못하는 운동이 없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탁구장을 운영해 그때부터 공을 가지고 노는 데 익숙해진 듯하다.

2012년 총선 때 진 의원은 비례대표 5번을 받아 일찌감치 안정권에 들었다. 전문가 타이틀을 달고 들어오는 비례대표 후보들은 대개 선거전에서 열심히 뛰지 않는 편인데, 진 의원은 당시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한명숙 대표가 지원유세를 나간 25개 지역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수행했다. 처음에 쭈뼛쭈뼛하다 나중에는 목소리가 잠긴 한 대표를 대신해 마이크까지 잡았는데, 그것이 인상 깊었는지 배지 달고 두 달 후 문재인 캠프의 대변인으로 발탁되었다. 일각에서는 변호사 시절부터 문 후보와 인연이 있었던 것 아닐까 생각했지만, 두 사람은 전혀 알지 못했다. 진 의원은 ‘새로운 얼굴’이라는 점과 ‘변호사 출신이라 말을 잘하리라는 기대감’ 그리고 ‘리액션이 크고 잘 웃는다는 점’이 발탁 이유가 아니었을까 짐작했다. 실제로 당시 문 캠프에서는 텔레비전 토론이나 대중 연설을 앞두고 ‘정치 신인’ 문재인 후보의 굳은 표정을 푸는 게 큰 고민거리였는데, 진 의원이 나타나 유머를 던지거나 담쟁이 스티커를 얼굴에 붙이는 등 ‘허당 개그’를 하면 문 후보가 한 번씩 빵 터지며 여유를 찾았다고 한다.

진 의원의 친화력은 지난해 20대 총선 때 강동구 선거에서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이 지역은 야당에 쉽지 않은 표밭이었고, 진보 성향으로 낙인찍힌 진 의원에게는 더더욱 우호적이지 않았다. 진 의원은 그런 강동구를 친화력으로 뒤집어놓았다. 보수적인 어르신들, 특히 해병전우회나 6·25 참전전우회 회원들은 ‘19세에 월남해 외롭고 힘든 시절을 보내다 일찍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사연’에 마음을 열었다. 19년째 사실혼 관계였던 남편은 가슴에 ‘진선미 남편’이라 크게 써 붙이고 강동구를 활보했다. 호주제 폐지운동을 하면서 미뤘던 혼인신고를 20대 총선을 한 달 앞두고 한 터였다. 남편이 선거운동에 나서고 진 의원이 ‘부산 며느리’를 외치고 다니면서 차갑던 시선들이 빠르게 풀렸다.

가장 어렵다는 재선 도전에 성공한 진 의원이 19대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공을 들이는 정책 과제는 국정원 개혁과 인권 유린으로 악명이 높았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규명, 개인정보 보호, 여성과 아동의 안전 등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어서 경찰 개혁도 당면 과제이고, 여당의 제1정조위원장이라 진 의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정책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듣고 있던 기자의 입이 절로 벌어졌지만, 진 의원은 “힘들다” “정신없다” 말만 남긴 채 다음 일정을 챙기러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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